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역사속에서 빛 바랜 옛 모습
↑ 인천 중국인촌 1968
↑ 파주 용주골 1968
↑ 양양 남해항 1968
↑ 영주역 1969
↑ 부산 영도다리 부근 1970
↑ 안동 牛(소)市場 1971
↑ 안동 牛(소)市場 1971
↑ 구례 피아골 1973
↑ 서울 종로 2가 1974
↑ 강릉 선교장 1980
↑ 성철스님 1987
↑ 1930년대 서울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근처에서 통학중인
배재고보 학생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제공
↑ 1943년 일본식 속옷 훈도시를 입고
강가에서 수영하다 찍은 기념 사진.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제공
↑ 1933년 경주 수학여행을 찍은 사진들.
불국사와 석굴암, 첨성대 등을
뒤덮은 학생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제공
↑ 1936년 졸업앨범 사진. 학생들이 서로 엎드린
자세로 어우러져 배재학당의
교표 이미지를 만들었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제공
↑ 1920년대 화학 수업 광경.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제공
↑ 1920년대 교정에서 테니스를 치거나
↑ 1920년대 교정에서 테니스를 치거나
실내에서 탁구를 치는 모습이다.
↑ 1936년 찍은 웅변부 동아리의 연습 광경. 각양각색의 자세로
연사 흉내를 내는 모습이 재미있다.
↑ 1933년 배재고보의 어느 점심시간.
예나 지금이나 교실에서 도시락을까먹는 건 즐겁다.
↑ 70년대초 대구…넝마주이 소년((( 1970년대초만 해도
대구 지역 곳곳에는 넝마주이나 아침에 밥을 얻어
먹으러 다니는 거지,
허잡스러운 물품을 팔러다니는 상이군경 등이 많았다.
블록 담장에 지친 몸을 기댄 채 해바라기를 하며 생모를
생각하는 듯 어린 넝마주이의 표정이 더없이 서럽기만 하다.
↑ 60년대 대구 물장수 아저씨((( 60년대만 해도 대구의
상수도 보급률은 형편 없었다.
변두리 달동네 주민들은 매일 공동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오거나 매일
동네를 방문하는 물장수 아저씨한테 물을 사먹어야만 했다.
이때는 드럼통이 급수통으로 이용됐다.
↑ 60년대 개구쟁이들의 신천나들이((( 60년대 동구 신천동
푸른다리 근처징검다리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아이(왼쪽에서 네번 째)가 갓난애기를
등에 업고 돌보는 장면이 웃음을 자아낸다."
↑ 구름과자를 아시나요?((( 반세기 전만 해도
'구름과자'로 인기가 높았던 솜사탕 제조기는
'국민학교' 앞은 불량 군것질거리의집산지였다.
특히 뜨겁게 달궈진 철통 안에 설탕을 집어넣으면 금세
특히 뜨겁게 달궈진 철통 안에 설탕을 집어넣으면 금세
양철통에서 구름이피어올랐다.
'구름과자'로 인기가 높았던 솜사탕 제조기는
척박한 일상을 살던 아이들에겐
꿈결 같은 것이었다."
꿈결 같은 것이었다."
↑ 엄마 제가 이 잡아 드릴께요((( 공중위생 시스템이 무했던 60년대에는
이와 벼룩, 빈대가 주민들의 몸 곳곳에 기생했다.
이와 벼룩, 빈대가 주민들의 몸 곳곳에 기생했다.
좋은 날 동구 신천동 푸른다리 근처 판잣집 앞에서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헤집으면서 이를
잡아 주고 있는 딸의 눈매가 더없이 훈훈하기만 하다."
↑ 동네 개구쟁이들의 놀이터 '준공 직전의 경북도청'((( 준공 직전
공사 중인 경북 도청 창문 턱에 올라가 손을 잡고 놀고 있는
공사 중인 경북 도청 창문 턱에 올라가 손을 잡고 놀고 있는
동네 개구쟁이들. 도청은 옛 중앙공원 자리에서
1966년 4월1일 현재자리로 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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