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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대전의 망한 병기들<5탄>...이래서 천조국!!

바래미나 2014. 9. 14. 23:48

차대전의 망한 병기들<5탄>...이래서 천조국!!

국방비를 천조원이나 써대는 미국을 일컬어 천조국이라는데..이는 2차대전시에도 마찬 가지였으며..

 막강한 산업기반과 인적자원을 기초로 대규모 물량공세를 퍼부운 미국의 전략을 다시 설명해봐야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만은,가끔 웃긴 생각이지만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일본은 뭔생각에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을까?
그냥 돈도 별로 없고 깡만 있는 비쩍 마른 꼴통이지만 그래도 옆집사는 순하게 생긴 뚱뚱이 아저씨(알고보니 억만장자에 UFC챔피언)를 스윽 보니 한번 해 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든 걸까요? 
그렇게나 그들 눈엔 그 아저씨가 만만하고 한대 툭 치면 그냥 픽 쓰러지게 보였던 걸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기가 찰 노릇입니다만...

 

아무튼 미국도 2차 대전시에 명품무기만을 내놓은 건 아니고 셔먼이나 B-17 폭격기 같이 몇몇 결점이 있었지만 이를 물량으로 땜빵한 사례도 많았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내용은 거의 실패작에 가까운 물건들을 자본과 깡, 혹은 판단 미스로 밀어붙혀 실전까지 배치한 미군병기들입니다.
전쟁상황이라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천조국이 아니면 감당이 안되는...


 

1. 소 개

- 컨솔리데이티드 B-32 도미네이터 (Dominator 모델 34)
- 2차대전기 미국의 중폭격기이자 대전 중 연합군이 맨 마지막에 투입한 중폭격기
- 최후기에 등장한 폭격기이니 성능이 갑일 것 같으나 결과는 안습..
- 원래는 B-29 슈퍼포트리스와 함께 개발된 폭격기로 B-29 계획이 실패하거나 양산량이 적을 시 사용할 대안으로 제작.
- 같이 개발이 시작되었는데 이놈아는 1945년 중반에 들어서야 드디어 태평양 전선에 투입되었으며, 매우 적은 수의 작전수행.

 

 2. 개발배경

- 미육군항공대는 영국 또는 유럽에서 가까운 인도나 중국에서 발진하여 독일과 그 점령지를 폭격할 수 있는 "초장거리 폭격기 계획(very long range heavy bomber)을 비밀리에 입안
- 1940년 1월 각 항공기 업체에 요구사항을 전달, 응모할 수 있도록 함.
- 이 계획의 요구사항은 2만 파운드(약9톤)의 폭탄을 탑재하고 8,000km 이상 항속거리를 갖는 폭격기를 개발하라는 것이었음.
- 미육군 항공대는 이에 응모한 보잉 B-29, 록히드 B-30, 더글러스 B-31,콘솔리데이티드 B-32 의 방안을 모두 채용.
- 설계를 상세 검토후 만들어진 시제기를 통해 양산여부를 결정하기로 하였지만 시제기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1위는 보잉의 B-29 , 2위는 록히드의 B-30이 결정.
- 이후 양산주문이 들어가게 되지만 록히드가 백업모델인 자사의 B-30 제작을 여러 이유를 들어 거부함에 따라 차차기인 B-31이 다시 백업 모델로 결정.
- B-31조차도 탑재할 엔진이 계획과 달리 변경됨에 따라 제작기간이 연장될 것이 명백해 짐으로 평가에서 꼴찌였던 B-32가 백업모델로 결정.
- 1940년9월3일 시제기 2대의 제작에 들어가게 됨.(참 어렵다,에휴~.. 미국군수업체의 갑행세는 이때에도 있었던 모양...)


(B-32 생산라인)

 

