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성씨 유래

가[소주가씨]

바래미나 2007. 7. 27. 01:50

 

소주가씨(蘇州賈氏)

[유래]

가씨는 본래 중국의 성으로 요제(堯帝)가 그의 둘째 아들 공명(公明)을 가후에 봉했으므로 나라이름을 따라 성을 가씨로 하였다.
우리나라 가씨는 소주가씨 단본으로 시조 가유약의 호는 지백당으로 명나라 신종 때 추밀원사, 병부상서, 태자소부를 지내고, 임진왜란이 난 이듬해인 1592년(선조 25년) 소원안찰사로 왕의 명을 받아 원병을 이끌고 조선에 들어왔다.
그는 안주에서 왜군과 싸워 공을 세우고 선조 29년까지 4년간 종군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이듬해 정유재란이 나자 다시 파견되어 아들 가상(賈祥)과 손자 가침(賈琛) 까지 따라와 3대가 종군하게 됐다.
전쟁중에 가유약이 아들을 구하려 나아가다 격전끝에 부자가 함께 전사하여 가침은 그들의 시신을 울산 서생진 도독동 양지바른곳에 묻고, 조선에 남아 조선인으로 귀화하여 울산에 터를 잡고 소주가씨의 뿌리를 내렸다.
조선말 철종은 이들 3대의 충효를 기리는 사당과 정문을 서산에 세웠다.

-시조 가유약의 묘소는 경남 울산 서생진 도독동에 있다.


[가문의번영]

소주가씨의 귀화조인 가침은 네아들을 두었는데 그가 죽은뒤 충남 서산으로 터를 옮겨 정착했다.
철종 때 3대의 충효를 기리는 사당과 정문이 세워지기도 했는데 가씨들은 이후 서산일대를 중심으로 충효의 가통을 이어왔다.
가행건(賈行健)은 시조의 14세손으로 천성이 어질어 도덕군자의 칭송이 높았으며 헌종 때 수군병마첨절제사를 지냈고 그의 아들 가일영(賈日永)은 철종 때 울진현령에 올랐다.
충량과에 장원급제 하고 고종 때 가선대부를 역임한 가중영(賈中永)도 가행건의 아들로 소주가씨의 가문을 빛냈다.
이외에도 프랑스 함대의 강화도 점령 때 의병을 일으킨 가익건(賈翊健)과 구한말의 청백리 가정로(賈廷魯)도 알려진 인물들이다.
조선 헌종 때의 명신 가행건(賈行健). 그는 충청도 안흥양진의 수군병마첨절제사가 되었는데 안흥지방은 전복과 해삼이 지방 특산으로 궁중에 올리는 진상품이었다. 엄동설한에도 백성들은 차가운 바닷물에 드나들며 해삼, 전복을 따다 관가에 바쳐 서울로 올려야했다. 가행건은 이같은 민폐의 시정을 중앙에 강력히 건의해 영의정 김좌근(金左根)이 이를 받아들여 진상공납을 폐지, 백성들의 고달픔을 덜게했다. 훗날 고을주민들은 돌과 구리로 각각 비석을 세워 그 공적을 새겼다고 한다. 그도 아버지만큼 선정을 펴 그가 울진을 떠날 때 군민들은 10여길이나 되는 암벽을 갈아 그의 공적을 새겼다.


[계 파]

권파
균파(菌派)
기한파
눌파(訥派)
만파(蔓派)
만석파(萬碩派)
문순파(文純派)
문익파(文翼派)
문진파(文晋派)
문헌파(文獻派)
문혁파(文赫派)
사성파(嗣聖派)
세원파(世元派)
세익파(世翼派)
세한파(世漢派)
세흥파(世興派)
수성파(守誠派)
순파(諄派)
안성파(安聖派)
연파
의민파(義敏派)
익한파(翊漢派)
전파(筌派)
창순파(昌順派)
창한파(昌漢派)
훤파(萱派)
훤한파(萱漢派)
희문파(希文派)
희성파(希聖派)


[집성촌]

현재 충남 서산, 홍성, 당진, 예산 일대에 많이 거주한다.
그중에도 태안읍이 중심인데 전국 1천 8백 가구의 가씨 중 1천백여 가구가 서산군에, 6백여 가구가 태안읍에 산다.
입향조는 가침의 아들인 가성(賈晟)등 4형제. 그들은 가침이 세상을 뜬뒤 고국인 중국으로 돌아가고자 뱃길이 가까운 태안반도 안흥만에 도착했으나, 그때 중국은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는 난세이므로 결국 귀환을 포기하였다.


[본관지]

중국 소주


[기 타]

[ 인 구 ] 1985년도 인구조사에서는 1,783가구에 7,888명으로 274성씨 중 111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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