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의 상징이 된 전투기 포커삼엽기
- ▲ 강렬한 붉은색이 인상적인 리히트호펜의 포커 삼엽기 복제품. 제1차 대전의 공중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전투기다. <출처 (cc) Valder137 at wikimedia.org>
살상과 파괴가 난무하는 전쟁에서 낭만을 찾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지만 제1차 대전의 공중전은 이런 이율배반적인 장면이 종종 벌어지고는 했다. 공중전을 벌이다 전사한 상대방 파일럿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러주기도 하였고 그런 후의를 입으면 답례 인사를 하는 것도 흔했다. 제1차 대전 당시 최고의 에이스였던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Manfred von Richthofen)은 이런 에피소드와 특히 관련이 많은 인물이다.
- ▲ (좌)1918년 4월 22일 리히트호펜의 장례식 장면. 영국군은 그들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준 적군의 시신을 거두어
- 최대한 예의를 표하여 안장하였고 이에 대해 독일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였다.
(우)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Manfred von Richthofen 1892~1918). 일명 ‘붉은 남작’.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최고의 에이스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그는 적기가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지면 불필요한 추가 공격을 자제하였다. 치열한 공중전 끝에 격추시킨 영국군 에이스 레이노 호커(Lanoe Hawker)의 장례식에 애기를 몰고 날아가 추모 화환을 던지고 왔을 만큼 기사도 정신도 강했다. 이처럼 상대방 조종사를 존중하던 그가 1918년 4월 21일 격추되어 연합군 진영 안에 떨어져 전사하자 영국군이 시신을 수습하여 성대히 장례식을 치러주었을 정도였다.
이처럼 일견 낭만적인 장면의 주인공이었던 리히트호펜은 공식적으로 80기의 적기를 격추한 당대 최고의 에이스답게 독일에서는 전쟁 영웅으로 대접받았고 연합군 조종사들에게 공포이자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그를 일컫는 별명이 많았는데, 그 중 붉은 남작(Red Baron)이 가장 대표적이다. 강렬하고도 인상적인 이러한 별명은 그가 몰던 애기의 색깔이 붉은 색으로 도색 되어 있었기 때문에 붙여졌다.
그렇다고 자신의 존재를 일부러 드러내려고 강렬한 색깔을 칠했던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전투기들이 엉켜 붙어 싸우던 당시 공중전에서 전투기들은 피아를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단지 눈에 잘 띄는 색을 칠하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붉은색 전투기는 리히트호펜의 상징으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유독 붉은색 포커 삼엽기(Fokker Dr.I Dreidecker)의 유명세는 대단하였다.
- ▲ 제1차 대전 전투기라면 흔히 복엽기를 연상하지만 전쟁 초기에 포커 아인데커 같은 단엽기도 있었다. 이는 프랑스의 모랑솔리에 L을 복제한 전투기다.
기동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선택
독일의 포커 아인데커(Fokker Eindecker), 프랑스의 모랑솔리에 L(Morane-Saulnier L) 같은 단엽기도 있었지만 제1차 대전 당시 하늘의 주인공은 복엽기(Biplane)였다. 인류 최초의 비행기인 라이트 형제의 플라이어(Flyer)도 복엽기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다층의 날개는 가장 오래된 비행기 구조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굳이 날개를 복잡하게 여러 겹으로 만든 이유는 양력을 많이 발생시키기 위해서다.
양력은 날개의 상하로 갈리는 공기의 흐름이 빠를수록, 즉 비행기의 속도가 빠를수록 많이 발생한다. 그런데 속도는 엔진의 힘에 의해 결정되지만 초창기 비행기에 장착 된 엔진들의 성능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날개의 면적이 크면 출력이 부족한 엔진으로도 날수 있지만 당시 기술로 동체에 비해 길고 넓고 그리고 가벼운 날개를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복엽기 형태로 날개를 나누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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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8년 프랑스 브와송이 만든 실험용 삼엽기. 이처럼 양력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삼엽기는 항공기 초기 역사부터 연구되던 방식이었다.
복엽기는 느리지만 상승력과 선회력이 뛰어난 장점이 있다. 1914년 제1차 대전이 발발한 이후 전선의 상황이 격화되고 갈수록 대규모 공중전이 일상이 되어가자 일선에서는 더 좋은 성능의 전투기에 대한 요구가 커져갔다. 이에 엔지니어들은 주익을 하나 더 달아 성능을 향상시키는 방안을 고려하였다. 사실 이미 1905년경부터 다양한 실험기가 제작되었기에 삼엽기(Triplane)가 낯선 형태는 아니었다.