3. 개요

- B-32는 레시프로 엔진 4기를 갖춘 대형폭격기였으며 동체는 고고도비행이 가능한 여압장치를 갖출 계획, 따라서 압력에 높은 저항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원형으로 제작.
- 50구경 중기관총이 2정이 거치된 포탑 5개소를 설치하였으며 이 총탑들은 리모트컨트롤로 조작.
- 이 총탑들은 당시로서는 정교한 아날로그식 컴퓨터로 조준되며 거리와 적기의 상대속도를 계산 시시각각 변하는 표적의 탄착점을 사수의 조준경에 미리 시현해주는 당시로서는 최첨단 장비였음.
- 하지만 조준경의 시야가 좁고 신뢰성이 떨어져 실전에서 그리 크게 도움은 되지 않았다고 함.(요즘으로 치면 뭐가 많고 비싼데 쓸 게 없다는..TV리모컨..뭔 단추는 엄청 많은데.. 쓰는 단추는 세개..전원,채널,음량..끝..-_-;;)
- 개발도중 시험비행에 나선 시제 1호기가 추락하고 수직미익의 개량, 그리고 결정적으로 여압장치의 불량으로 개발이 점차 늦춰짐(개발목표는 높고 할 수 있다 큰소리는 쳤지만 자꾸 늘어진다는..F-35??)
- 그럼에도 육군항공대는 1943년 3월, 훈련기와 양산형을 합쳐 300대를 정식 발주하고 이후 양산형 1,500대를 추가로 1944년 발주함.(진짜 F-35 비스무리...)
- 1944년9월,개발이 지체되는 원인이었던 여압장치를 뺀 양산형이 완성되었지만 이때 이미 완벽한 여압장치를 갖추고 고고도 정밀폭격이 가능한 B-29가 배치된 상황이었기 때분에 B-32의 가치는 급락.

 

4. 실전투입.
- 완성된 기체는 1945년5월 필리핀주둔 제 5 공군에 배속.
- 이후 부대편성과 기종전환 훈련을 하다가 B-26 인베이더가 수행하던 임무를 승계, 별 가치없는 폭격임무에 투입됨.(그중엔 사탕수수밭을 쑥밭으로 만드는 작전도 있었음...)  
- 오키나와로 이동후 임무를 찾아헤맸으나 이땐 이미 대규모로 투입된 보잉 B-29가 일본본토를 아작내고 있었기에 걍 대기상태.
- 그러다가 그냥 놀리기보단 강행정찰 임무에라도 쓰자는 의견에 따라 새로운 일거리인 본토 정찰임무에 투입됨.(비싼놈 걍 앉혀놓을 순 없었기에...)
- 즉 곧 실시될 예정이었던 본토상륙작전(오퍼레이션 몰락)에 대비해 일본본토 대비상황에 대한 정보를 항공촬영하는 임무였던 셈.
- 이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고 난 후였는데도 일본이 아무런 항복이나 이에 상응하는 화답이 없자 예정대로 몰락작전을 개시하기위해 1945년8월13일 본토항공촬영작전이 개시됨.
        
5. 마지막 전사자

- 일본의 항복이 발표된 이후 1945년 8월18일 예정대로 본토 항공정찰을 위해 발진한 B-32에 일본기가 요격을 시도, 미군 승무원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함.
- 이때 B-32 "Hobo Queen 2(s/n 42-108532)"에 탑승했던 항공사진사 안소니 마쇼니 상사가 2차대전을 통틀어 마지막 미군 전사자였음.
- 이때 발진한 일본요격기 14대 중에는 그 유명한 일본의 슈퍼갑 에이스 사카이 사부로가 조종하는 제로센도 포함되어 있었음.(자기들은 지네가 항복한 줄 몰랐다고..T.T)


(당시 상황을 묘사한 기록화)

 

6. 평 가

- 대전 막바지에 등장한 당시로썬 최신기술이 적용된 폭격기였으나 개발기간도 많이 소요되었고 당연히 등장시기도 한발 늦음.
- 특히 고고도정밀폭격의 핵심인 여압장치가 불량 및 개발 연기로 인해 탑재되지 않음으로 B-29와는 상대조차 되지 못함.(하긴 이때는 커티스 르메이 장군의 닥치고 저공폭격 전략이 시행되던 시기라 여압장치는 그닥 불필요...어차피 야간에 저공으로..)
- 또한 조종실을 둘러싼 캐빈에서 많은 문제점을 들어냈는데, 정면 캐노피는 엄청난 진동과 소음을 발생하여 승무원들은 비행중 내내 떨어져 나갈까봐 불안에 떨었다고 함.
- 각종 설비들의 배치도 중구 난방이었으며 특히 폭격수는 왜 폭격목표를 조준할때 조준기와 조준창사이를 계속 번갈아 보며 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원성이 높음.
- 하지만 이렇게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 기제는 종전시 무려 118대는 군에 납품까지 되었고 공장에선 130대가 비행가능 상태까지 제작되었음.
- 그 결과 이 비싼 중폭격기들을 전쟁이 끝나고 한달도 안돼어 일괄 퇴역처리하고 전기체를 스크랩처리해 버림.(1945년 1월 27일에 개발 완료.. 퇴역은 그 해 8월 30일..현역기간 8개월..-_-;;)
- 즉, 한대도 놔두질 않았다는 얘기..전부 고철로...(기름 많이 먹는 페라리를 주차비 든다고 폐차시킴..아낌없이 버리는 천조국...)
- 연습기나 전투기도 아니고 최신 4발 중폭격기를, 그것도 거의 300대나..  좀 고쳐쓰지 그냥 전부 고철로....
- 나중에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혹시 남은게 있나 전국을 수소문했으나 남은 거라곤 고작 전방 기관총터렛 1개가 다였다는..(현재 박물관은 달랑 남은 이걸 전시중..)

