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초읍동 어린이대공원 뒷산 성지곡수원지의 하늘을 쭉쭉 뻗은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가렸다. 나무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만큼 치솟았다. 대도시 복판에 편백 숲이라니 부산 사람들은 복도 많다. 편백과 삼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가 숲 향기에 더해 머릿속까지 맑아진다. 이 나무들은 1909년 수원지를 만들 때 주변 비탈에서 토사가 쏟아져 내리는 것을 막으려고 심었다. 말 그대로 백년 숲이다.
▶편백나무는 침엽수 중에 '공중의 비타민'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뿜어낸다고 한다. 덕분에 편백 숲이 갈수록 산림욕장으로 각광받는다. 제일 이름난 곳이 전남 장성 축령산이다. 여의도 면적 세 배 가까운 779ha에 쉰 살 넘는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다. 언제 가든 상쾌한 피톤치드를 들이마시며 걸을 수 있다. 숲 그늘 평상에 누워 책을 읽으며 세상을 잊는다. 6·25전쟁으로 헐벗은 산을 편백 숲으로 바꾼 독림가(篤林家) 임종국(1915∼1987)이 이 숲 나무 밑에 수목장으로 묻혀 있다.
▶편백나무는 측백나무과 상록침엽수다. 삼나무·화백나무와 함께 구한말 일본에서 들어왔다. 일본 이름 그대로 '히노키(檜)'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로 전남·경남 남해안에 조림(造林) 수종으로 심었다. 얼마 전엔 서울시도 뚝섬 한강공원에 편백 600그루를 심어 '힐링 숲'을 꾸몄다. 편백나무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측백나무 비슷하게 생겼다. 잎 앞면과 뒷면 색깔·모양이 같으면 측백, 뒷면에 Y자 모양 흰색 선으로 된 숨구멍이 있으면 편백이다.
▶어제 조선일보에 경남 창원 평지산 자락 30만평에 편백 숲을 가꾼 이현규씨 이야기가 실렸다. 아버지 이술용씨와 함께 1972년부터 5년 동안 하루 200~300그루씩 묘목 50만 그루를 심었다. 아버지는 먼저 떠나셨지만 지금까지 44년 정성을 쏟았다. 이씨는 "원래 베어 팔 생각이었는데 내 손으로 도저히 벨 수 없더라"며 쉼터로 내놓고 있다. 이런 곳이 있었나 싶게 감탄스럽다. 장흥 편백숲우드랜드, 고흥 외나로도, 울산 북구, 안성의 편백 숲도 이름이 알려진 지 얼마 안 됐다.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에서 양치기는 하루 도토리 100개씩을 심어 프로방스의 황무지를 떡갈나무 숲으로 키운다. 숲이 되살아나자 계곡에 물이 흐르고 마을도 다시 살아난다. 부산 성지곡수원지, 장성 축령산, 창원 평지산…. 그곳에 편백 숲을 가꾼 이들도 양치기처럼 우직하되 눈 밝은 선각자(先覺者)다. 어제가 식목일이었다. 먼 훗날을 내다보고 나무를 심은 분들의 땀을 새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