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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전사 세계의 특수부대

바래미나 2016. 11. 22. 22:43

  


       

그림자 전사 세계의 특수부대

이스라엘 특수부대 사이렛 매트칼의 엔테베 작전

20세기 최대의 인질구출작전

에어프랑스기 피랍되다

1976년 6월 27일 12시 30분경 이스라엘의 로드(Lod) 공항을 떠나 파리로 향하던 에어프랑스 소속 A300 에어버스 여객기 AF-139편이 중간 기착지인 아테네에 내렸다. 아테네 공항의 보안은 허술한 편이어서 금속탐지기에 모니터링 요원도 배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아테네에서 56명의 승객을 태운 AF-137편은 이륙 3분 만에 피랍되었다. 승객들 가운데 테러범들이 섞여 있었던 것이다.

에어프랑스 소속 AF-139편은 중간 기착지인 아테네에서 이륙하자마자 테러범에게 납치되었다. 보안이 허술한 아테네 공항은 테러범이 항공기에 잠입하는 데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이스라엘 특수부대 사이렛 매트칼의 엔테베 작전 본문 이미지 1

이 여객기에는 254명의 승객이 탑승하고 있었는데, 그중 3분의 1이 이스라엘 국민이었다. 여객기를 납치한 테러범은 모두 4명으로, 2명은 혁명분파 소속의 독일 테러범이었고 2명은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 소속의 아랍 테러범이었다. 특히 독일인은 남녀 커플로, 남자는 윌프리드 보세(Wilfried Böse)라는 유명한 청부 테러범이었다.

여객기를 납치한 4명의 테러범.

여객기를 납치한 4명의 테러범.(좌측 상단으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자엘 나지 알 아잠(Jael Naji Al Azam), 파예즈 압둘라힘 자베르(Fayez Abdur-Rahim Jaber), 브리기테 쿨만(Brigitte Kuhlmann, 여자 테러범), 윌프리드 보세(Wilfried Böse).


이스라엘 정부는 여객기 피랍을 예상하고 최고 정예부대인 사이렛 매트칼(Sayeret Matkal)에 출동대기를 명령했다. 사이렛 매트칼은 부대 명칭 그대로 말하자면 합동참모본부 직할 ‘정찰부대’이지만 실제로는 대테러부대다.

테러범들은 종종 이스라엘로 여객기를 몰고 와서 정치적인 요구를 하는 습성이 있었다. 1972년 아랍 테러범들은 벨기에의 사베나(Sabena) 항공 여객기를 납치하여 로드 공항으로 몰고 와서는 국제 언론 앞에서 요구사항을 열거한 바 있다. 똑같은 상황을 예상한 이스라엘은 사이렛 매트칼을 로드 공항에 대기시키고 인질구출작전을 계획했다. 그러나 피랍기는 이스라엘로 향하지 않고 기수를 남쪽으로 돌려 리비아의 벵가지(Benghazi)에 기착했다. 사이렛 매트칼은 다시 기지로 돌아가 추후 명령을 기다렸다.

벵가지에서 7시간 반을 대기하던 피랍기는 재급유를 받고 이륙하여 동쪽으로 향했다. 부대는 다시 출동대기 상태에 들어갔으며 피랍기가 로드 공항에 내리는 즉시 구출작전을 실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자정이 되자 놀랍게도 피랍기가 아프리카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3시 피랍기는 우간다의 엔테베(Entebbe) 공항에 내렸다. 여기서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 테러범 3명이 납치범들에 합류했다.

아프리카로 향한 피랍기

이스라엘 특수부대 사이렛 매트칼의 엔테베 작전 본문 이미지 2

아테네를 이륙한 피랍기는 리비아의 벵가지를 거쳐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에 착륙했다. 화살표 실선은 피랍기의 이동 경로이고 점선은 이스라엘 구출부대의 비행계획도다.

승객들은 피랍된 에어버스 여객기가 엔테베 공항에 착륙하고도 무려 9시간이나 더 기내에 억류되었다. 그리고 6월 28일 월요일 정오가 되자 테러범들은 승객들을 공항 구청사의 승객 로비에 감금했다. 그날 늦은 오후 우간다의 대통령인 이디 아민(Idi Amin)은 승객들에게 자신이 직접 테러범들과 인질협상을 하고 있으며, 우간다 병사들이 승객의 안전을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아민은 이스라엘 정부가 테러범과 협상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다음날인 29일 15시 30분경 ‘페루인’이라고 불리는 팔레스타인계 아랍인의 지휘하에 움직이는 테러범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발표했다. 서독, 프랑스, 스위스, 케냐, 그리고 이스라엘에 투옥된 테러범 53명의 석방을 요구했던 것이다. 만약 이들이 석방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 시각으로 7월 1일 14시에 피랍 승객들을 살해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런 발표가 있자 당시 이스라엘 수상이던 이츠하크 라빈(Yitzhak Rabin)은 각료들을 모아 대안을 검토했다. 이스라엘 국방군 합참의장인 모타 구르(Motta Gur) 장군은 라빈 수상과의 회의에 앞서 군사적 작전을 검토할 것을 자신의 참모들에게 지시했다. 그런데 구르의 참모는 아니지만 이스라엘 공군 유일의 C-130 비행대대장이던 요슈아 샤니(Joshua Shani) 중령은 엔테베에 피랍기가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이미 대략적인 비행계획을 짜고 있었다. 병력과 장비를 싣고 엔테베까지 갈 수 있는 기체는 C-130이 유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공군참모총장이 작전에 관해 물었을 때 모든 문제에 대해 유창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군사작전의 가능성