 

 


1. 소 개

- 이름 리틀 데이비드(Little David..왜 리틀인진 잘 몰겄음..-_-ㅋ)
-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만들어진 미국의 박격포.
- 구경만 따지면 세계 최대의 곡사포로 기네스북에 등재.
- 미국판 칼 구스타프

 

2. 개발배경

- 원래는 항공폭탄 시험용.
- 즉, 새로 만든 폭탄을 비행기에서 투하해서 시험하기는 좀 위험하니 일단 거대한 대포에 넣고 쏴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실험해본다는 것이 목적.
- 그러다가 태평양전쟁 말기 몇몇 전장에서 일본 황군의 미친 짓거리를 보고는 어이가 없어진 미군측이 일본의 정신나간 요새를 뚫기 위해서 전투용으로 개조.
- 게다가 일본군은 일본 본토와 쓰시마 섬 등의 해안요새에 최대급이 16인치 주포를 가진 전함의 주포 포탑(미완성 전함이나 구형전함에서 철거)을 강화해서 그대로 설치함.
- 이런 요새의 경우 일반적인 야포는 물론이거니와 전함의 함포사격도 직격탄을 수차례 주지 않으면 이렇다 할 손상을 입지 않는 가공할 방어력을 가진 것으로 판단.
- 미군의 입장에서는 잘알려진 오키나와나 이오지마의 일본군의 행태는 둘째치고 필리핀의 드럼요새같이 요새화된 거점에서 항전하는 황군은 특히나 처리하는데 많은 희생과 노력을 강요당하였음.

(지금도 남아있는 필리핀의 드럼요새)

- 특히 일단 일본에 상륙한 후에 해안요새와 역시 방어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내륙요새를 박살내기 위한 수단으로 미국은 똑같이 거포를 만든 셈.

 

3. 배치 및 사용방법

- 일단 타국의 거포와는 달리 미국은 경제력이 좋아서 이런 거포를 안전하게 태평양 너머 일본으로 운반할 수단이 많았음.
- 포탄도 무연화약 부족에 시달리는 독일과 달리 사용할 특수용 포탄을 충분히 보급할 수 있었으며 덤으로 포신도 자원부족 따위를 겪지 않고 전문가가 시간을 들여서 만들었기 때문에 포격 도중에 파열이나 명중률 저하 따위는 예상된 포신수명 내에는 없을 것이란 판정도 받음.
- 여기에 더해서 구스타프 열차포같이 진지 구축에 3주의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라 구경을 생각하면 짧은 시간인 12시간안에 진지를 구축하고 사격이 가능.
- 그래서 일본 본토 상륙작전인 올림픽 작전을 염두에 두고 그 때까지 포와 포탄, 관련 장비 및 인력 1세트를 전장에 전개하려고 계획함.

 

4. 평 가

- 사거리와 명중률, 효율성에 대해서는 상당히 회의적임.
- 일단 구경 1위답게 운반장치를 제외하고 질량 40톤, 길이 6.7미터에 구경 914mm(36인치)라는 정신나간 스펙을 가지고 있음.

 
 (전용 914mm 포탄, 이 포탄도 세계최대급의 포탄으로 기록)

 

- 게다가 이 물건은 말 그대로 공성포라서 현장까지 이동한 후에 토목공사급 공사를 해서 포를 지탱할 기반을 닦고 포가를 설치해야 하므로 야전포처럼 쉽게 방열하고 쏘는 물건이 아님.
- 애초에 부대편성에 불도저와 크레인, 굴삭기등의 건설장비가 포함되어 있었음.

 


(이동하려면 전용 트레일러가...)
- 게다가 박격포답게 사정거리도 10km에 불과해 목표물 근처에서 토목공사를 벌여야.. 그러려면 적요새 근처를 확실히 클리어 해 놓던지 해야 하는데..(흠..이게 말이 되는 건 가?)
- 그렇게 라도 쓰려고 했는데 핵폭탄 맞고 일본이 항복(안쓴 게 다행..운용병들은 죽어 났겠음..)
- 독일의 구스타프 열차포는 일단 세바스토폴 공방전에서 사용하기라도 했다는 것을 본다면 그냥 돈낭비(괜찮아...천조국이니까...)

