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좋은 이야기-

★ 애인이 없는 사람이란다★

바래미나 2014. 11. 9. 01:58

★ 애인이 없는 사람이란다★


 

이상교/깨진 별



별이 빛을 낸다
깨진 어깨 모서리가 빛을 낸다

별은 깨져서야 비로소 밝은 빛을 낸다
나는 아프고 나서야 마음 한 귀퉁이가 먼지로 덮였던 걸 알았다
아프고 나서야 마음 귀퉁이의 속뼈가 드러내지고
그리고 좀 더 눈이 밝아졌다




 

박노해/별은 너에게로

어두운 길을 걷다가 빛나는 별 하나 없다고 절망하지 말아라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구름 때문이 아니다
불운 때문이 아니다
지금까지 네가 본 별들은 수억광년전에 출발한 빛
길 없는 어둠을 걷다가 별의 지도마저 없다고 주저앉지 말아라
가장 빛나는 별은 지금 간절하게 길을 찾는 너에게로
빛의 속도로 달려오고 있으니







 

양애경/별은 다정하다



집에 돌아오며 언덕길에서
별을 본다
별을 보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별은 그저 자기 할 일을 하면서
반짝반짝 하는 거겠지만
지구가 혼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같아서
내가
혼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같아서 그렇다
눈에 닿는 별빛이 몇 만 년 전에 출발한 것이라든지
그 별이 이미 폭발하여 우주 속에 흩어져 버린 것일 수도 있다든지
보이저가 가보니까 토성의 위성은 열 여덟 개가 아니라
사실은 스물 한 개였다든지
그런 걸 알아도 그렇다

오히려 나도 다음 생에는 작은 메탄 알갱이로
푸른 해왕성과 얽혀 천천히 돌면서
영혼의 기억이 지워지는 것도 좋겠다 싶다

누군가
열심히 살고 있는 작은 사람 같아서
가족의 식탁에 깨끗이 씻은 식기를 늘어놓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큰 냄비를
가운데 내려놓은 여자 같아서

별은 다정하다





 

공재동/별


즐거운 날 밤에는
한개도 없더니 한개도 없더니
마음 슬픈 밤에는 하늘 가득 별이다
수만개일까 수십만갤까
울고싶은 밤에는 가슴에도 별이다
온 세상이 별이다









 

존 맥리올라/별


한 소년이 별을 바라보다가 울기 시작했다.그래서 별이 물었다
아이야,넌 왜 울고 있니?
소년이 말했다
당신이 너무 먼 곳에 있어서 당신을 만질 수가 없잖아요
별이 말했다
아이야,난 너의 가슴 속에 있어
그렇기 때문에 넌 날 볼 수 있는거야







알퐁스 도데/별


저 숱한 별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가장 빛나는 별 하나가
그만 길을 잃고 내려와 내 어깨에 기대어 고이 잠들어 있노라




 

유희경/별

스물이었고 겨울이었다.
길 위 모든 것이 얼어붙어 서서히 드러났다.
나는 모진 생각과 싸우고 있었다.
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알 수 없지.
그게 어른이야,아마.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까닭 없이 마음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오느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 민들레 꽃 / 조지훈





일상의 끝에서 어둠을 만날 수 없다면 
단 하룬들 견딜 수 있을까 
고단한 하루를 접고 둥글게 몸을 말고 누웠다 
달도 별도 보이지 않는 
완전한 어둠이 창 밖에 있다 
어둠은 원초적 고독이다 
빗소리 창문을 두드린다 
어둠은 저의 고독으로 비의 눈물을 덮어준다 
어둠은 얼마나 따듯한가 
나는 창문을 열고 살며시 어둠을 만져본다 
어둠의 살결이 젖어있다 
저 어둠 속에 서 있으면 
나도 너에게로 젖어들 수 있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젖는다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스민다는 것 
어둠의 살결을 만지고야 알겠다 
나는 어둠의 살결을 오래도록 만지며 
베란다에 서 있다 


- 어둠의 살결 / 최정연





불을 끄면
실핏줄 타고 내려오는
사랑아,
어둠 속에서
홀로 앓는 몸살에 울다가
기어이 가슴팍에
지워지지 않는
붉은 꽃물들이다가
바람아, 바람아
아직
생기 도는 내 바람아
어둠에도 풀리지 않는 그리움은
초롱한 별빛 같고
홀로 우는 달빛 같고
이 밤 깊숙이
그림자 쓸쓸히 묻어두고
날마다 목이 마른 사내
설레임만 눈치 없이 깊고


- 사랑은 달빛같고 / 정구찬





아 ! 이슬 되어, 바람 되어

마음 하나 심장 깊숙이 심어

허구헌날, 온통 그리움뿐

휘젓고 돌아치고 달궈지고 몰아세우는

너는 누구더냐

 

잊고 살자 다짐해도

혼절의 무게로 다가와

버릇처럼 세포마다 문신 새기고

내 안에 오직 너로만 퐁퐁 샘솟게 하는,

너는 대체 누구더냐

 

눈멀어 귀멀어

붉은 꽃물 모다 모아

옴팡지게도 스미게 하는 너

사랑하고도 외롬을 질끈 동여맨

사랑, 그 천 개의 무색 그리움

 

