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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노 아베 마리아 - Mario Lanza │ 종교 聖음악

바래미나 2007. 8. 29. 16:00
                          구노 아베 마리아 - Mario Lanza │ 종교 聖음악

Bach-Gounod Ave Maria - Mario Lanza

구노 아베 마리아

Gounod, Charles Francois (1818~1893)

Track. 07 - Ave Maria (Mario Lanza)

The Ultimate Collection

Ave Maria, for voice & piano (or other vocal arrangements; after Bach's Prelude No. 1 from the Well-Tempered Clavier, Book 1)
Composed by Charles Gounod
with Eudice Shapiro, Mario Lanza
Conducted by Constantine Callinicos
Audio CD (October 12, 1995)

       

비록 공인받은 테너 가수는 아니었지만, 마리오 란자(Mario Lanza)는 20세기가 낳은 美聲임에는 자타가 인정한다. 그는 1959년 8월 7일 로마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중학생이었던 필자도 이 소식을 뉴스로 전해 들다. 필자가 '황태자의 첫사랑'을 관람하면서 듣기로는 그의 죽음의 원인은 노래로 인한 과로였다고 들은 기억이 난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죽음에는 많은 의문이 남는다고 전해 온다. 그의 생애와 노래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파서 올려본다. 많이들 감상해보자...

글 출처 : 바람새  정재선 2006-12-28

     

     

성모송(聖母誦, Ave Maria) 

(영) Hail Mary. Angelic Salutation이라고도 함.

동정녀 마리아에게 바치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중요한 기도. 3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라틴어 본문과 그 번역문은 다음과 같다.

"Ave Maria, gratia plena
Dominus tecum
Benedicta tu in mulieribus et benedictus fructus ventris tui(Jesus)

Sancta Maria, Mater Dei,/Ora Pro nobis peccatoribus, nunc et in hora mortis nostrae.
Amen."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대천사 가브리엘의 인사(루가 1 : 28)인 첫째 부분은 이미 6세기의 전례에 나타난다.  엘리사벳의 인사(루가 1 : 42)인 둘째 부분은 1000년쯤에 첫째 부분에 추가되었으며, 동격어로 놓인 '예수'는 교황 우르바누스 4세(1261~64 재위)가 추가한 듯하다. 마지막의 청원기도는 14세기 또는 15세기에 널리 사용되다가 1568년 교황 피우스 5세가 개혁한 성무일도서에 공식 기도문으로 포함되었다. 노래로 만든 성모송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프란츠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Ave Maria〉이다.

글 출처 : 이동활의 음악정원

     

Θεοτόκε Παρθένε, χαῖρε, κεχαριτωμένη Μαρία, ὁ Κύριος μετὰ σοῦ. εὐλογημένη, σὺ ἐν γυναιξί, καὶ εὐλογημένος ὁ καρπὸς τῆς κοιλίας σου, ὅτι Σωτήρα ἔτεκες τῶν ψυχῶν ἡμῶν.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다.

† 루카 복음. 1,26-38

그때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Mario Lanza (31 January 1921 – 7 October 1959) was an American tenor and Hollywood movie star who enjoyed success in the late 1940s and 1950s. His voice was considered by many to rival that of Enrico Caruso, whom Lanza portrayed in the 1951 film The Great Caruso. Lanza was able to sing all types of music. While his highly emotional style was not universally praised by critics, he was immensely popular and his many recordings are still prized today.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세레나데 - 1954년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 중에서

20세기가 낳은 미성 마리오 란자

Mario Lanza (31 January 1921 – 7 October 1959)

마리오 란자는 1921년 이태리계 부모의 외동 아들로 South Philadelphia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부터 란자는 카루소를 우상으로 삼았고 훗일 카루소 같은 훌륭한 성악가가 되기를 바라면서 열심히 공부했다. 마리오 란자는 오페라 무대가 아닌 다른 경로를 통해 유명해졌다. 트럭 운전사로 일하면서 성악 교사의 지도를 받고 지내던 마리오 란자는 20세가 되던 어느날 커티스 음악원 강당에 피아노를 배달하러 가서 평소처럼 오페라 아리아를 흥얼거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당시 보스톤 심포니의 지휘자 쿠세비츠키(Sergey Koussevitzky 1874~1951)가 이를 지켜보고는 그의 재능에 놀라면서 버크셔(Berkshire) 음악센터에 그를 소개, 잠재된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게 되었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마리오 란자는 군에 입대했고, 제대 후인 1945년에는 드디어 당시 미주 대륙 최대의 레코드사였던 RCA사와 전속 레코딩 계약을 체결하였으며 1947년에는 헐리우드에서 영화까지 진출하게 된다. 1949년 'That Midnight Kiss'를 시작으로 마리오 란자는 영화계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고 당시의 인기 발라드 뿐만 아니라 베르디 오페라의 유명한 아리아도 불렀다.

그의 두 번째 영화 'The Toast of New Orleans'도 흥행에 성공했고 유명한 그의 노래 'Be My Love'로 세계 음악 차트의 10위권 안에 들었다. 그의 세 번째 영화가 바로 유명한 'The Great Caruso- 위대한 카루소'인데, 카루소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이 영화에서 주인공 카루소 역을 맡아 명성을 떨치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오페라 가수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그는 실제 오페라 무대에는 자주 서지 못했다고 하는데 1948년에 푸치니의 <나비부인>의 핀커톤 역으로 단지 두 번만 섰을 뿐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지금도 음악계에서는 그를 정통 오페라 가수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영화를 찍던 중 감독과의 논쟁을 벌인 이후로 헐리우드 영화계를 떠난 마리오 란자는 1957년에 로마로 이사를 간다. 거기에서 그는 영화 두 편을 찍고 유럽 콘서트 여행을 가졌다. 그러나 오페라 무대 복귀를 준비하던 그는 1959년 8월 7일 로마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카루소의 계승자로 불리던 마리오 란자는 38세의 나이로 아깝게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영화와 RCA에 10여 년간 남긴 400회의 레코딩으로 그를 만날 수 있다.

그의 멋진 전설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그가 불러 히트를 쳤던 곡 'Be My Love', 'The Lovelist Night of the Year', 'Because You're Mine' 등은 지금도 세계 유명 성악가들에게 널리 애창되고 있다고 한다.

글 출처 : 도시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