한편 구르 장군은 라빈 수상에게 군사작전의 가능성을 보고했지만 당시로서는 대수롭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당시로서는 이디 아민이 피랍사건의 중재자로 공정히 활동하는 듯 보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내각은 이 독재자와의 협상을 통해 인질을 석방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또한 승객의 3분의 2가 이스라엘 국민이 아니었으며 항공기도 이스라엘 국적기가 아니라 프랑스 국적기였기 때문에 프랑스 정부가 협상의 주도권을 갖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에서 우간다는 무려 4,000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져 있었다. 애당초 이런 거리를 극복하고 인질구출작전을 실행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한편 같은 날 저녁 합참부의장인 예쿠텔 아담(Yekutiel Adam) 장군은 사이렛 매트칼의 이전 부대장이었던 에후드 바라크(Ehud Barak) 대령을 호출했다. 그는 바라크에게 군사작전의 가능성을 특공대원들과 공수부대원들과 함께 ‘비공식적으로’ 토의할 것을 명했다. 이에 따라 바라크는 밤새 특수부대원들과 토의를 마치고 다음날 아침 최초의 인질구출방안을 제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특수부대가 고무보트를 가지고 엔테베 공항 인근의 빅토리아 호수로 강하하여 강을 건너서 공항으로 잠입한 뒤, 인질을 구출하고 우간다군에게 투항한다는 것이었다. 이 계획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는데, 이스라엘은 이전까지 한 번도 고무보트로 하드덕(Hard Duck)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 그중 가장 작은 문제일 정도로 계획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로서는 이 계획이 가장 최선의 대안이라고 생각되었다.

엔테베는 중립 지역이 아닌 적지

작전에 필수 요소는 정보다. 그런데 이스라엘에게는 정보가 너무 적었다. 이스라엘과 우간다는 원래 우호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이 첨단 제트기의 제공을 거부하자 이디 아민은 1972년에 이스라엘과 단교를 선언했다. 정식 외교 채널조차 없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정보를 수집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우간다의 무관으로 파견된 바 있던 이스라엘군의 바루크 바레프(Baruch Bar-Lev) 준장이 이디 아민과 직접 통화를 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바루크 바레프 준장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민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팔레스타인 테러범들에게 동조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은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태가 이스라엘에 유리하게 해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인질을 구출하여 우간다군에게 투항한다는 계획 또한 무용지물이 되어버릴 터였다. 그럼에도 강하작전 준비는 계속되었다. C-130 대대장인 샤니 중령은 고무보트 강하 시험을 실시했다. 처음 시험은 실패하여 고무보트가 터졌지만, 이후 문제를 해결하고 하드덕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한편 엔테베에서는 유대인이 아닌 승객 47명이 석방되었다. 이들이 프랑스 대사관을 거쳐 파리로 돌아가자 정보당국은 피랍 상황에 관한 수많은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특히 이디 아민이 테러범에게 협력하고 있을 것이라는 이스라엘의 우려는 석방 인질들의 증언을 통해 사실로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강하작전의 가능성을 확인한 목요일 저녁, 전혀 다른 구출작전을 새롭게 입안해야만 했다. 적진에 침투하여 인질을 구해오는 어려운 작전이었다.

이스라엘 특수부대 사이렛 매트칼의 엔테베 작전 본문 이미지 3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은 인질협상의 중재자를 자처했지만, 실은 팔레스타인 테러범을 지원하고 있었다. 사진은 이디 아민(좌)과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 (우)]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의 다정한 모습이다.

적의 심리를 이용한 기습작전의 입안

특수전의 핵심 요소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보통 ‘기습’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한 정답이 아니다. ‘기습’이란 적이 대비되어 있지 않을 때 공격하는 것이다. 그러나 특수전에서 적은 대개 기습을 예상하고 대기하고 있다. 특수부대가 타격할 주요 목표에는 언제나 우수한 경계 병력이 있고, 인질구출작전에는 특수부대의 기습을 예상하고 기다리고 있는 테러범이 있다. 특수부대에게 ‘적이 대비되어 있지 않을 때 공격’하는 사치는 허락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다.

특수부대는 상대적 전력 우위에 승부를 거는 부대다. 실제적으로 병력이 적더라도 ‘기습, 속도, 그리고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적을 ‘기만’하고 ‘압도’하여 상대적 전력 우위를 통해 임무를 완수한다. 즉 특수전의 핵심 요소는 ‘상대적 전력 우위’에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군은 엉뚱한 곳에서 이런 ‘상대적 전력 우위’를 찾았다.

새로운 구출작전을 입안하는 가운데 다소 ‘엉뚱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C-130 수송기를 곧바로 엔테베 공항에 착륙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훌륭한 의견이었다. 당시 이스라엘군이 우간다까지 직접 날아가서 작전을 수행하는 무모한 짓을 할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엔테베 공항에 직접 착륙하는 것은 최고의 기습효과를 가져올 것이 틀림없었다. 적의 심리를 활용한 기만이자 기습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어떻게 야간에 조명 없이 C-130을 착륙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스라엘 공군은 이전에 한 번도 블랙아웃 랜딩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실행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프로토타입 야시경을 보유했던 이스라엘 공군은 시나이(Sinai) 사막에서 야간 착륙 시험을 성공하면서 구출작전이 가능함을 입증했다.

이스라엘 특수부대 사이렛 매트칼의 엔테베 작전 본문 이미지 4

이스라엘군은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사상 최대의 구출작전을 계획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공군에서 이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항공기는 C-130뿐이었다.

완성되지 못한 작계, 그리고 협상 시한

이 작전계획은 매우 단순한 것으로, C-130 4대를 엔테베 공항에 착륙시키는 것이었다. 엔테베 공항은 최근에 개수가 이루어져 구청사와 신청사로 나뉘어 있었는데 인질들이 있는 곳은 구청사 쪽이었다. C-130 1번기가 구청사에 착륙하면, 사이렛 매트칼이 인질 구출작전을 수행한다. 1번기에 사이렛 매트칼과 함께 동승한 공수부대원은 신청사를 점거한다. 2번기에는 탑승하는 장갑차와 특수부대 및 공수부대는 사이렛 매트칼을 증원하여 화력지원 임무를 맡는다. 3ㆍ4번기에 탑승한 예비 병력에게는 구출한 인질들을 안전하게 탑승시키는 임무가 부여되었다.

구출작전의 총지휘관인 댄 숌론(Dan Shomron) 준장은 구출작전 자체에 대해서는 대체로 만족했으나, 전력 구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다. 구출부대는 테러범뿐만 아니라 우간다군과도 교전을 벌여야 했기 때문에 전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이렇게 작전계획이 아직 구체화되지 못한 사이에 협상 시한이 다가왔다. 구르 합참의장이 라빈 수상에게 아직 군사작전을 실행할 수 없는 상태라고 보고하자 이스라엘 정부는 긴급회의를 열고 테러범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기로 결정했다. 여태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라빈 정부는 단지 시간을 벌기 위해 협상을 벌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테러범을 풀어줄 용의까지 있었다. 이때까지 무려 206명의 인질이 붙잡혀 있었으며, 그중 절반 이상이 이스라엘 국민이 아니었기 때문에 외교적 부담이 큰 탓도 있었다.

