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독도 이야기?!

독도-이것이다-

바래미나 2007. 8. 1. 02:16

이것이 독도다] 460만년 된 ‘화산섬’… 축구장 넓이의 7배 크기


울릉도보다 먼저 태어나… 상징새는 괭이갈매기
고성능 레이더 기지, 각국 해·공군 이동상황 파악 양근만기자

독도(獨島)는 외롭지 않다. 요즘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기 때문이다. 독도의 ‘모든 것’을 소개한다.

◆울릉도의 ‘할아버지’ 뻘=독도는 바다밑 약 2000m에서 솟은 용암이 굳어지면서 만들어진 화산섬. 크기로 볼 때 울릉도의 막내동생 같지만, 지질학적 나이로 따지면 독도가 ‘울릉도의 할아버지’다. 독도는 신생대 3기인 약 460만~250만년 전에 출생한 반면 울릉도는 140만~1만년 전에 생성됐다.


제주도가 먼 옛날 육지와 연결된 적이 있는 반면, 독도는 울릉도와 함께 수백만년 동안 육지와 연결되지 않은 ‘대양섬’이다.


독도는 크게 두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도(東島)는 최고봉이 99.4m다. 2개의 화구 흔적이 있고, 정상에는 비교적 평탄한 부분이 있다. 서도(西島)는 최고봉 174m로, 꼭대기가 뾰족한 원뿔형이다. 서도 해안에는 많은 동굴이 있다.


◆주변 섬만 33개=독도는 우리나라 영토의 동쪽 끝이다. 울릉도 동남쪽 89.493㎞에 위치하고 있다. 포항에서는 267㎞ 떨어져 있다. 동해안에서의 최단 거리는 울진군 죽변으로, 두 지점 간의 거리는 220.354㎞다. 일본과 가장 가까운 오키섬으로부터는 북서쪽 160㎞, 일본 본토로부터는 시마네현 히노미사키 해안에서 북서쪽 208㎞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주소는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1∼37번지. 2000년 울릉군 의회가 조례로 독도리(里) 신설을 의결하면서 울릉읍 도동 산42∼76번지에서 바뀌었다. 독도리는 서도 1반(산1∼26), 동도 1반(산27∼37)으로 나눠진다.

면적은 37필지 18만6121㎡(동도 6만4779㎡, 서도 9만5444.5㎡, 부속도 1만5907㎡). 축구장 7배의 크기다. 주변 섬은 33개. 해양수산부 소유의 국유지이고, 지목은 임야다.



◆레이더기지서 정보 수집=독도에는 고성능 방공레이더 기지가 있다. 국가 안보에 필요한 군사정보를 수집한다. 이곳 관측소에서 러시아의 태평양 함대와 일본 및 북한 해·공군의 이동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1905년 러일전쟁 당시 동해 해전에서 일본이 러시아 함대에 대승을 거두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다양한 생물들 서식=많은 새들이 독도에 산다. 바다제비, 슴새, 괭이갈매기, 황초롱이, 물수리, 노랑지빠귀 등이 대표적이다. 바다제비와 슴새, 괭이갈매기의 서식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새들 중에서 독도를 상징하는 새를 꼽는다면 괭이갈매기다.

[이것이 독도다] 이름으로 본 독도의 역사


우산(삼국시대)→삼봉도(조선초기)→가지도(조선후기)→독도 양근만기자

독도는 역사적으로 네 개의 이름을 가졌다. 첫 이름은 ‘우산(于山)’. 독도가 우리나라 영토에 속하게 된 것은 삼국시대부터. 삼국사기에 의하면 지증왕 13년(512년)에 우산국이 신라에 귀복되어 해마다 토산물을 바쳐 왔다고 기록돼 있다. 여기서 ‘우산’은 울릉도를 의미하는데, 울릉도란 명칭이 정착되면서 ‘우산’이라는 명칭은 그 부속 도서인 독도를 지칭하게 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 울진현조에도 ‘우산’이란 이름이 나온다. ‘우산과 무릉(武陵)이 현(울진현) 바로 동쪽 바다 가운데 있는데, 두 섬은 거리가 가까워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고 적고 있다. ‘고려사지리지’에서도 “우산·무릉은 본래 두 섬으로 두 섬의 거리가 서로 멀지 않아 날씨가 청명하면 바라볼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여기서 우산은 독도를, 무릉은 울릉도를 가리킨다.

조선 초기부터는 ‘삼봉도(三峰島)’로도 불렸다. 높이 솟아 있는 세 개의 바위섬을 일컫는 말이었다.

정종실록에서는 독도를 ‘가지도(可支島)’라고도 했다. 독도에는 해려(강치)가 많이 서식하고 있는데, 당시 해려를 가제라 불렀고, 이를 한자로 가지(可支)라고 한 것이다.


독도라는 명칭이 처음 공식으로 사용된 것은 1906년 울릉도 군수 심흥택의 보고서에서다. 현재 ‘獨島’로 표기되는 독도는 ‘돌섬’이 초기 이주민에 의해 ‘독섬’으로 발음되면서 굳어졌다는 분석이다.


일본에서는 다케시마(竹島), 마쓰시마(松島)라 불렀다. 서양에서는 발견한 선박의 명칭을 따 이름을 붙였다. 1849년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는 독도를 발견하고 ‘리앙쿠르 락(Liancourt Rock)’으로 불렀다.

1885년 영국 함선 호네트호도 ‘호네트 락(Hornet Rock)’으로 이름 지어 자신들의 해도에 등록했다. 광복 후인 1946년 1월 연합군 최고사령관은 한반도 주변의 제주도·울릉도·독도를 일본의 통치권에서 제외한다고 밝혀 독도가 한국 땅임이 국제적으로 공인됐다.


[이것이 독도다] 독도를 지킨 사람들


안용복→홍순칠→최종덕→독도경비대 안석배기자


조선시대 이후 끊임없는 외침에서 울릉도·독도를 지켜낸 자랑스런 한국인들이 적지 않다.

조선 숙종 때인 1693년 울릉도·독도로 고기잡이를 나갔던 어부 안용복(安龍福)은 일본 어선과 충돌했다. 일본으로 끌려간 그는 일본 중앙정부인 막부에 “울릉도·독도는 조선의 땅이고 일본 어부들의 울릉도 침범은 부당하다”며 따졌다. 안용복은 1696년에도 울릉도·독도 부근에서 일본 어선을 발견하고 동료들과 이를 물리쳤다. 결국 일본 막부는 1697년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땅이라고 인정한 공식문서를 조선 정부에 알려왔다.


6·25전쟁을 전후로 일본의 독도 도발이 잦아지자 이번에도 울릉도 출신의 민간인들이 나섰다. 군인출신인 홍순칠(1987년 사망)씨 등은 ‘독도 의용수비대’를 결성한 것이다. 울릉경찰서부터 박격포, 중기관총, M1소총 등 장비를 지원받아 사비를 써가며 독도를 지켰다. 1953년부터 1956년까지 활동 기간 동안 의용수비대는 독도에 무단 상륙하려는 일본인을 축출하고, 일본영토 표지를 철거했다.


한편 울릉도 주민인 최종덕씨는 1965년 3월 독도에 거주하면서 어로활동을 폈다. 1980년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서자, 1981년 주소지를 독도로 옮겼다.

1956년 이후 독도를 지키고 있는 이들은 경찰 ‘독도 경비대원’이다. 경북경찰청 소속인 이들은 동도에 거주하며 순찰을 돈다. 상주인력은 40여명이다.

[잊는다는건 * 작곡 박정명님]사용을 허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