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호 전투 당시 파괴된 중국 공산군의 T-34/85 전차
작성일: 2018-10-12 21:29:13
Destroyed Chinese Communist Army T-34/85 Tanks Korean War Battle of Chosin Reservoir
장진호 전투 당시 얼어붙은 미군의 M4A3 셔먼 전차들 - 1950년 11월
한국 6.25 전쟁 장진호 전투 당시 개마고원 지역 하갈우리-유담리 사이의 결빙된
도로위에서 혹한으로인해 고장난 차량 견인에 에를 먹는 M4A3 셔먼 전차 - 1950년 11월
장진호 전투 당시 함경남도 개마고원 지역의 산길로 이동하는 미 해병대의 M4A3 셔먼 전차 - 1950년 11월 19일
유엔군은 1950년 11월 19일까지 함경남도 장진호 방향으로 위험한 개마고원 산악 도로를 따라 전진했다.
미군의 전차들과 포병들은 아군에게 커다란 이점을 제공했으나
그것은 구불 구불한 1차선 도로를 따라 그곳에 갇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제 1차 소련-핀란드 전쟁 겨울전쟁 당시 전선에서 동사한 러시아인들의 양모 부츠인
발렌끼를 신은 유명한 소련군의 역사속 동사체- 1940년 2월 10일
한국 6.25 전쟁 장진호 전투 당시 혹한의 기후로 인해 동사한 미군 병사들의 동사체- 1950년 11월
1950년 12월 8일 장진호에서 11 마일 정도 떨어진 남쪽에 위치한 고토리에
117 명의 미 해병대 병사들 및 영국군 특공대가 무덤에 묻혔다.
장진호 전투 당시 신흥리를 지나는 미 제 3보병사단 정찰대의 그랜트 J 밀러 상사와
도로변에 파괴된 중국 공산군의 소련제 T-34/85 전차 - 1950년 12월9일
한국 6.25 전쟁 장진호 전투 당시 1950년 11월 27일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 루이스 출신의
미 해병대 제 5연대 하사관 E.E. Buhman에 의해 격파된 중국 공산군의 T-34/85 전차
장진호 전투 당시 한국 함경도의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으로 인해
미군의 전차 또한 문제가 발생하여 기갑 정비병 엔지니어들이 자주 수리를 했다
장진호 전투 당시 혹한 추위의 동장군은 인명뿐만이 아니고 군장비의 수명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미군의 M1 카빈 소총은 개스압이 혹한 추위로 인해 낮아져서 발사 불능에 가까운 상태가 자주 생겼다.
그래서 미군과 중국 공산군의 백병전시 쉽게 개머리판이 박살나서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미군은 M1 카빈 소총으로는 중국 공산군의 방한복을 뚫지 못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작동 불량도 심각했다.
그 때문에 병사들은 " 카빈은 그저 가지고 다니는 것일 뿐,
마지막을 위한 무기이다. 머리를 겨누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M1 개런드 소총은 카빈 소총보다는 추위에 잘 견뎌서 가능하면
카빈 소총을 버리고 M1 개런드 소총을 구하려고 애썼다.
그 중에도 스나이퍼용으로 개조된 M1 개런드는 손이 얼어 방아쇠를 당기기가 어려워지자,
손가락 걸이를 누르면 발사할 수 있도록 개조되기도 했다.
미 해병대의 기관단총이라고 사정이 나은 건 아니었다.
미군의 기관총들은 전쟁중 장기간 동안 제대로 된 정비를 받지 못한 채
혹한의 추위에 노출되어 장진호 전투 초기에 30발 탄창을 끼운 볼트액션 총이 되어 버리기 일쑤였다.
기관총과 차량과 전차는 최소한 두 시간에 한 번씩 작동시키지 않으면
얼어붙어서 작동을 시킬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미군의 수냉식 기관총은 물을 넣으면 얼어서 터지므로 특수 부동액을 넣거나 아예 냉각수를 넣지 않았다.
그렇게 사용해도 과열이 되지 않을 정도로 장진호 전투 당시는 혹한의 추위였다.
한국 6.25 전쟁이 발발되기 8년전 1942년 12월 독소전쟁시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스탈린그라드에서 영하 30도 이하의 기온은 전투 기간 내내 딱 한 번 기록되었다.
그런데 한국 6.25 전투 당시의 혹한 날씨는 그보다 더 맹위를 떨쳤으며
가장 추웠던 아침 기온은 영하 45도까지 내려간 날도 있었다.
스탈린그라드의 기온 측정 역사상 최저기온은 영하 32.6도였으며 1월 평균 기온은 영하 5.8도 정도였다.
그러했던 반면에 한반도 함경남도 장진군은 1월 평균 기온이 영하 15.5도 이고
전투가 일어난 12월 평균기온도 영하 11.6도였다.
한국 강원도 철원의 1월 평균 기온은 영하 5.5도 정도이니
장진호 전투시의 기온이 얼마나 혹한의 기온이었는지 바로 비교가 된다.
장진호 전투 당시의 혹한은 1940년 유례 없는 추위를 기록해 수십만의 소련군이 떼로 얼어죽었던
제 1차 소핀(소련-핀란드)전쟁이었던 겨울전쟁 당시와 비슷한 기온을 기록했을 정도였다.
한국 6.25 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는 가히 인류 역사상 가장 추웠던 혹한의 전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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