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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이야기

바래미나 2017. 7. 14. 15:38

법정스님 이야기

죽게 되면 말없이 죽을 것이지 무슨 구구한 이유가 따를 것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레 죽는 사람이라면

의견서(유서)라도 첨부되어야겠지만,

 

제 명대로 살 만치 살다가 가는 사람에겐
그 변명이 소용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말이란 늘 오해를 동반하게 마련이므로,
유서에도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다.

 

 

그런데 죽음은 어느 때 나를 찾아올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많은 교통사고와 가스 중독과 그리고
원한의 눈길이 전생의 갚음으로 나를 쏠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 걸음 한 걸음 죽어 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생과 사는 결코 절연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나를 부를지라도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유서는 남기는 글이기보다
지금 살고 있는 '생의 백서(白書)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육신으로서는 일회적일 수밖에 없는 죽음을 당해서도

 

실제로는 유서 같은 걸 남길 만한 처지가 못 되기 때문에
편집자의 청탁에 산책하는 기분으로 따라 나선 것이다.

 

 

누구를 부를까? 유서에는 흔히 누구를 부르던데?

 

아무도 없다. 철저하게 혼자였으니까.

 

설사 지금껏 귀의해 섬겨온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그는 결국 타인이다.

이 세상에 올 때도 혼자서 왔고 갈 때도 나 혼자서 갈 수밖에 없다.

 

내 그림자만을 이끌고 휘적휘적 삶의 지평을 걸어왔고
또 그렇게 걸어갈 테니 부를 만한 이웃이 있을 리 없다.

 

 

물론 오늘까지도 나는 멀고 가까운 이웃들과 서로 왕래를 하며

살고 있다. 또한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생명 자체는 어디까지나
개별적인 것이므로 인간은 저마다 혼자일 수밖에 없다.

 

실존이다그것은 보랏빛 노을 같은 감상이 아니라
인간의 당당하고 본질적인 .

 


고뇌를 뚫고 환희의 세계로 지향한
베토벤의 음성을 빌리지 않더라도,


나는 인간의 선의지善意志 이것밖에는
인간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온갖 모순과 갈등과 증오와 살육으로 뒤범벅이 된 이 어두운 인간의

촌락에 오늘도 해가 떠오른 것은 오로지 그 선의지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내가 할 일은
먼저 인간의 선의지를 저버린 일에 대한 참회다.



이웃의 선의지에 대해서 내가 어리석은 탓으로
저지른 허물을 참회하지 않고는 눈을 감을 수 없는 것이다.


때로는 큰 허물보다 작은 허물이 우리를 괴롭힐 때가 있다.


허물이란 너무 크면 그 무게에 짓눌려
참괴(慙愧)의 눈이 멀고 작을 때에만 기억이 남는 것인가.


어쩌면 그것은 지독한 위선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평생을 두고 그 한 가지 일로 해서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자책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문득문득 나를 부끄럽고 괴롭게 채찍질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동무들과 어울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서였다. 엿장수가 엿판을 내려 놓고 땀을 들이고 있었다.


그 엿장수는 교문 밖에서도 가끔 볼 수 있으리만큼
낯익은 사람인데 그는 팔 하나가 없고 말을 더듬는 불구자였다.


대여섯된 우리는 그 엿장수를 둘러싸고
엿가락을 고르는 체하면서 적지 않은 엿을 슬쩍슬쩍 빼돌렸다.


돈은 서너 가락치밖에 내지 않았다.
불구인 그는 그런 영문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일이 돌이킬 수 없는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가 만약 넉살 좋고 건장한 엿장수였더라면
나는 벌써 그런 일을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장애자라는 점에서
지워지지 않은 채 자책은 더욱 생생하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지은 허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중에는 용서받기 어려운 허물도 적지 않을 것이다
.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그때 저지른
그 허물이 줄곧 그림자처럼 나를 쫓고 있다.


이 다음 세상에서는 다시는 더 이런 후회스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빌며 참회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살아 생전에 받았던 배신이나 모함도 그때 한 인간의

순박한 선의지를 저버린 과보라 생각하면 능히 견딜 만한 것이다.


"날카로운 면도날은 밟고 가기 어렵나니 현자가 이르기를 구원을 얻는 길 또한

이같이 어려우니라. < 우파니샤드>의 이 말씀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내가 죽을 때는 가진 것이 없으므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번거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은 우리들 사문의 소유 관념이다.


그래도 혹시 평생에 즐겨 읽던 책이 내 머리맡에 몇 권 남는다면,


아침 저녁으로 "신문이오" 하고 나를 찾아주는 그 꼬마에게 주고 싶다.