한편 이런 이스라엘의 결정을 받아들인 테러범들은 인질 처형 시기를 7월 4일 일요일로 연장해주었다. 또한 테레범은 100명의 인질을 추가로 풀어주었다. 이제 엔테베 공항에는 이스라엘 국민이거나 이스라엘 국적이 아닌 유대인들, 그리고 에어프랑스 승무원 12명까지 포함해 총 106명의 인질이 남게 되었다. 이로써 유대인을 공격하겠다는 테러범의 의도는 명백해졌다. 이는 오히려 여론에 홀로코스트의 악몽을 상기시키면서 이스라엘 정부에게 항전 의지를 심어주어 군사작전을 결심하도록 재촉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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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합참의장인 구르 장군(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은 인질을 구출하기 위한 군사작전에 회의적 이었다. 피랍된 지 3일이 지나도록 뚜렷한 정보를 수집하지 못했지만, 구출부대장 숌 론 장군(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은 제한된 정보로 최선의 작전을 구상했다.

구출부대의 규모를 논하다

한편 당시 국방장관이던 시몬 페레스(Shimon Peres)는 참모들을 불러 의견을 물으며 구출작전의 가능성을 심도 깊게 논의했다. 구르 합참의장은 여전히 단 이틀간의 준비로는 이런 대규모 구출작전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작전은 사상자 발생 가능성이 높았고, 이스라엘군으로서는 마알랏(Ma’a lot) 초등학교 참사(1974년 5월 15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테러범 3명이 마알랏의 한 초등학교에 난입하여 105명의 학생과 교사를 인질로 잡은 사건. 진압작전에서 25명의 학생이 사망하고 56명이 부상을 입었음.) 이후에 더 이상 군사작전으로 인한 재앙을 감당할 처지가 아니었다. 또한 주요 목표 지점인 엔테베 공항 구청사에 대한 정보가 너무 피상적인 점도 문제였다. 열띤 토의 끝에 페레스 장관은 곧바로 세부 작전의 입안과 훈련 실시를 지시했고, 숌론 장군을 작전지휘관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참모들은 작전은 언제라도 취소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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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방향이 보이지 않던 구출작전은 사이렛 매트칼의 부대장 요니 네타냐후 중령이 작전의 세부를 수립하면서 방향을 잡았다. 요니는 단 이틀 만에 구출작전의 모든 상황을 세세히 재현하면서 구출작전이 실현 가능함을 참모부에게 설득했다.

회의가 끝난 직후 숌론 장군은 사이렛 매트칼 부대장 요나단 ‘요니’ 네타냐후(JonathanYoniNetanyahu)를 호출했다. 숌론이 제시한 작전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사이렛 매트칼이 구청사와 인근 지역을 점령하는 동안 공수부대와 골라니(Golani) 부대가 신청사와 관제탑을 제압하고 인질구출부대의 증원 및 호위 병력으로 대기한다는 것이었다. 숌론은 대규모 병력으로 전력 우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요니의 입장은 달랐다. 더욱 작고 기동성 있는 부대의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숌론의 작계는 너무 광대해서 실행에 옮기는 데 제한 사항이 많으므로, 병력의 규모를 줄여 더욱 유연성 있는 작전을 실행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 요니의 주장이었다. 결국 숌론은 부대 구조에 대해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기로 했다. 대신 요니가 작전의 세부를 구상하도록 전체적인 기본 방안만을 제시해주었다. 요니는 밤새 작전의 세부를 검토했다.

작전의 세부

결국 다음날인 7월 2일 금요일 오전 7시를 기해 숌론은 최종 작전 명령을 하달했다.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인 모사드(Mossad)가 석방된 인질들을 조사하면서 인질의 정확한 위치, 우간다군의 배치 현황 등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수집 중이었지만, 이는 그때까지 사이렛 매트칼에게 전달되지 않고 있었다. 이에 따라 작전계획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상태로 입안되었다.

요니가 입안한 부대 편성과 임무는 다음과 같다.

구분구성부대 및 지휘관임무

지휘제대

지휘통신부
(지휘 : 댄 숌론 준장)

1. 작전 전반에 대한 지휘통제
2. 통신 총괄

공격제대

사이렛 매트칼
(지휘 : 요니 네타냐후 중령)

1. 구청사 내의 인질구출작전 실시
2. 구출 인질을 C-130까지 호송

지원제대

사이렛 찬하님/사이렛 골라니
(지휘 : 숄 모파즈)

1. 적 증원 병력이 공격제대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차단
2. C-130을 보호하며 지상급유 지원
3. 주기된 우간다군 미그기를 파괴하여 차후 추적을 방지
4. 구출된 인질들이 C-130에 탑승할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

항공제대

C-130 비행대대
(지휘 : 요수아 샤니 중령)

1. 구출부대를 엔테베 공항까지 은밀히 수송, 야간 착륙
2. 지상에서 재급유 실시 후 인질 및 병력을 싣고 퇴출

공격제대의 임무

우선 C-130 1번기가 모든 조명을 끈 채로 어두운 활주로에 착륙한다. 이를 위해서 C-130 비행대의 대대장 샤니 중령이 직접 1번기의 조종간을 잡을 예정이었다. 한편 착륙한 1번기가 활주로 북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특수부대 1개 조가 수송기에서 뛰어내려 후속 기체를 위해 지상유도등을 설치한다. 1번기에서 내린 구조대는 우간다군으로 위장하고 구청사로 접근한다.

원래는 사이렛 매트칼이 이디 아민 일행으로 위장하고 구청사로 접근하려고 했었다. 때마침 이디 아민이 아프리카 통일기구(OAU)에서 회담을 마치고 우간다로 돌아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이것은 실로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민이 예정보다 일찍 귀국하는 바람에 이 계획은 중지되었고, 대신 우간다군 고위 장성의 방문처럼 위장하기로 했다.

