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시니 [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1868]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페사로 출생. 1806년 페사로 음악원에 입학하여 작곡을 시도했으며 10년에 졸업했다. 12년 베네치아에서 초연한 《행복한 오해》로 성공해 오페라작곡가로서 알려지게 되었으며, 같은해 《시금석(試金 石)》을 밀라노에 있는 스칼라극장에서 공연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탕크레디》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자》를 공연해서 모두 성공했다. 15년, 그는 나폴리에서 오페라세리아 《영국여왕 엘리자베스》를 공연하여 인기를 모았으나, 나폴리 왕립음악원 원장이며 당시 오페라부파의 대가(大家)인 파이젤로의 방해로 인하여 이듬해 《세빌랴의 이발사》의 로마에서의 첫공연은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이 작품은 공연을 거듭할 때마다 사람들을 매료시켜 로시니의 이름을 높였다. 그 후, 나폴리·로마·밀라노·베네치아의 가극장(歌劇場)을 위하여 22년, 볼로냐에 돌아올 때까지 20곡 가까운 오페라를 작곡했는데, 그 중에는 《오텔로(1816)》 《신데렐라(1817)》 《호상(湖上)의 미인(1819)》 등이 있다.
22년 3월 에스파냐 출신의 가수 이사벨라 I. 콜브란과 결혼했다. 한편, 로시니는 베토벤의 음악을 알고는 감격해서 그를 방문하기도 했다. 23년 베네치아에서 《세미라미데》를 발표했는데, 이것은 로시니가 이탈리아가극장을 위해 쓴 최후의 작품이 되었다. 24년에 그는 파리로 옮겨가, 이 곳 이탈리아극장의 음악감독을 지냈고, 옛 작품의 공연 및 개정공연(改正公演)외에 프랑스어로 된 《오리 백작(1828)》과 《윌리엄 텔(1829)》을 작곡했다. 그는 마이어베어의 그랜드오페라가 유행하기 시작하자 그 양식에 반발을 느끼고, 그 후에는 오페라는 작곡하지 않고 개작했던 각종 소품과 《스타바트마테르(1842)》 등을 발표했을 뿐이다.
37년 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콜브란과 정식으로 이혼, 46년 올림프 펠리시에와 재혼했다. 그리고 55년 이후에는 파리에서 살며 《소장엄(小莊嚴) 미사곡(1863)》 등 및 작품을 썼다. 68년 11월 13일 파리근교 파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로시니는 29년까지 약 20년 사이에 개작을 포함해서 39곡의 오페라를 작곡했고, 그 후의 약 40년간은 오페라계에서 은퇴했다. 오페라작곡가로서의 로시니는, 첫째로, 성악양식(聲樂樣式)의 세련을 목표로 해서 아리아나 카바티나 중에서 아름답고 세련된 선율미를 추구했다.
그와 동시에 성악기교를 탐구했는데, 특히 벨칸토창법의 재흥(再興)에 힘을 기울였다. 그는 수많은 독창적인 표현방법을 사용했고, 오케스트라를 다루는 데 탁월한 기교를 구사했으며, 특히 크레셴도(점점 세게)를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그가 오케스트라에 의한 크레셴도를 오페라에서 최초로 사용한 것은 《시금석》의 마지막 막이다. 또한 《윌리엄 텔》 등 오페라세리아에서는 색채·정경묘사적(情景描寫的)인 관현악법이 이따금 뛰어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러한 것은 그의 오페라의 서곡(序曲)에도 나타나고 있으며, 현재 오페라 자체는 공연되지 않지만, 서곡을 독립시켜 연주하고 있다.
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1868)
이탈리아 작곡가. 트럼펫과 호른 연주자였던 아버지와 가수였던 어머니 사이에 외아들로 페사로에서 출생하였다. 14세 때 페사로의 음악원에 입학하여 1810년 졸업했다. 재학중인 1809년 오페라 《도메트리오와 폴리비오》를 작곡하였고 당시 慣綬?누리던 장르인 오페라 부파에 몰두, 첫 오페라 부파 《결혼 어음》을 발표, 대성공을 거두었다. 1811년 2막으로 된 오페라 부파 《터무니없는 오페라》를 작곡하였고 이듬해 베네치아에서 초연한 《행복한 오해》로 성공해 오페라 작곡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으며, 같은해에 밀라노에서 《시금석》을 공연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1816년 《세빌리야의 이발사》의 초연은 나폴리 왕립음악원장의 방해로 실패로 끝났으나, 이후 공연을 더해 갈수록 사람들의 시선을 주목받게 되었다. 로시니는 1829년까지 약 20년 사이에 개작을 포함하여 39곡의 오페라를 작곡하였고, 그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 40년간은 오페라계에서 은퇴하여 종교음악의 곡을 남기고 1868년 파리교외의 파시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전통적인 오페라 부파의 형식을 깨고 이탈리아의 현란한 가창 양식인 벨칸토 창법을 새롭게 창조하였다. 그는 수많은 독창적인 표현 방법을 사용했고 오케스트라를 다루는 데 탁월한 기교를 구사 했으며 특히 크레센도를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그가 오케스트라에 의한 크레센도를 오페라에서 최초로 사용한 것은 《시금석》이 마지막 막이다. 또한 《윌리엄 텔》등 오페라 세리아에서는 색채 . 정경묘사적인 관현악법이 이따금 뛰어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러한 것은 그의 오페라의 서곡에도 나타나고 있으며 현재 오페라 자체는 공연되지 않지만 서곡을 독립시켜 연주하고 있다.
대표적 작품으로 《세빌리야의 이발사》 《신데렐라》 《세미라미데》 등의 오페라 부파와 《기욤 텔》 등의 대규모 오페라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