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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경성(서울)

바래미나 2016. 11. 12. 23:49

일제시대 경성(서울)

 

경성 東小門 (惠化門)

 

동소문(東小門)이라고도 한다. 도성에는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小 門)이 설치되었는데, 이 문은 동문과 북문 사이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문 이름을 홍화문(弘化門)이라 하였다가 1483년(성종 4) 새로 창건한 창경궁의 동문을 홍화(弘化)라고 정함에 따라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1511년(중종 6) 혜화로 고쳤다.


1684년(숙종 10) 문루(門樓)를 새로 지은 후 한말까지 보존되어 오다가 1928년 문루가 퇴락하였으므로 이를 헐어버리고 홍예(虹霓)만 남겨 두었는데, 일제는 혜화동과 돈암동 사이의 전차길을 내면서 이마저 헐어버려 그 형태도 찾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당시 北門(북대문)은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이 문은 양주·포천 방면으로 통하는 중요한 출입구 구실을 하였다.

 

경성 종로 2가 거리

 

경성 太平通

 


일제시대 경성(서울) ③

 

경성 동대문

 

종로 보신각

 

기생요리집 明月館 전경


1918년경에 명월관이 소실된뒤 순화관(현 종로구 인사동 194)에 명월관 분점격인 태화관(太華館)을 차렸다가 뒤에 태화관(泰和館)으로 개명했다.


이 태화관은 기미독립선언 때 33인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축하연을 베푼 곳으로 유명하다.

 
당시 본관 간판은 장춘관으로 옮겨졌지만 명월관을 경영하던 안순환이 경영했기 때문에 명월관에 모였던 명기들이 그대로 모여 전처럼 번창했다.


궁정양악대 출신들이 시중에 불려나와 우미관양악대와 단성사양악대를 꾸며 태화관에 등장하기도 했다.


일제시대 경성(서울) ④

 

경복궁 집옥제(集玉薺)

 

경복궁 광화문

 

덕수궁 안에서 바라본 경성시가 일부, 지금의 시청도 보인다.

 

이 건물은 현 충무로 입구 신세계백화점으로 1934년에 준공되었다.  지하 1층, 지상 4층 연건평 3,000여평의 건물로서 양식주의에서 근대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양식이다. 

 

 


일제시대 경성(서울) ⑤

 

동대문밖 조선인 마을

 

경복궁 광화문

 

경성역(京城驛)에서 남대문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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