이스라엘 특수부대 사이렛 매트칼의 엔테베 작전 본문 이미지 7

원래 사이렛 매트칼은 이디 아민 일행으로 위장하고 구청사로 접근하려고 했었다. 마침 이디 아민은 아프리카 통일기구에서 회담을 마치고 우간다로 돌아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이것은 실로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민이 예정보다 일찍 귀국하는 바람에 이 계획은 중지되었고, 대신 우간다군 고위장성의 방문처럼 위장하기로 했다. 사진은 위장을 위해 사용된 벤츠 승용차를 C-130 수송기에 싣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35명의 사이렛 매트칼 대원들은 모두 우간다 군복을 입기로 했다. 그러나 대원들은 우간다인처럼 보이기 위해 검은색 위장크림을 칠하지는 않기로 했다. 어차피 야간에 기습하는 작전이므로 우간다군 경계병에게 발각될 위험이 적었고, 얼굴에 검은색 위장크림을 칠할 경우 오히려 내부소탕 시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편 차량으로는 벤츠 승용차 1대, 랜드로버 군용 지프 2대를 선택했다. 랜드로버는 우간다군이 흔히 사용하는 병력수송차량이고, 벤츠는 우간다 장성이 관용차량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구청사에 도착한 부대는 3개 조로 나뉘어 작전 1팀이 3개 출입문을 동시에 파쇄하여 1층으로 진입한 뒤 테러범을 제압하고 인질을 구출한다. 이와 함께 작전 2팀이 구청사 2층으로 올라가 주둔하고 우간다군을 제압한다. 한편 지휘통제반은 청사 외부에서 대기하면서 랜드로버에 탑재된 50구경 기관총으로 위협지대(구청사 위층 및 관제탑)를 제압한다. 요니는 관제탑을 공격 목표에서 제외했다. 관제탑을 공격하려면 인원이 더 필요한 데다가 공격 과정에서 희생자가 나올 확률 또한 높았기 때문이다. 특수전에서는 목표가 집중될수록 소요 인원과 작전 시간이 줄어들고, 그렇게 되면 그만큼 상대적으로 전력 우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스라엘 특수부대 사이렛 매트칼의 엔테베 작전 본문 이미지 8

작전 명령은 최종 협상 시한 이틀 전에 하달되었다. 따라서 부대원들이 작전을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하루도 못 되었다.

지원ㆍ항공제대의 임무

인질구출부대에 있어 가장 큰 위협은 바로 구청사 200미터 부근에 위치한 우간다군의 기지였다. 여기에는 무려 1,000명의 병력과 함께 미그(MIG) 전투기가 배치되어 있었다. 이들을 차단하는 임무는 사이렛 매트칼이 아닌 사이렛 찬하님(Sayeret Zanchanim, 공수특전부대)과 사이렛 골라니(Sayeret Golani, ‘골라니’ 보병여단 소속의 정찰대)로 구성된 합동기동부대에게 맡겨졌다. 다수의 적에 대항하기 위해 지원제대에는 M113 장갑차 4대가 포함되었다.

사이렛 매트칼이 인질을 구출하는 동안 사이렛 찬하님은 구청사 인근에 차단선을 구축하여 우간다군의 증원을 막는다. 또한 일부가 우간다 공군의 미그기에 폭탄을 설치하여 적 전투기의 C-130 요격을 사전에 방지한다. 한편 사이렛 골라니는 C-130 근처에 남아 항공기를 보호하고 인질과 구출대의 퇴로를 확보한다.

항공제대는 사실상 가장 어려운 임무를 맡았다. 4,000킬로미터 거리를 급유 없이 침투비행하고, 야간에 조명도 없이 아군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적진 한가운데에 착륙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노련한 지휘관과 조종사들은 그 짧은 시간에도 훈련을 반복하면서 단기간 내에 야간비행기술을 놀랄 만큼 향상시켰다.

이렇게 작전을 준비하는 동안 최종 협상 시한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작전의 실행까지는 채 이틀도 남지 않았다.

속도전을 수행하라

토요일 아침이 되자 대원들은 지정된 시간보다 앞서 부대에 집결했다. 최종 검열을 위해 인질구출계획의 수정과 장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출동 직전까지도 새로운 정보들이 속속 들어왔기 때문이다. 장비 점검이 끝나자 공격부대인 사이렛 매트칼의 지휘관인 요나단 ‘요니’ 네타냐후 중령은, 이 작전의 최대 목표는 인질 구출이지 적의 근거지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시간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30분에서 1시간 안에 인질 구출부터 퇴출까지 완수해야만 했다. 이를 위해서는 인질 구출에 직접적인 방해 요소로 작용하는 목표물 이외에는 가급적이면 교전을 피해야 한다. 그리고 인질 구출에 성공하고 나면, 그때는 부수적인 목표물과도 교전한다. 이런 기본적인 방침을 세우고 우발사태 발생 시 행동 요령들을 토의하면서 사이렛 매트칼의 전술 토의는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11시 30분경 사이렛 매트칼과 공군 수송비행대대를 포함한 구출부대는 합참의 장성들 앞에서 작전계획을 보고했다.

구출부대는 13시 20분 로드 공항에서 출발하여 시나이 반도의 샤름 알셰이크(Sharm al-Sheikh) 항공기지로 향했다. 수송기와 지상 구출부대와의 합동훈련은 아직 실시된 바가 없었고 지휘계통도 조종되고 있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정부는 아직 구출작전의 실시 여부를 결정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예비기를 포함한 5대의 C-130 수송기는 러시아 정보수집선과 이집트 레이더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저공비행으로 사막 위를 날았다. 무더운 사막 위를 저공비행하던 수송기는 심한 난기류까지 만나서 샤름 알셰이크 항공기지에 착륙했을 때에는 모든 대원들이 심한 멀미에 시달렸다. 심지어는 사이렛 매트칼 대원 중 1명은 심한 구토증세로 구출작전에서 제외되기까지 했다.

아프리카 대륙으로 출발하다

15시 30분, 숌론 장군은 구출부대의 출동을 명령했다. 더 이상 출발을 미루었다가는 자정의 공격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라빈 수상이 아직 구출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임무가 취소된다면 부대를 소환하면 그만이었다.

