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흩어진 천년의 시간 되돌아보다
한지와 폐사지의 고장 원주
사적 466호인 법천사는 신라말∼고려 초기 대표적인 법상종 사찰이었다. 현재는 지광국사 현모탑비와 법당터, 석탑 등 일부만이 남아 폐사지의 쓸쓸함을 느끼게 한다. |
원주는 한지의 본고장이다. 한지 원료인 닥나무밭이 지명에 많이 들어 있을 정도다. 우리 민족의 순결성을 상징한다고 해서 백지(白紙)로 불리는 한지에 관한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는 한지테마파크가 이곳에 있다. 천년의 역사를 지닌 법천사지, 거돈사지 등 절터는 방문객에게 사라진 절의 쓸쓸함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지금의 도청이라 할 수 있는 강원감영에서는 조선 500년 동안의 강원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한지에 관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한지테마마크 전시실. |
조선시대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닥나무가 원주의 특산물 중 하나로 기록돼 있다. 1872년 만들어진 ‘원주목지도’에도 닥나무 ‘저(楮’) 자를 사용한 ‘저전동면(楮田洞面)’이라는 지명이 분명하게 표시돼 있다. 저전동면은 1914년 시행된 지방행정 개편에 따라 호매곡면과 통합되어 호저면으로 바뀌었다. 호저면은 사질양토가 풍부하고 일조량이 풍부해 질 좋은 닥나무가 번성했고, 부론면·흥업면 등지에서도 닥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 1950년대까지 15개 이상의 한지 공장이 한지 생산의 전통을 이어왔다. 1970년대 들어 우리나라에 펄프로 대량생산할 수 있는 양지가 들어오자 원주에서도 한지공장이 급속도로 폐업해 1980년대 중반에는 우산동 부근의 2곳만 남게 됐다. 이 같은 환경에서 단구동의 김영연 장인은 1975년부터 일본으로 한지를 수출해 원주 한지의 명성을 높였다. 1985년 영담 스님이 단구동에서 맥이 끊긴 우리 전통한지 7~8개 종류를 재현했다. 조선시대 부론면의 법천사와 거돈사, 지정면의 흥법사는 한지의 대량 생산지이자 소비지였다. 강원도 관찰사가 직무를 맡아 보는 강원감영 역시 1895년 춘천으로 이관되기 전까지 원주에 있었다.
원주 한지테마파크. |
이 같은 여건으로 원주에서는 행정 관청과 기관에 종이를 공급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한지 마을과 인쇄문화가 발달했다고 한다. 원주시는 최근 한지공원 길에 한지테마파크를 조성했다. 원주 한지의 과거와 미래, 전통과 현대가 유기적으로 공존하는 국내 최초의 한지문화 전용공간이다.
원주 법천사지. |
천년의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곳이 폐사지다. 사적 제466호인 법천사지는 신라 말 고려 초기 대표적인 법상종 사찰이다. 현재는 명봉산 자락에 위치해 있는 법천사 터에 당간지주를 비롯해 지광국사 현묘탑비와 법당터 및 석탑의 일부 등이 남아 있다. 이 절터에서 나온 석재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절터의 동편 산기슭에는 지광국사의 부도를 모셨던 탑전지가 남아 있다. 부도는 서울 경복궁 내로 옮겨졌으나 탑비는 그대로 남아 있다.
거돈사지 삼층석탑. |
사적 제168호인 거돈사지는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 거돈사의 옛터로 한계산 기슭을 안고 펼쳐진 절터이다. 발굴조사 결과 신라 후기인 9세기쯤에 지어진 뒤 고려 초기 확장·보수돼 조선 전기까지 유지된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은 웅장한 옛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는 터와 석탑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거돈은 ‘큰 깨우침을 얻다’는 뜻이다. 많은 학자와 도승들이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을 정도로 대찰의 면모를 자랑했다.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45호인 흥법사지는 신라시기 흥법사의 옛터이다. 이 절은 고려 태조가 흥법선원을 만들어 진공대사에게 교화를 맡기자 많은 사람이 모였다는 기록으로 미뤄 인근의 정산리 거돈사, 여주 고달사 등과 더불어 고려 전반기의 선종계 절로서 큰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원주 거돈사지. |
강원감영은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가 직무를 보던 관청이다. 조선왕조는 1395년 강릉도와 교추도를 합해 강원도라 하고, 강원도의 수부를 원주로 정하고 강원감영을 설치했다. 강원감영의 건물들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됐으나 1634년 원주목사 이배원이 재건하기 시작한 이후 여러 목사와 관찰사들이 계속 건설했다. 강원감영은 선화당을 비롯해 포정루, 보선고, 내아, 비장청, 호저고 등 40여 동에 달한다. 1395년부터 1895년까지 500년간 강원도의 중심역할을 했다. 1895년 조선 8도 제도를 23부 제도로 개편함에 따라 그 기능을 상실했다. 1896년 이후 강원감영 건물은 원주 진위대 본부로 사용했고, 1907년 진위대가 해산된 후에는 원주군청으로 썼다.
원주 조선식산은행 원주지점. |
강원감영은 1895년 이후 대부분의 건물들은 없어지고 선화당, 포정루, 내아 등 몇 동의 건물만 남게 됐다. 강원감영은 다른 지역 감영들이 여러 곳으로 이전했던 것과는 달리 500년 동안 원주에만 있었다는 사실에 의미가 있다. 조선시대 관아건물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원주 원당성당. |
원주=글·사진 박태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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