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800m의 돌로
쌓은 성벽의 일부분이 남아있다.
동문인 조양문은
현재까지 남아있고 1975년 복원한 것이다.
아문은 조양문의 문루를
설치할 때 함께 세운 것이며
‘홍주아문’이란 글씨는
흥선대원군이 직접 썼으나
현재 남아있지 않다.
우리나라 아문 중에서
가장 크고 특이한 형태를 지니며
조선시대 관아의 구조와
형태를 살필 수 있는 자료가 된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반대하여 의병을 일으킨
민종식 등이 이 성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공격하여
덕산으로 격퇴시킨 일이
있다.
史跡 232호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
노량해전으로 더 잘
알려진 임진왜란의 마지막 격전지로
충무공 이순신이 순국한
곳이다.
선조 31년(1598)
조선과 명나라의 수군이 도망가는
왜적들을 무찌르다
관음포 앞바다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
. 이 때 이순신
장군은 적의 탄환에 맞아 최후를 마쳤다.
이에 관음포 앞바다는
이순신이 순국한 바다라는 뜻에서
‘이락파(李落波)’라고도 부르며, 마주보는 해안에는 이락사가 있다
그 후 순조
32년(1832)에 왕명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
단과 비, 비각을
세웠다
1965년 큰 별이
바다에 떨어지다라는 뜻인 ‘대성운해(大星殞海)’와
‘이락사’라는 액자를
경내에 걸었다.
史跡
244호 연천 신라 경순왕릉
신라 56대 마지막왕인
경순왕(재위 927∼935)의 무덤이다.
927년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놀다 견훤의 습격을 받아 시해된 후
견훤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
전쟁으로 인해 백성이
많은 피해를 입자 군신의 반대를 무릅쓰고,
935년 평화적으로
신라를 고려에 넘겨주고
왕위를 물러난 신라
마지막 왕이다.
史跡 264호 단양 온달산성
온달산성은 고구려
평원왕(재위 559∼590)의 사위인
온달장군의 이야기가 이
지방에 전해오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성이 언제
쌓아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조선 전기에 이미
성산성이란 이름으로 있었던 기록이 있다.
史跡 293호 전봉준선생 고택지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인
전봉준(1855-1895)이 살던 집이다.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전봉준은 조선 고종 27년(1890)인
30세 때 동학에 몸을
담아,
동학 제2대 교주인
최시형으로부터 고부지방의 동학접주로 임명되었다.
그는 관리들의 횡포에
맞서 농민과 동학교도들을
조직해 동학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 옛집은 조선 고종
15년(1878)에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