1번기에는 숌론 장군과 지휘부, 요니와 사이렛 매트칼 대원 29명, 사이렛 찬하님 대원 52명, 벤츠 승용차, 랜드로버 2대가 실려 있었다. 2번기에는 지휘부 추가 인원, 사이렛 찬하님 17명, 그리고 장갑차 2대와 숌론의 지휘용 지프 1대, 3번기에는 사이렛 골라니 30명과 장갑차 2대, 그리고 지프 1대, 4번기에는 사이렛 골라니 20명, 의료반 20명, 지상재급유 요원 10명, 그리고 급유펌프가 실려 있었다. 이렇게 잔뜩 병력과 장비를 실은 C-130은 이륙 시부터 제한중량을 초과한 상태였다.

비행은 약 7시간 반이 걸리는 여정이었다. 샤름 알셰이크를 이륙한 C-130 편대는 고도 50피트로 초저공비행을 하면서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의 레이더 감시망을 피해 홍해를 건너 에티오피아에 도달했다. 일단 에티오피아 영공에 접어들자 C-130은 다시 고도를 2만 피트로 올리고 정상적인 비행을 했다. 당시 에티오피아에는 대공수색 레이더가 없었기 때문에 구출부대가 발각될 염려가 없었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에서 남남서로 비행을 계속하던 편대는 케냐의 북쪽을 거쳐 우간다로 향했다. 그리고 22시 30분경 드디어 우간다의 빅토리아 호수 인근에 도착했다. 이제 몇 분만 더 가면 엔테베였다. C-130이 엔테베 공항 관제탑과 착륙 중인 브리티시 항공 여객기의 교신 내용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한편 작전의 총괄지휘를 위한 공중사령부도 출동했다. 예쿠텔 아담 합참부의장과 벤야민 펠레드(Benjamin Peled) 공군참모총장은 보잉 707 지휘통제기에 탑승하여 구출부대의 총괄적인 지휘와 이스라엘 본국과의 연락 임무를 맡았다.

야간의 착륙

계획에 따라 나머지 C-130 수송기 3대는 편대에서 이탈하여 상공에 대기하고, 1번기가 엔테베 공항으로 접근을 시작했다. 숌론 장군과 요니 중령도 조종석에 모여 지상을 향해 C-130이 내려가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C-130은 모든 조명을 끈 채 레이더만으로 고도를 측정하면서 지상으로 향했다. 원래는 야시경을 사용하기로 했었지만 장비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어 레이더 착륙을 감행했다. 베테랑 조종사 샤니 중령의 완벽한 조종하에 기체는 1976년 7월 3일 23시(엔테베 현지 시각으로는 자정)에 엔테베 공항에 착륙했다.

이스라엘 특수부대 사이렛 매트칼의 엔테베 작전 본문 이미지 9

1번기가 23시(현지 시각 자정)를 기하여 착륙을 개시하면서 구출작전이 시작되었다.

기체가 착륙하자 기내는 작전 준비로 바빠졌다. 사이렛 매트칼은 벤츠와 랜드로버의 시동을 켜고 출발할 준비를 했다. 한편 사이렛 찬하님 대원 10명은 착륙한 뒤 정지하기 위해 감속하는 C-130의 사이드 도어로 뛰어내려 활주로에 비상등을 설치했다. 활주로의 끝에 도착한 C-130은 기수를 돌려서 구청사 방향으로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C-130의 후방 램프가 열리면서 3대의 차량이 쏟아져 나왔다. 우간다군으로 위장한 사이렛 매트칼 대원들이 드디어 구출작전을 시작한 것이다.

밤의 정적을 가른 총성

29명의 사이렛 매트칼 대원들은 모두 우간다 군복을 입고 있었다. 이들은 벤츠 승용차 1대와 랜드로버 군용 지프 2대에 탑승했다.

라이트를 켠 3대의 차량은 약 70킬로미터 속력으로 달렸다. 라이트를 끄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오히려 끄고 달릴 경우 우간다 경비 병력에게 의심을 살 위험이 있었고, 또 어두운 밤에 헤드라이트를 켜면 강렬한 빛 때문에 눈이 부셔 경비병들이 차량 안의 이스라엘 특수부대원들을 알아보기 힘들 게 분명했다. 약 1분을 달리자 차량 행렬은 구청사로 향하는 차량 전용 도로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길 양쪽에서 우간다군 경비병 2명이 나타났다. 오른쪽 경비병이 벤츠를 향해 정차 명령을 내렸다. 벤츠가 계속 달리자 경비병은 소총을 장전하고 차량을 세우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경비병이 사정권 내에 들어오자 요니는 벤츠의 속도를 줄이고 마치 신분을 증명이라도 할 듯 창문을 내렸다. 뒷좌석에 앉은 요니와 다른 대원은 소음기를 단 베레타(Beretta) M1951 권총을 경비병들에게 발사했다. 그러나 경비병은 쓰러지듯 총알을 피하며 다시 일어섰다.

아무리 숙련된 대테러부대원이라 해도 이동하는 차량에서 좁은 승용차 창문 사이로 움직이는 표적을 맞히는 것은 쉽지 않다. 길가 오른쪽에 있던 경비병은 일어서서 벤츠 앞에 소총을 발사했고, 왼쪽 경비병은 구청사 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후방의 두 번째 랜드로버에 탑승한 대원들이 사격에 가세해 경비병들을 모두 사살했다. 그러나 밤의 정적을 가르는 총성으로 인해 이제 기습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요니는 대원들에게 전속력으로 달릴 것을 지시했다. 청사까지는 겨우 200미터도 남지 않았다.

이스라엘 특수부대 사이렛 매트칼의 엔테베 작전 본문 이미지 10

우간다군으로 위장한 사이렛 매트칼의 기만전술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비록 최초의 교전으로 기습의 효과를 잃기는 했지만, 테러범들은 어둠 속에서 구출부대를 우간다군으로 착각했다. 사진은 우간다 군복과 AK로 무장한 사이렛 매트칼 대원의 모습이다.