다만 날개가 많으면 저항이 증가하여 속도가 줄어들므로 복엽기 정도면 전투기로 충분하다고 여겼을 뿐이었다. 그런데 공중전이 이른바 독파이팅(Dog fighting)이라 불리는 근접 선회전 형태로 바뀌자 속도 못지않게 상승력과 선회력도 중요시되었다. 어차피 당시 엔진의 성능으로는 더 이상 속도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되자 차라리 기동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연구의 초점이 바뀐 것이었다.
- ▲ 영국 해군의 솝위드 삼엽기. 놀라운 기동력에 독일군은 당황하였고 곧바로 이에 대응할 만한 신예기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정작 구조에 문제가 많아 단 147기만 제작되었다. <출처 (cc) TSRL at wikimedia.org>
그렇게 해서 1917년 2월 영국 해군의 신예기인 솝위드 삼엽기(Sopwith Triplane)가 전선에 등장하였다. 둔중한 모습의 솝위드 삼엽기를 하늘에서 마주하게 된 독일의 조종사들은 처음에는 비웃었지만 상승력, 선회력에서 독일의 주력기인 알바트로스(Albatros) D.III를 압도하자 당황하였다. 한마디로 농락당하였다고 표현될 만큼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 ▲ (좌)V4 시제기의 모습. 제작 편리를 위해 날개 끝단에 지지대를 설치하지 않았는데 이 방식은 실전에서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였다.
(우)지난 1996년까지 존속하였던 포커사의 창립자 안소니 포커. 그는 네덜란드령 동인도(현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사업을 시작하여 많은 전투기를 공급하였고 제1차 대전 종전 후에는 고국으로 회사를 옮겼고 이후 미국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속전속결로 이루어진 개발
순식간 회전하여 뒤로 파고든 솝워드 삼엽기에 꼬리를 물리면 최대한 속도를 올려 도주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지만 사실 속도의 차이라고 해 보았자 조금 빠른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솝워드 삼엽기는 7.7mm 구경의 빅커스(Vickers) 기관총을 한 정만 부착하여 화력이 약하였지만 위치를 선점하면 이 정도로도 적기를 요격하는데 충분하였다. 하루 빨리 이와 맞먹는 신예기를 보유하여야 한다는 절박함이 독일에게 다가왔다.
막연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제1차 대전 당시 독일의 전투기 제작 능력은 그다지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신예기 개발과 병행하여 뛰어난 연합군의 전투기를 복제하는 차선책을 사용하였다. 전쟁이 벌어진 이상 이는 하나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포커 아인데커는 모랑솔리에 L을 카피한 것이다. 포커 삼엽기도 그렇게 솝위드 삼엽기를 카피하여 개발이 시작되었다.
- ▲ 에어쇼에서 시범 비행 중인 포커 삼엽기. 주익뿐만 아니라 둥근 수직 미익도 특징적인 외관이다. <출처 (cc) MatthiasKabel at Wikimedia.org>
네덜란드인 안소니 포커(Anthony Fokker)에 의해 창립된 포커 항공사는 종전 후인 1919년에 본거지를 네덜란드로 옮겨 1996년까지 명맥을 유지하지만 제1차 대전 당시에는 독일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다. 포커의 엔지니어인 라인홀트 플라츠(Reinhold Platz)는 기존에 제작 중이던 V2 실험기와 솝위드 삼엽기를 참고하여 1917년 5월 첫 번째 삼엽기인 V4 시제기를 선보였고 이를 기반으로 신예기를 완성하였다.
7월 5일 초도 비행에 성공한 포커 삼엽기는 즉각 양산이 결정되었다. 비록 솝위드 삼엽기를 카피하였지만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3개월도 안 되는 기간에 설계에서 양산까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설령 부족한 부분이 있고 성능이 완전히 검증되지 않았더라도 일단 전선에 신무기를 투입하여야 할 만큼 상황이 급박하였던 것이다. 당연히 급하게 만든 만큼 많은 결함도 있었다.
작전을 펼치는 도중 날개가 부러지는 결함이 발생하자 지지대를 보강하여 문제점을 해결하는 식으로 개량과 생산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이처럼 충분한 실험도 거치지 않고 신무기를 일단 전선에 투입하고 문제가 발생하는 고치는 방식은 독일뿐만 아니라 연합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과정 중에 불필요한 희생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전쟁이라는 상황이 만든 모습이었다.