장례식이나 제사 같은 것은 아예 소용없는 일,


요즘은 중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한 술 더 떠 거창한 장례를 치르고

있는데, 그토록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이


만약 내 이름으로 행해진다면
나를 위로하기는커녕 몹시 화나게 할 것이다.


평소의 식탁처럼 나는 간단 명료한 것을 따르고자 한다.


내게 무덤이라도 있게 된다면 그 차가운 빗돌 대신


어느 여름날 아침에 좋아하게 된 양귀비꽃이나 모란을 심어 달라고

하겠지만, 무덤도 없을 테니 그런 수고는 끼치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기능이 나가버린 육신은 보기 흉하고 이웃에게 짐이

것이므로 조금도 지체할 것 없이 없애주었으면 고맙겠다.


그것은 내가 벗어버린 헌옷이니까, 물론 옮기기 편리하고 이웃에게

방해되지 않을 곳이라면 아무데서나 다비(茶毘 화장)해도 무방하다.


사리 같은 걸 남겨 이웃을 귀찮게 하는 일을 나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 같은 곳이다. 의자의 위치만 옮겨 놓으면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몇 번이고 볼 수 있다는 아주 조그만 그런 별나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안 왕자는 지금쯤 장미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까.그런 나라에는 귀찮은 입국사증 같은 것도 필요 없을

것이므로 한번 가보고 싶다. 그리고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

나고 싶다.누가 뭐라 한대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다시 출가 수행자가 되어 금생에

못 다한 일들을 하고 싶다.

법정(法頂, 1932년 10월 8일~2010년 3월 11일)은

대한민국의 불교 승려, 수필가이다.

무소유의 정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많은 저서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널리 알려왔다.

1954년에 승려 효봉의 제자로 출가하였고

1970년대 후반에 송광사

뒷산에 손수 불일암을 지어 살았다.2010년 3월 11일에

서울 성북구 성북2동에 위치한 길상사에서 폐암으로 인해

향년 78세로 사망(입적)하였다.
생애
1932년 10월 8일에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는 목포시에서 지냈다

. 목포상업고등학교(현 전남제일고등학교)를

거쳐 전남대학교 상대에 진학했다.

그는 당시에 일어난 한국 전쟁을 겪으며

인간에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대학교 3학년때인 1954년에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오대산으로 떠나기로 했던

그는 눈길로 인해

차가 막혀 당시 서울 안국동에 있던 효봉 스님을 만나게 된다.

효봉

스님과 대화를 나눈 그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고 행

자 생활을시작했다.그리고 그는 바로 다음 해에 사미계를 받은 후

지리산

쌍계사에서 정진했다. 1959년 3월에는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으며, 1959년 4월에는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명봉 스님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했다.
종교간 화합
1997년 12월 14일에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 개원법회에 ]]

김수환 추기경이 참석하여 축하해 주자,

이에 대한 답례로 1998년 2월 24일에 명동 성당을 방문하여

특별 강연을 가져 종교간의 화합을 보여주었다.


대표 저서
무소유, 영혼의 모음, 서 있는 사람들, 말과 침묵, 산방한담,

텅 빈 충만, 물 소리 바람 소리, 버리고 떠나기, 인도기행,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그물에 걸지 않는 바람처럼, 산에는 꽃이 피네, 오두막 편지,

 

 

반야심경듣기 & 원문(한문) & 해석 : 성공스님 독경

 

법정 스님의 유언

 

내가 있는곳이 바로 천당이고 지옥이다 내 맘이 즐거우면 천당이고 내 몸이 괴로우면 지옥이다. 세상을 모르는 중생들아 하나님이 어디 있고~~ 부처님이 어디 있나~~ㅎㅎ 지옥과 천당은 내가 만들어 살고 있는 것을 왜 모르나 ^^ 여보게, 친구, !! !! 산에 오르면 절이 있고 절에 가면 부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절에 가면 인간이 만든 불상만 자네를 내려다보고 있지 않던가? 부처는 절에 없다네.. 부처는 세상에 내려가야 만천지에 널려있다네.. 내 주위 가난한 이웃이 부처고.... 병들어 누워있는 자가 부처라네.... 그 많은 부처를 보지도 못하고 어찌 사람이 만든 불상에만 허리가 아프도록 절만하는가? 천당과 지옥은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는가? 살아있는 지금이 천당 이고 지옥이라네.... 내 마음이 천당이고 지옥이라네. 내가 살면서 즐겁고 행복하면 여기가 천당이고 살면서 힘들다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면 거기가 지옥이라네.. 자네 마음이 부처고 자네가 관세음보살이라네.... 여보시게, 친구!!! 죽어서 천당 가려하지 말고 사는 동안 천당에서 같이 살지 않으려나? 자네가 부처라는 것을 잊지 마시게 그리고 부처답게 살길 바라네, 부처답게 ‥.... 법정스님 글에서......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