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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00 여명을 구출한 이스라엘 엔테베 작전

바래미나 2007. 8. 11. 02:51
                             무려 100 여명을 구출한 이스라엘 엔테베 작전

1976년 7월 4일 자정, 우간다 엔테베 국제 공항의 정적은 갑작스러운 총 소리와 폭발음으로 깨졌습니다. 이 공항에는 일주일전(6월 27일) 승객과 승무원 269명을 태우고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를 출발 파리로 향하다 공중 납치된 에어 프랑스소속 에어버스 A300기가 강제 착륙되어 있었죠. 팔레스타인과 독일 적군파 테러조직원들이 납치한 이 여객기의 승객 중 77명이 이스라엘 국적이었습니다. 납치범들은 이스라엘과 독일, 프랑스 등에 수감되어 있던 테러범 53명의 석방을 요구하며 인질들을 잡고 있었습니다. 협상 과정에서 인질들이 일부 풀려났지만 대부분 이스라엘 국적자인 인질 106명은 풀려나지 못했습니다.


납치 사건이 발생하자 즉시 이츠하크 라빈 수상(지난 95년 11월, 극우파 청년에게 암살 당한 바로 그 사람입니다) 주재로 긴급 내각 회의가 열렸고 이스라엘 정보부 모사드는 조직망을 풀가동해서 인질들의 행방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작전 시작 7시간 전인 7월 3일 오후 5시, 이스라엘에서 특공대원들을 태운 C 130 허큘리스 수송기 4대와 지휘임무를 맡은 보잉 707 2대가 출발했습니다. 이스라엘 육군의 최정예 부대인 제35 공수여단, 골라니 코만도, 사렛트 메트칼에서 선발된 특공대원 100여명을 태운 이 수송기들은 우간다의 엔테베 국제 공항으로 기수를 돌렸습니다. 적대국들의 영공을 뚫고 4000km나 비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 작전은 도박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당시 특공대의 비행 경로를 보여주는 이스라엘 엽서

 

“번개(썬더볼트)”라고 이름 붙여진 이 작전에서 전광석화 같은 이스라엘 특공대의 공격으로 7명의 인질범들은 작전 돌입 몇 분 사이에 모두 사살 되었습니다. 20여명의 우간다 군인들과 10여대의 우간다 전투기, 레이더 장비도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수송기가 착륙해서 이륙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52분. 세 명의 인질이 총격전 와중에 목숨을 잃었고 인질 중 한 사람의 실종자 (병원에 입원해 있던 영국국적의 유태인 여성 도나 블럭,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스라엘군의 공격에 분개한 당시 우간다의 이디아민 대통령에 의해 살해 되었음)를 제외한 인질들은 무사히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스라엘 특공대의 희생자는 단 한 사람, 바로 현장에서 특공대를 지휘했던 당시 서른살의 요나단 네탄야후 중령이었습니다. 이 작전의 유일한 전사자가 현장 지휘관이었다는 사실은 장교들이 앞장을 서 장교 사망률이 유달리 높은 이스라엘 군대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나단 네탄야후 중령의 동생이 바로 훗날 이스라엘의 수상을 지낸 벤야민 네탄야후입니다. 그는 아직도 정치인 네탄야후 보다는 특공대장 요니 중령의 동생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특공대의 유일한 전사자 요나단 네탄야후 중령


군사적 측면에서만 보자면 엔테베 작전은 기발한 착상(우간다의 이디 아민 대통령으로 변장한 이스라엘 군인이 수송기에 싣고 간 벤츠를 타고 내리는 바람에 공항경비병들은 외국 순방 중이던 아민 대통령이 귀국한 것으로 착각했다네요)과 대담한 공격, 그리고 최소의 인명손실로 그 뒤에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완벽했습니다. 이 작전은 최초의 원거리 구출작전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고 이후의 인질 구출 작전의 모범사례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수송기에서 내리며 환호하는 인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