구청사로 돌입하다

구청사 쪽으로 다가가면서 요니의 눈앞에는 테러범들과 우간다 병사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 누구도 사이렛 매트칼의 차량 행렬에 총격을 가하지 않았다. 구청사의 중앙홀 입구에 차량을 세운다는 원래의 계획과는 달리, 요니는 벤츠와 랜드로버를 구청사 관제탑 아래쪽에 신속히 세웠다. 인질구출부대가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테러범과 우간다군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요니는 정차와 동시에 대원들에게 건물 소탕을 명령했다. 사이렛 매트칼의 부지휘관인 무키 베처(Muki Betzer) 소령은 자신의 공격제대를 이끌고 구청사 건물로 돌진하면서 건물 밖의 우간다 병사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그러자 테러범들은 달아나면서 외쳤다.
“우간다 놈들이 미쳤어! 우리에게 총질하고 있어!”
사이렛 매트칼의 위장작전이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사이렛 매트칼은 일단 구청사에 도착한 이후 3개 제대로 나뉘었다. 그리고 대원들은 작전계획에 따라 구청사의 진입구에 집결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대원들이 진입을 주저하는 듯 보였다. 요니는 전진하라고 수차례 소리쳤지만 무키는 계속 대기하고 있었다. 시간이 핵심인 구출작전에서 조금이라도 주저하면 그것은 인질의 사망으로 연결된다. 요니는 무키 앞으로 달려 나와 돌격을 지시했다. 실제로 지연된 시간은 15초 정도였지만, 요니에게는 1초가 아까웠던 것이다.

그 순간 도열한 대원들의 뒤에서 총성이 들렸다. 관제탑 뒤의 나무 박스 사이에서 우간다 경비병이 대원들을 향해 총격을 시작한 것이다. 대원들은 곧바로 응사하여 불청객을 제압했다. 그러나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방금 전의 총격에 요니가 쓰러졌던 것이다.
“요니 중령이 쓰러졌다!”
대원 하나가 외쳤지만 대원들은 멈출 수가 없었다. 요니는 이미 작전의 준비 단계에서 대원들에게 확고히 지시했다. 자신을 포함하여 누가 쓰러지더라도 개의치 말고 작전을 수행하라는 것이었다. 대원들은 요니를 신경 쓸 여유도 없이 그의 지시대로 3개 제대로 나뉘어 작전을 진행했다.

엔테베 공항 구청사 공격도

사이렛 매트칼은 공격제대 2개 및 지휘통제반, 이 3개조로 나뉘어 구청사를 공격했다. 다행히도 엔테베 공항 구청사는 단교 이전에 이스라엘 시공사가 건설한 건물이었기 때문에, 사이렛 매트칼은 구청사의 청사진과 사진 및 동영상 등을 확보해놓고 있었다.

구청사의 혈전

요니의 돌격 명령에 제일 먼저 달려 들어간 것은 아미르 오퍼(Amir Ofer)라는 22살의 젊은 대원이었다. 아미르가 중앙홀의 입구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 보이자 테러범 1명이 유리창을 뚫고 AK-47 소총을 난사했다. 아미르는 첫 번째 출입문 대신 두 번째 출입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실내 한가운데 인질들이 엎드려 있었다. 또다시 총알이 아미르 쪽으로 날아왔다. 아미르는 누운 자세로 자신을 노리는 테러범을 향해 기관단총을 발사하여 사살했다. 그리고 CQB(근접전투기술)의 기본에 따라 오른쪽 벽을 계속 따라가면서 테러범을 찾았다.

한편 아미르의 뒤를 따라 두 번째로 진입한 암논 펠레드(Amnon Peled)가 그의 왼쪽을 돌면서 실내를 수색했다. 그때 엎드려 있던 인질들 사이에서 2명의 남녀가 AK 소총을 들고 아미르를 겨누면서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원래 이들은 창밖에서 이동하고 있는 구출부대원들을 조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달려 들어온 아미르에 놀라 반사적으로 조준 방향을 바꾼 것이었다. 펠레드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반사적으로 테러범 2명을 탄창 하나로 해치웠다.

바로 이때 무키 소령과 아모스 고렌(Amos Goren)이라는 대원이 동시에 중앙홀로 들어왔다. 기둥 뒤에 숨어 있던 테러범 한 명이 아모스를 겨누고 AK 소총을 발사했다. 이와 동시에 아모스도 그 테러범을 발견하고는 사격을 시작했다. 둘은 거의 동시에 총을 발사했지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아모스의 탄환이 테러범의 총을 뚫고 들어가 공이를 멈추고 테러범을 사살한 것이었다. 불과 0.1초도 안 되는 간발의 차이로 아모스의 발사가 빨랐던 것이다.

대혼란의 현장

C-130이 착륙한 지 3분 만에 테러범 7명 중 4명을 사살하고 인질을 확보했다. 그러나 아직 인질의 안전이 확보된 상태는 아니었다. 우간다군을 완벽하게 제압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테러범들이 공격해올 가능성도 높았다. 인질을 확보하고 중앙홀을 점령한 작전1제대의 대원들은 긴장했다.

제일 먼저 진입한 아미르는 갖고 있던 확성기로 영어와 헤브루어로 인질들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외쳤다. 그러나 혼란에 빠진 인질들은 간단한 지시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인질들 가운데 1명이 갑자기 일어났다. 대원들이 긴장하고 총을 겨누었지만 어린 소녀임을 알고 총구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다음 인질은 그렇게 운이 좋지 못했다. 대원들의 지시를 듣지 못하고 일어난 19세 청년이 테러범으로 오인되어 사살되고 말았던 것이다. 한편 인질 가운데 또 다른 2명이 사살된 채 발견되었는데, 테러범과 대원들 간의 총격이 오가는 과정에서 도비탄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렇게 인질을 확보하고 있는 사이에 작전1제대의 나머지 팀은 VIP 라운지 점령을 시작했다. 그러나 대원들은 VIP 라운지 정문이 잠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원 중 한 명이 안쪽으로 수류탄을 던졌지만 수류탄은 도로 밖으로 튀어나와 대원들 옆에서 터졌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대원 1명만이 파편에 경상을 입었을 뿐이었다. 곧바로 다른 진입구를 찾은 팀이 VIP 라운지로 돌입하자 2명이 손을 올리고 대원들에게 다가왔다.

