세포 한 개의 DNA를 이으면 183㎝
‘부전자전 모전여전’이란 말이 있다. 아들은 아버지를, 딸은 엄마를 닮는다는 것. 서양 사람은 반대로 아들은 엄마, 딸은 아버지의 닮은꼴이라 여긴다. 둘 다 맞으면서도 틀렸다. 후손에겐 부모의 유전인자(遺傳因子)가 딱 반반씩 전해지기에 모두를 닮는다. 그런데 어머니와 친한 사람 눈에 그 자식은 어머니의 복제로, 아버지와 가까운 사람에게는 아버지의 판박이로 보인다. 도대체 유전인자(gene)란 어떤 물질이기에 “씨도둑은 못 한다”고 하는 것일까?
유전물질은 다름 아닌 핵산(DNA)이다. DNA(데옥시리보핵산)에 ‘닮음’ ‘내림’ ‘물림’이 들어 있다. 사람 세포의 핵에는 46개의 염색체가 있고, 그 염색체는 단백질과 DNA로 구성되어 있다. 즉 핵의 염색체에 유전자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염색체의 단백질이 실타래라면 거기에 실(핵산)이 친친 감겨 있다. 46개의 염색체에 들어 있는 DNA를 뽑아내면 물경 183㎝나 된다. 이 분야에 먹통(?)인 보통사람에겐 무슨 말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포에서, 그것도 그 속에 들어 있는 핵, 또 그 안의 46개의 염색체에서 뽑은 DNA가 두 팔을 벌린 길이보다 더 길다! 실은 거기에 3만~4만개의 유전자 조각이 들어 있다. DNA 어느 부위에 어떤 유전자가 들었나를 밝히는 것이 ‘인간게놈 계획’인 것이다.
(사진) 런던 국립과학박물관에 전시된 DNA모형 DNA라는 말은 어느새 보편화되면서 다른 영역에서도 널리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일이나 사건이 매우 중요하거나 정수(精髓), 핵, 중심, 기질(基質)이 된다는 의미로 DNA를 비유하니, “대한민국의 DNA가 거기에 녹아 있다” “그것은 오늘 토론의 DNA다” “DNA가 서로 다른 탓이다” “일본과 우리의 DNA가 다르지 않은가” “영혼의 DNA, 민족의 원형질인 DNA를 계발할 것이다” 등등으로 쓴다. 어디 그뿐일라고. ‘DNA는 생명의 기본물질’ ‘DNA에 각인된 내림물질’ ‘부모에게서 이어받은 DNA’ ‘속일 수 없는 DNA’ ‘생명의 본질인 DNA’ 등 온통 DNA 타령이다.
전자현미경으로도 잘 보이지 않는 DNA는 두 가닥이 꽈배기 모양으로 꼬인 ‘이중나선구조(二重螺旋構造)’이다. 거기에 들어 있는 유전정보의 명령에 따라 세포질에서 단백질이나 효소들을 만들어낸다. 근래 와서는 이 과정에 학자들이 전적으로 매달려 산다. DNA는 A(아데닌), T(티민), G(구아닌), C(시토신)라는 단지 4개의 ‘문자(letter)’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배열되느냐에 따라서 세포의 성질(형질)이 달라진다. 아무튼 핵의 DNA에 이상이 있으면 단백질 합성에 문제가 생기니 결과적으로 세포에 탈이 난다. 핵산이 우리의 생명을 담보하고 있으며 암(癌)도 이렇게 해서 생긴다.
최근에는 친자감별, 혈연관계, 범죄 확인에 DNA감별법(DNA 지문법)을 쓴다. 세포에는 핵이 아닌 미토콘드리아에도 DNA가 들어 있으니 이것은 언제나, 누구나 어머니 것을 내려 받으므로 모계를 추적하는 데 쓴다. 그리고 Y염색체는 항상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것이라 그것의 DNA를 분석하여 부계의 연관을 찾는다.
이렇듯 생명은 영원한 것! 죽어도 유전자(씨·DNA)를 남겨 거듭나는 것임을 알기에 뭇 생물은 종족번식에 모든 걸 건다. 긴 말 필요 없다. 아들 딸 구별 말고 셋!!!
글 : 권오길 (강원대학교 명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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