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 대응목적 거대소총 탕크게베어 (Tankgewehr) 대 전차총
- ▲ 파리 육군박물관에 전시중인 탕크게베어.
무기의 개념 중 확실하게 정립되지 않은 것 중 하나가 총(銃)과 포(砲)의 구분이다. 구경의 크기, 탄의 폭발 유무, 탄도의 궤적, 관측자와 사격자가 동일한지의 여부, 휴대성 등등 여러 가지 기준으로 총과 포를 구별하지만 어느 것을 택하더라도 꼭 예외가 있어 일괄적으로 정의하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구경만 놓고 보았을 때 포라고 하여도 결코 무리가 없는 106mm 로켓 발사관을 ‘무반동총’이라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국군 당국이 ‘리코일리스 라이플(Recoilless Rifle)’을 처음에 그렇게 번역하였기 때문인데, 사실 같은 한자 문화권인 일본과 중국에서는 포라고 표기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사용자 입장에서는 총이건 포건 사용에 불편하거나 문제만 없으면 된다. 그래서 깊이 생각할 것 없이 사람들이 총이라 하는 것을 총, 포라고 부르는 것을 포로 알고 있으면 되겠지만 총은 ‘작은 것’, 포는 ‘큰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어쩔 수 없다.
일반적으로 보병들이 휴대하는 총을 소총, 포병들이 다루는 포를 대포라 부르는데 소총 중에도 사용 목적이나 위력으로 볼 때 포에 버금가는 괴물 같은 존재들이 있다. 이른바 대물소총(代物小銃)이라고도 불리는 대전차총(Anti-tank Rifle)이 바로 그 주인공으로, 마우저 M1918 탕크게베어(Mauser M1918 Tankgewehr)는 이러한 괴물들의 아버지다.
- ▲ 솜 전투에 처음 등장한 영국의 Mk I 전차. 참호를 뛰어 넘기 위한 고육책에서 탄생한 전차는 무기사에 새로운 장을 개척하였다.
새로이 등장한 지상전의 왕자
1916년 9월 15일, 프랑스 솜(Somme) 지역에 구축된 전선에서 전방을 경계 중이던 독일군은 그들 앞으로 다가오는 물체를 보고 경악했다. 둔중한 기계음을 내며 등장한 처음 보는 거대한 상자 모양의 물체는 양측 참호 사이에 형성된 이른바 무인지대(No Man's Land)를 넘어 서서히 독일군 진지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동안 참호전에서 가장 효과적이었던 방어무기인 기관총을 이 괴물을 향해 난사했지만 총알이 튕겨나가기만 할 뿐이었다. 철갑을 두른 새로운 무기는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총을 쏘아대었다. 초유의 사태에 당황한 독일군은 겁에 질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갔다. 이후 지상전의 왕자로 등극하게 되는 ‘전차(Tank)’의 극적인 데뷔 장면이었다.
- ▲ 대전차용 대물소총의 탄생을 이끈 13.2mm TuF탄(우). 한때 미국도 이를 복제하여 대전차무기용 탄환으로 사용하려 하였으나 연속 격발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철회하였다. 그 대신 탄생한 걸작이 유명한 .50 BMG(.50 Browning Machine Gun) 즉, 12.7×99mm NATO탄이다.
적의 공격을 너끈히 방어하고 적진까지 들어가 치명적인 반격을 가할 수 있는 새로운 스타일의 무기가 필요했다. 이런 필요에 의해 전차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비록 여러 이유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전차들은 독일군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고, 이후 개량을 거듭하며 ‘지상전의 왕자’라는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고착화된 전선 돌파가 주요 목적이었기 때문에 전차는 당시까지 존재하던 소화기들의 공격을 너끈히 막아낼 수 있었다.
지금 기준으로 따진다면 장갑(裝甲)이라 하여도 전차는 고사하고 장갑차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어설픈 수준이었지만 당시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중화기를 사용하면 충분히 격파할 수 있었지만 이동하는 전차를 공격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더구나 대구경의 중화기일수록 후방에 배치되어 있어서 최전선에 등장한 전차를 즉시 요격하기는 어려웠다.