무딘 침묵의 어깨를 넘어

담장의 넝쿨 장미, 오지게도 달게 피듯

사랑, 그 천 개의 그리움

붉은빛으로 가슴팍에 빙빙

허구헌날, 나를 놓아주질 않는구나


- 사랑, 그 천개의 무색 그리움 / 양애희





선한 눈망울 뒤에 감추어진 텅빈 가슴
나를 잃고 뒤돌아 앉은날 
바다는 울고 있었다

파도가 휩쓸고간 너의육신 위로
환희로 가득찬 날개짓 하던날 
바다는 울고 있었다

채 마르지도 않은 눈물위로 
비마져 가슴을 덮던날
바다는 눈물을 감추고 울고 있었다

소리도 내지못하고
아무도 모르게


- 상처 / 최은옥






당신이 내게로 오지 않았더라면 
저 붉은 적막의 문장들을 어떻게 다 읽을 수 있었겠어요 
당신이 내게로 오지 않았더라면 
피었다 지는 찰나의 상처들을 어떻게 
다 받아 적을 수 있었겠어요 
작고 고운 당신이 
어떻게 내게로 올 수 있었는지 
봄이 다 지도록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장한 슬픔을 내려놓고 
낙화, 온전한 낙화 
허공이 온통 흰 뼛가루인 
천인단애(千仞斷崖)의 사다리 
천지사방 흔들립니다 
당신이 내게로 오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요 


- 꽃, 완전한 낙화 / 최정연





당신과 헤어져 걷는 길에 
겨울 찬바람 붑니다 
내 등 뒤에 
당신이 꼭 계실 것만 같아 
뒤 돌아보면 
야속한 바람만 불어댔지요 
뜨거운 눈물 삼키며 
휘청이는 내 발등위로 
억새꽃잎 같은 눈발이 서성거렸습니다


- 겨울바람 / 김용택





먼 길 떠나는 길손이 아쉬워 
옷자래기 붙잡고 떼써본다 
  
사랑은 흔적없이 
잿빛 추억뿐이더라 
  
하늘 탓을 하랴 
우리네 감성을 탓하랴 
  
떠나려는 길목을 차단하여 
가물어 지친 감성에 쏟아붓는 
비가 아니더라도 
  
그저 무심히 떠나는 
이별은 하지마라 
  
아쉬움에 남는 상처로 치를 떨어 
처연한 미련을 보여다오 
  
내 비록 마음은 절망하나 
너를 느껴보픈 소망은 
  
마지막 숨을 할딱이는 
목숨보다 더 간절하다


- 단풍 / 공석진





나도  
저렇게 뒹굴었지 

길 위에서 
내 삶의 한쪽이 
바스락 바스락거리다가 
먼지처럼 
떨어져 나갔지 

너를 향한 내 마음 
붉게 물들고 물들다가 
더 이상 
내어 줄 마음자리 없어 

나도 저렇게 
벽 없고 
지붕 없는 하늘 아래 
그냥, 
그냥 누워 버렸지


- 낙엽처럼 / 최옥





그리움이 도지면 
맑았던 하늘도 
금새 구름이 잔뜩 끼고 
잿빛 하늘이 되어요 

가슴에 구름 모이면 
멀쩡하던 눈가가 
촉촉이 젖어 
동그란 이슬이 떨어져요 

머지않아 봄비 내리면 
새순이 돋고 
새 생명 키워 내듯이 
내 사랑도 꽃비로 오겠죠 

그때, 

내 숨결 애처롭게 떨면 
당신의 뜨거운 입술 
살짝 스치듯 포개어 
녹여 주세요, 
이 미친 갈망의 숨결을


- 녹여주세요 / 김세영





보일 듯 말 듯 
솜털 갯버들 
가물어 지친 개울에 
비 내리면 
만개하려나 
  
혹독한 겨울 지나 
으스스히 부는 
꽃샘바람쯤이야 
마음 너그러지면 
사랑이 오려나 
  
쑥쑥 
아,이 봄에 
몸이 마르는 소리 


- 사랑이 오려나 / 공석진





나는 파다한 세상의 뒤안길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는 법 배우고 있다 
내 볼기짝 수도 없이 때리고 가는 
물결과 물소리 
버거운 몸 수심 깊이 물살에 부대끼고 
고기떼에 가슴 한곳 뜯겨가며 수도(修道) 중이다 
물속에 나를 가두고 젖어있는 동안 
수밀도의 흰 속살처럼 달이 뜨고 
얼마나 많은 햇살이 내 젖은 가슴을 건너갔을까 
기다릴 줄 아는 삶은 
노을에 잠시 나를 물들이는 것과 같아 
푸른 이끼로 돋아난 시간의 정원 속으로 
미끄러지듯 또 하루가 저물고 
나는 기억의 바퀴를 달고 
너에게로, 너에게로 달려가고 싶다


- 징검다리 / 최정연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과거가 있단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과거가 

비가 오는 거리를 혼자 걸으면서 
무언가 생각할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란다

낙엽이 떨어져 뒹구는 거리에 
한 줄의 시를 띄우지 못하는 사람은 
애인이 없는 사람이란다

함박눈 내리는 밤에 혼자 앉아 있으면서도 
꼭 닫힌 창문으로 눈이 가지지 않는 사람은 
사랑의 덫을 모르는 가엾은 사람이란다


-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 조병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