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베트하면 아릅답고 청정한
자연과
불가사의한 신비로움이 먼저
떠오른다.
신비로움에는 티베트불교가
자리하고 그 중심에는 오명불학원과 야칭스가 있다.
해발 3900m의 고산지대
오지산간에 있는 라룽가르사원, 일명 오명불학원.
오명불학원 가는 길은 험하고
멀었다.
예닐곱 시간 거칠고 황량한
고산지대를 달려 도착했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는 4년이
넘게 걸렸다.
2천년
초 어렵게 왔다가 기관단총을 맨 무장경찰의 통제로
오명불학원과 랑무스는 근처에도
못가보고 발길을 돌려야했다.
워낙 오지로 접근 자체가
어려운데다 중국정부가 정치, 종교적인 이유로
여차하면 들어가는 길을 전면
봉쇄하기 때문이다.
오명불학원이 베일을 벗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불과 10여년 전이다.
오랫동안 외부와 단절된 채
아름아름 소문만 무성한 금단의 성역이었다.
1993년
워싱턴 포스트지가 지도상에도 나와 있지 않은 오명불학원을
은둔의 땅에 숨겨져 있는
세계최대의 수행사원으로 보도하면서
바깥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중국정부의 통제와
은폐로 오명불학원의 정확한 실체파악은 아직도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이다.
언제 또 들어가는 길이
차단될지 아무도 모른다.
수행 승려 수도 1만명이니,
3만명이니 설왕설래해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여기에 린포체의 기적 시현 등
사원 내에서 일어났다는 여러 가지 초자연적인 현상들과
산간오지에 수많은 수행자들이
도시규모의 거대한 쪽방 촌에서 생활하는 모습 자체가
얼핏 납득이 안가는 낯선
신비로움으로 다가온다.
이 때문인지 나에게
오명불학원은 아쉬움, 허전함, 목마름, 외로움 등을
채워줄 수 있는 꼭 가 봐야
할 신기루 같은 존재로 마음속에 자리잡아왔다.
관음촌에서 서둘러 아침
8시30분에 출발했으나 짧은 거리임에도 불구,
도로사정이 열악해 4시가
넘어서야 도착한다.
강을 따라 이어진 2차선의
비포장도로는 패이고 무너진 말 그대로의
오프로드로 사방이 공사
중이어서 3~40분 막혀 기다리는 것은 보통이다.
써다현 옹다라는 조그만
마을에서는 점심을 먹다가 공안차가 달려와
여권조사를 하는 등 검문을 해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혹시 오명불학원 가는 길이 봉쇄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이미 아바장족자치주에서 주
경계선을 넘어 깐즈장족자치주(甘孜藏族自治州)로 들어섰다.
제법 큰 바위들이 널려있는
비산비야의 황무지 길을 지나 몇 시간을 달려도 마을을 찾아보기 힘든 황량한 고원지대가 계속 이어진다.
이런 오지 산골짜기 어딘가에
몇만명이 거주하는 거대한 사원과 승려집단촌이 있다는 게 쉽게 믿겨지지 않는다.
드디어 저 앞 일주문이 보여
다 왔나 싶었는데 산자락 몇 개를 돌아 한참을 들어간다.
일주문서 좌우에 들어선 서너
곳의 크고 작은 집단촌을 지나 산모퉁이를 돌아서니 눈앞에 불쑥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듯 온통 붉은
색의 사원 쪽방수행촌이 시야를 가로 막는다.
커튼을 제치자 비현실적인
새로운 세계가 나타난 듯한 착각에 한참 넋을 잃는다.
위치나 수행촌 규모, 수행자들의 생활모습은
경이로움 그자체로 절로 입이
벌어진다.
골짜기 양옆의 산줄기가 저
멀리 앞쪽 위에서 말발굽 형으로 만나면서 사발형의 넓은 분지를 이룬다.
사방
산등성이와 분지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직사각형의 성냥갑 같은 쪽방들이 빈 틈 없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쪽방 촌이 아니라 사실상
하나의 도시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통나무로 엮거나 흙과 나무로
다져 지은 컨테이너 같은 손 바닥만한 집들은 대개
붉은 페인트칠을 해 멀리서
보면 산등성이는 물론 수행촌 전체가
온통 붉은 색이다.
오명불학원은 세계 최대의 불교
학원이자, 사원이며 승려들의
집단
수행촌이다.
오명불학원의 명성은 해외로
까지 퍼져 티베트인은 물론 중국본토의
한족과
싱가포르, 대만, 홍콩, 내몽고 등지에서 학승들이 구름처럼
몰려들면서
수행자 수가 한때는
3만7천명에 이를 정도로 커진다.
현재 1만여 개 넘는 쪽방들이
사람한명 지나가기 힘든 좁은 골목들을
거미줄처럼 품은 채 닥지닥지
붙어 거대한 집단 촌락을 이루고 있다.
비구, 비구니 등 승려와
불교학자, 수행신자 들이 공동체를 이뤄 함께 먹고 자면서
수행정진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연구하는 절집이자 불학원이요 연구센터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성냥갑
같은 집단 쪽방 촌에 2~3만명의
수행자들이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인구로 보면 마을이 아닌
웬만한 중소도시에 버금가는
규모로 하나의 도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현재도 수행자들이 각지에서
몰려들고 있어 조금 떨어진 사원 내 4~5곳에 새로운
수행집단촌이 형성되고 있다.
대법당을
중심으로 가장 광범위하게 형성된 메인 집단수행촌과 정문인
일주문
사이에 이미 제법 큰 수행 촌이 두 곳이나 들어서 몸집을 키우고 있다.
그 중간에도 산등성이 두세
곳에 컨테이너형태의 승방이 군데군데 들어서면서
쪽방 수행촌이 형성되고
있다.
이곳 수행자들은 숙식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자비로 건자재를 구입해 직접
자기가 살집을 짓고 살림을 장만한다.
경제력에 따라 집 규모나
생활수준이 차이를 보이는 아이러니가 있다.
목재나 창문 틀 등을 실은
리어카나 가스통을 끌고 가는 승려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스마트폰 바람은 고산 오지,
사바세계와 인연을 끊은 스님의 세계에도 예외 없이 불고 있다.
법전보다도 핸드폰을 더 가까이
하고 있는 것 같다.
남녀노소, 때와 장소, 앉거나
서고를 불문하고 통화하거나 화면을 들여다보는 모습은 일상이다.
심지어 코라를 돌거나 명상을
하면서 통화하는 모습도 흔히 본다.
편리, 빠름의 상징인 핸드폰이
수행생활에 큰 변화와 부작용을
몰고 오지 않을까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