일선에서 요구한 새로운 무기
최전선에서 보병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데 가장 뛰어난 성능을 발휘한 기관총도 전차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전차의 공격을 제일 먼저 받게 되는 보병들에게 이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이 전무하다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였겠는가. 그러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과정이라는 말처럼 전차의 등장은 당연히 전차를 파괴하는 새로운 무기체계의 발달을 이끌었다.
독일은 일선 보병이 충분히 휴대할 수 있으면서 전차의 장갑을 관통할 정도의 화력을 지닌 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노획한 전차를 분석한 독일군 당국은 장갑이 균일하지 않으며 일부 취약 부분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따라서 그동안 주로 사용하던 납 탄두 대신 관통력이 강한 철갑탄을 사용하여 취약 부분을 공격하면 소총으로도 전차의 장갑을 관통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 ▲ 종전직전인 1918년 8월 그레빌러 부근에서 T-게베어를 노획한 뉴질랜드군 병사.
하지만 이론과 달리 이런 전차 공격전술은 일선에서 실행하기 상당히 어려웠다. 아무리 담력이 강한 병사라 하더라도 굉음을 내며 달려오는 전차 가까이에 접근하기 어려웠고, 취약 부분을 골라 정확히 사격을 가하는 것도 힘들었다. 더구나 이런 독일의 대응 전술을 즉시 파악한 영국군이 취약 부분의 장갑을 강화하자 시급히 제작된 7.92mm 철갑탄으로 이를 뚫기란 불가능했다.
이렇게 전차의 방어력이 증가하면 전차 공격 방법이나 무기도 함께 발달했다. 연합군이 전차의 장갑을 늘리자 독일군은 총의 크기를 키우는 지극히 단순한 방법으로 대응했는데, 급박한 당시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는 당연한 대처라고 볼 수 있다.
오로지 한 가지 목적으로 탄생한 총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전쟁 말기인 1918년에 마우저(Mauser)사의 탕크게베어 대전차소총이 탄생하였다. 간단히 ‘T-게베어’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렸는데, 볼트액션 방식에 단발 장전이었지만 전차의 장갑을 관통할 수 있는 대구경의 13.2×92mm 탄을 사용하였고 무게가 무려 17.3킬로그램이나 되었으니 통상적인 수준의 소총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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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캐나다 전차부대원에게 노획된 T-게베어. (우)캐나다군에 노획된 T-게베어. 무겁다 보니 특별히 이동 기구를 겸한 거치대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괴력을 가진 총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탕크게베어는 발사 시 충격으로부터 사수를 보호하는 장치가 없는 극히 단순한 구조의 총기였다. 연합군 전차를 파괴하는 목적이 최우선이다보니 사수의 안전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사실 지금도 12mm가 넘는 대구경 탄은 발사 시의 반동이 워낙 커서 휴대용 화기에서 다루기가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일선에 탕크게베어가 보급되었다는 것은, 연합군 전차에 대한 독일군의 공포와 충격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다.
무기로서 조악한 측면도 있었지만 효과는 의외로 컸다. 100미터에서는 20밀리미터, 300미터에서는 15밀리미터 정도의 장갑을 관통할 수 있어 최전선에서 전차에 대한 요격이 충분히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T-게베어는 총 1만5천8백 정이 생산되어 1차대전 당시 가장 널리 쓰인 대전차무기로 기록되었다. 반면 수많은 연합군 전차들은 어디서 날아올지 모를 T-게베어의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런 효과 때문에 보병용 대전차무기가 휴대용 로켓이나 미사일인 경우가 대부분인 지금도 일부 대물저격용 소총이 전선에서 맹활약 중이다. 한마디로 T-게베어는 휴대할 수 있는 모든 대전차무기의 기원이라는 기념비적인 물건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대전차총을 대포라 하기엔 애매하지만 소총이라 부르기도 어쩐지 낯간지럽다. 이 중간을 지칭하는 단어가 없지만 T-게베어는 총과 포의 경계에 서 있는 가장 대표적인 무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탄약 13.2×92mm (13.2mm TuF) / 작동방식 볼트액션 / 전장 1,691mm / 중량 17.3kg / 유효사거리 5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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