대원들은 그들에게 멈추라고 외쳤지만 그들은 계속 다가왔다. 대원들은 이들이 인질인지 테러범인지 잠시 고민하는 사이, 다가오는 자들의 허리춤에서 수류탄 주머니를 보았다. 대원들은 주저 없이 소총을 발사했다. 이와 동시에 테러범의 손에 꽉 쥐어져 있던 수류탄이 떨어지면서 폭발했다. 그러나 또다시 기적적으로 중상자는 없었다. 팀원들은 VIP 라운지 인근을 계속 수색하다가 한쪽 방에서 죽어 있는 테러범을 발견했다. 대원들이 방금 가한 치열한 총격 과정에서 도비탄에 맞아 숨진 것이 분명했다.

구청사 작전현황

구출부대는 작전 개시 3분 만에 테러범을 모두 사살하고 인질을 확보했으며, 15분 만에 구청사를 장악했다. 1분 1초를 아끼고 목표를 인질 구출에 집중한 요니의 판단이 적중한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성공적인 작전을 입안하고 지휘한 요니는 이 작전의 유일한 사망자가 되었다.

우간다군을 제압하라

작전1제대가 인질을 구출하는 사이 2제대는 구청사의 2층을 공격했다. 2층은 원래 식당이 있던 자리로 인질사건이 발생한 이후 우간다군 경비 병력의 숙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대원들은 계단을 올라가면서 눈에 보이는 병사들을 하나둘씩 사살했다. 그러나 막상 2층에 올라갔을 때 남아 있는 것은 담요와 침낭뿐이었다. 총격이 시작되자 우간다군은 현장에서 도망간 것이 분명했다.

한편 구청사 밖에서는 지휘통제반이 관제탑의 우간다군과 치열하게 총격을 주고받았다. 지휘통제반은 랜드로버에 탑재된 50구경 기관총을 관제탑에 발사했지만 적의 사격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청사를 점령한 대원들도 교전에 참가했지만 적의 사격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는 없었다. 다소 총격이 잦아들자 군의관이 쓰러진 요니에게 다가가 그의 상태를 살폈다. AK 소총탄이 요니의 쇄골 아래를 뚫고 들어갔다. 부상이 심해서 요니를 살릴 수 없음을 안 군의관은 베처에게 상황을 알렸다. 부지휘관인 베처는 자신이 작전지휘권을 인계받았음을 전 대원에게 알렸다. 이제 문제는 관제탑을 포함한 청사 주변을 제압하는 것이었다.

한편 작전이 시작된 지 6분이 지나 2번기가 착륙했다. 1번기가 차량을 전개한 장소에 대기 중이던 숌론 장군은 2번기로부터 자신의 지휘 지프를 수령하고 장갑차 2대를 이끌고 구청사에 도착했다. 관제탑에 있던 우간다군이 간헐적으로 사격을 가해오자 숌론은 장갑차에 교전을 명령했다. 장갑차에서 기관총과 RPG를 발사하자 관제탑은 이내 조용해졌다.

교전 와중에 3번기도 도착했다. 나머지 장갑차 2대가 3번기로부터 발진하여 구청사 뒤편에 전개했다. 엔테베 도심으로부터 이어지는 도로에서 나타날지도 모르는 우간다 증원 병력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그사이 최초에 전개했던 장갑차 2대 중 1대가 인근의 우간다 공군기 쪽으로 향했다. 장갑차는 주기되어 있던 우간다군 미그-17기들을 산산조각 냈다. 이스라엘군이 우간다군의 미그기를 공격한 것은 이스라엘군의 안전한 퇴출을 위해 사전에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이디 아민에 대한 이스라엘 정부의 복수라는 성격이 더 짙었다.

이로써 작전 개시 15분 만에 인질의 구출과 우간다군 제압이라는 어려운 임무가 완수되었다. 그러나 작전이 완전히 성공했다고 말하기에는 일렀다. 모든 인질과 부대원이 엔테베에서 안전히 퇴출하기 전까지는 작전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실제로 특수전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퇴출이기 때문이었다.

발빠른 퇴출

몇 분 후에 재급유팀과 의료진을 실은 4번기가 도착했다. 의료진이 요니를 포함한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가운데 재급유팀도 재빨리 작업에 들어갔다. 한편 구청사를 확보한 구출부대는 인질을 청사 앞쪽에 모아 랜드로버와 트럭으로 수송기까지 후송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인질의 호송에 여념이 없는 사이 엔테베로부터 이어진 도로에 우간다군을 태운 수송트럭 2대가 나타났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이 준비한 장갑차는 손쉬운 표적을 쓸어버렸다.

어둠과 혼란 속에서 인질들은 구출부대원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았다. 대원들이 여러 차례 소지품을 버리고 차량에 탑승하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인질들 중 몇몇은 소지품을 챙기기 위해 호송 대열을 이탈하여 구청사로 돌아가기도 했다. 또 공포 속에서 히스테리에 빠진 인질 몇몇은 대원들의 지시를 알아듣지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대원들이 강제로 수송기로 끌고 가야만 했다. 게다가 어둠과 혼란 속에서 대원들은 인질의 수조차 점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퇴출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인질이 아니라 재급유였다. 사이렛 매트칼이 구청사를 점령하는 사이 사이렛 찬하님은 교전 없이 신청사를 점령하고 연료탱크를 확보해놓았다. 그리고 사이렛 매트칼과 사이렛 골라니가 구청사를 확보하고 인질을 소개하는 동안 재급유팀은 사이렛 찬하님과 합류하여 신속하게 재급유를 시작했다. 수송기 4대에 전부 재급유하기 위해서는 무려 40분 이상이 추가로 필요했다. 그러나 구출부대에게는 이런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이때 707 공중지휘통제기로부터 긴급전문이 들어왔다. 케냐 정부가 이스라엘군의 재급유를 허락한다는 것이었다. 엔테베에서 나이로비까지라면 약 1시간 거리로 현재의 연료로도 문제가 없었다. 구출부대는 재급유를 중단했고, 인질을 태운 수송기 1대가 먼저 엔테베 공항을 이륙했다. 시계는 23시 5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구출부대의 퇴출까지 90분

이렇게 인질을 소개하고도 구출부대의 상당수는 엔테베에 남았다. 인질 호송 수송기로부터 구출자가 모두 105명이라는 보고를 받자, 공중지휘통제기는 지상의 숌론 장군에게 남은 인질이 있는지 확인하도록 지시했다. 정보에 따르면 인질 수는 106명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실제로 구출된 인질은 이스라엘인 93명과 에어프랑스 승무원 12명을 합해 총 105명이었다. 구출되지 못한 인질 1명은 치료를 위해 구청사에서 병원으로 옮겨졌던 73세의 도라 블로크(Dora Bloch)였다. 그녀는 다음날 이디 아민의 수하들에 의해 처형되었다.