- ▲ 1917년 10월 30일 기체 결함으로 추락하여 전파 된 포커 삼엽기 초기형. 이때 사망한 조종사 하인리히 곤테르만은 상당히 유명한 에이스여서 이 사건 후 조종사들이 포커 삼엽기 타기를 꺼려하였다.
에이스들이 만든 명성
포커 삼엽기는 1917년 8월경부터 보급되었으나 정작 일선에서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신예기가 등장하면 속도에서부터 일단 차이가 났던 예전과 달리 포커 삼엽기는 오히려 느렸기 때문이었다. 원작인 솝위드 삼엽기를 훨씬 능가하는 상승력과 선회력을 가졌고 사실 이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지만 대신 이전에 사용하던 전투기보다 속도가 줄어들었다는 점은 일선 조종사들에게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독일 조종사들은 솝위드 삼엽기의 장점이 부러웠지만 정작 그런 전투기를 보유하게 되자 약점도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포커 삼엽기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되는 리히트호펜도 그러했던 인물 중 하나였다. 그동안 그는 고도를 선점한 후 위치 에너지를 이용하여 고속으로 급강하하여 적기를 공격한 후 이탈하는 전법을 주로 구사하였는데, 포커 삼엽기는 이런 기동을 펼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 ▲ 리히트호펜의 명성을 널리 알린 붉은색의 포커 삼엽기 복제품. 측면에 마킹한 425/17은 그가 탔던 애기의 시리얼 넘버다. <출처 (cc) Noop1958 at Wikimedia.org>
그래서 종종 포커 삼엽기가 보급 된 이후에도 알바트로스 D.III를 타고 출격을 나가기도 하였다. 이처럼 이후 그의 상징이 되어버린 포커 삼엽기에 대해 리히트호펜은 애착이 없었다. 총 격추 기록 80기중 이를 타고 격추한 적기가 20기에 불과하였고 결국 작전 중 생을 마감하기도 하였다. 물론 전쟁이 길어지고 그가 전사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격추 기록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생각보다 그와는 궁합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날카로운 선회력에 매료되어 애기로 사용했던 에이스들도 많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48기의 격추 기록을 가지고 있는 베르너 보스(Werner Voss)였다. 그는 속도보다 현란한 기동술로 적기를 제압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인물이어서 포커 삼엽기와 궁합이 상당히 잘 맞았다. 1917년 9월 23일 단독으로 7기의 영국군 S.E.5a와 공중전을 벌여서 비록 산화하였지만 상대방 모두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기도 하였다.
- ▲ 출격 준비 중인 제26비행대 소속의 포커 삼엽기
너무나 인상적인 전투기
제1차 대전은 신예기가 수시로 등장하여 전투기의 세대교체가 빨리 이루어진 시기였다. 전투기의 개발과 성능 향상에 그다지 많은 기술력이 필요하지 않아 그런 것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전선에 투입되려면 이전 전투기보다는 성능이 좋아야 했으므로 일단 신예기들은 공중전의 주도권을 쉽게 장악하고는 했다. 특히 공중전의 개념조차 낯설었던 전쟁 초기에 그런 모습이 특히 심해서 개별 전투기의 제작량도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전쟁 후반기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획기적인 성능 향상이 어려워지면서 당대 최고로 평가 받는 S.E.5a, SPAD S.VII, SPAD S.XIII 같은 전투기들은 수 천기씩 제작되었다. 사실 그런 점에 비추어본다면 포커 삼엽기는 총 320기가 생산되었으므로 그다지 많은 수량이 전선에 공급된 것은 아니었다. 그 점은 롤 모델이 되었던 솝위드 삼엽기도 마찬가지였다.
- ▲ 실제로 리히트호펜이 탔던 포커 삼엽기 425/17호
생산량이 적었던 이유는 여러 단점 때문이었다. 간단히 생각하여 날개가 하나 더 달렸다는 것은 기체의 구조가 그만큼 복잡하여 생산과 정비에 필요한 요소가 더 많아졌다는 의미다. 이런 부분은 전쟁 중에 불편함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커 삼엽기는 그 특징적인 모습 덕분에 제1차 대전 항공전을 대표하는 전투기가 되었다. 전설적인 에이스들의 활약과 맞물리며 전쟁사에 남긴 인상은 너무 강렬하였기 때문이다.
제원 전장 : 7.57m / 전폭 : 7.18m / 전고 : 2.97m / 최대이륙중량 : 584kg / 최고속도 : 185km/h / 전투행동반경 : 300km / 상승한도 : 6,000m / 무장 : 7.92mm 스팬다우 기관총 2문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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