숌론은 잔류 인질이 없는지 청사 주변을 수색했다. 피랍기 내부에 인질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주기된 에어버스기까지 수색했다. 철저한 수색 끝에 구출부대는 더 이상 남아 있는 인질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편 구출부대는 공항 청사 주변의 주차장에 시간지연식 폭약을 설치하여 우간다군의 추적 의지를 꺾고자 했다. 7월 4일 0시 30분 3대의 C-130이 엔테베를 이륙하면서 모든 작전은 종료되었다. C-130이 최초로 착륙한 지 90분 만에 인질을 구출하고 모든 대원을 회수한 것이다.

이스라엘 특수부대 사이렛 매트칼의 엔테베 작전 본문 이미지 11

무려 4,000킬로미터의 거리를 극복하고 적지에서 인질을 구한 엔테베 인질구출작전은 모세의 출애굽기를 특수전 영역에서 재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신이 만든 기적이라기보다는 강한 전투력과 뛰어난 리더십, 그리고 뜨거운 동포애가 만들어낸 피와 땀의 결과였다.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을 인도한 모세처럼 이스라엘 특수부대는 20세기 최대의 인질구출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작전 결과, 테러범 7명과 우간다군 45명이 사살되었고, 인질 4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구출부대원 1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상 최대의 인질구출작전에서 사망한 단 한 사람은 다름 아닌 구출부대의 지휘관 요니 네타냐후였다. 촉망받던 장교인 요니 중령은 지휘관이 최전선에서 이끄는 강한 군대 이스라엘 국방군의 전통을 장렬하게 온몸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과연 이스라엘 정부와 국방군이 이런 위험한 작전을 감행했어야만 했는가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당시 이스라엘군은 욤 키푸르(Yom Kippur) 전쟁의 실망스런 성과로 인해 사기가 떨어져 있었다. 특히 대테러작전에서는 1974년 마알랏 초등학교의 인질구출작전에서 23명의 초등학생이 사망하고, 1975년의 텔아비브 사보이 호텔에서는 인질 8명과 대원 3명을 잃는 등 눈에 띄는 실패를 거듭해왔었다. 작전 실패라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이스라엘군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도박에 뛰어든 셈이었다.

그러나 훌륭한 리더십과 창조력, 강인한 전투력, 그리고 강한 애국심으로 무장한 젊은 이스라엘 특수부대는 사상 최악의 재앙이 될 수도 있는 사상 최대의 인질구출작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수행해 성공해냈다. 무엇보다도 뛰어난 전문 특수전력에 대한 지도부의 신뢰가 없었다면 작전은 실행조차 되지 못했을 것이다. 최고의 부대를 만드는 것은 단순히 예산이나 인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도부가 일선부대를 얼마나 굳게 신뢰하는가의 문제라는 점을 엔테베의 인질구출작전은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다.

이스라엘 최고의 특수부대 사이렛 매트칼

이스라엘은 특수전 전력을 가장 효율적이고 성공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국가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특수부대의 수와 병력이 다양하며, 실전 경험 또한 풍부하다. 특히 이스라엘의 특수부대가 다양한 것은 각 임무나 지역에 따라 그에 맞는 특수전 부대를 양성해왔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특수부대에는 사이렛이라는 이름이 붙는데, 이는 헤브루어로 ‘정찰대’라는 뜻이다. 이런 다양한 특수부대들 가운데 가장 정점에 있는 것이 육군의 사이렛 매트칼이다.

육군 제269사이렛 매트칼은 직역하자면, ‘제269합참직할정찰대’가 된다. 사이렛 매트칼은 영국의 SAS를 본떠 1958년 창설된 특수부대로, 전략정찰, 직접타격, 대테러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이스라엘 최고의 특수부대다. 사이렛 매트칼이 가장 많이 수행하는 임무는 전략정보의 수집으로, 조직 편성상으로도 사이렛 매트칼은 군 정보부의 통제를 받도록 되어 있다.

사이렛 매트칼은 이스라엘 최초의 헬기비행대대가 창설된 지 1년 후에 창설되었고, 이후 두 부대 사이에는 긴밀한 공조가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사이렛 매트칼은 이스라엘군의 어느 부대보다도 아랍 적국의 영토로 깊숙이 침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사이렛 매트칼은 초기에는 존재 자체가 극비사항이었기 때문에 대원 선발도 비밀리에 실시되었다. 대원은 지휘관이나 모병관이 개인적으로 믿는 정예군인만을 선발했다. 즉 지원한다고 받아 주는 것이 아니라 부대가 직접 고르는 방식으로 대원을 선발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부터 지원자를 받기 시작했는데, 고된 훈련 과정을 거쳐 정예 중의 정예만을 선발하고 있다. 선발된 이후에도 20개월 동안 더 훈련해야 부대원으로서 활동할 수 있다.

사이렛 매트칼로의 배속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일종의 특권으로 여겨지고있다. 특히 에후드 바라크, 벤야민 네타냐후(엔테베 작전 시 지휘관 요나단 네타냐후의 동생) 수상이 사이렛 매트칼 출신이고, 이외에도 국방장관, 합참의장, 모사드 국장 등을 배출해내어 부대의 자부심은 매우 높다.

이스라엘 특수부대 사이렛 매트칼의 엔테베 작전 본문 이미지 12

불타오르는 사이렛 매트칼의 부대휘장 아래 모인 대원들의 모습. 사이렛 매트칼은 최고 정예 부대일 뿐만 아니라 수많은 수상과 장관, 참모총장을 배출한 부대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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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이스라엘 특수부대 사이렛 매트칼의 엔테베 작전 - 20세기 최대의 인질구출작전 (그림자 전사, 세계의 특수부대(그들의 성공과 실패의 역사), 2009. 5. 11., 플래닛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