 

5. 제 원

구경 : 914mm
중량 : 82,808kg
발사각도 : 65도
포탄중량 : 1,678kg
작약중량 : 726kg
최대사거리 : 8,700m

 

 

 

1. 소 개

- 이름 M1941 존슨 소총(Johnson Rifle)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개발된 미군의 반자동 소총.
- 미국 "Marine Fire Arms"사에서 1936년 "Melvin Maynard Johnson Jr"에 의해 설계.
- M1 개런드의 땜빵용으로 종전시까지 생산 및 사용

 

2. 개 요
- 1938년 3월에 원형이 만들어진 직후 미군의 테스트를 받는데 결과는 별로 신통치 않았음
- 테스트간 지적받은 더블칼럼구조(복렬식)을 싱글칼럼으로 변경하여 이후 영국군도 관심을 보임.
- 영국이 독자적으로 테스트 했지만 채용되지는 않음.
- 1939년 6월에도 테스트를 하게 되는데 30-06탄을 더블칼럼에서 싱글칼럼으로 변경한 탄창이다보니 길이가 두배가 되어 총상하부에 돌출되는 문제점으로 인해 결국 미끄럼틀.
- 결국 존슨의 가장 큰 특징인 로터리형 회전식 탄창으로 개량, 미 해군과 해병대에 제출.



 ( 존슨소총의 로터리형 회전식 탄창의 구조)

 

- 하지만 이마저도 1941년 최종답변에서 "M1 개런드를 뛰어넘는 우위를 보이지 않는다"라는 답변을 들음.
- 하지만, 갑작스럽게 태평양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네덜란드는 1940년부터 존슨 반자동 소총을 시험했고 네덜란드 식민지군과 왕립해군용으로 채용, 약 50,000정이 발주.(뭐, 히틀러가 꿀꺽한 관계로 본국에 인도는 못함..)
- 미국도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무기의 수요가 폭증했으므로 제식화기 이외에 긴급히 새로운 소총을 배치할 필요성을 갖게 됨.
- 미해병대도 M1이 제식이었으나 당시 보급이 육군에 편중되어 배치가 늦어지는 것에 따라 해군은 결국 존슨 반자동 소총을 채용하며 M1941로 제식화.
- 과달카날 상륙전까지도 미해병대는 1차대전형 M1903 스프링필드 소총을 보유.


(육군은 신삥주고 우린 할배가 쓰던 이걸.. M1903 스프링필드 소총)

 

3. 평 가
- M1941 존슨 계열의 총기류는 대전중에도 아직 구조가 완전히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음.
- 가장 큰 문제는 총기 구조상 총검을 장착하면 오동작이 일어나거나, 방아쇠를 당겨도 발사가 안되는 사태가 종종 일어난다는...(쏴도 안나가쟈나~)
- 그 외에도 험악한 전장에서 쉽게 잃어버릴 수 있는 작은 부품들이 많은데, 설상가상으로 약간의 충격등에도 잘 떨어져나간다는 점도 있었음.
- 게다가 소총의 특성상 근접전이나 육박전의 경우 한번 치면 탄창이 통째로 떨어지는일이 비일비재..(쳤는데 내 소총이 박살난다능~)
- M1 개런드보다 더러움이나 주변 환경에 민감해서 총기 소제등의 관리를 더 충실하게 해야 한다는 점등의 자잘한 문제점도 있었음.
- 이런 이유로 당시 미국 제식 소총보다 2발이나 장탄량이 더 많다는 장점을 홀라당 다 까먹었음.
- 따라서 대규모로 도입되거나 하지 않고 기존에 도입된 수량만 사용되다가 종전 후 자연스럽게 퇴출과 동시에 폐기.
- 하지만 종전시까지 생산량만도 약 70,000정.(M-1카빈의 약 600만정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만..그래도..천조국은 천조국..)

 

4. 제 원
•종류: 반자동 소총
•구경: 7.62mm × 63 (.30-06), 7x57mm Mauser(칠레군용),270 Winchester
•장탄: 10+1발
•무게: 9.5 lbs (4.31 kg)
•길이: 1,165mm (116cm) (45.87 inch)
•총열길이: 560mm (56cm) (22 inch)
•생산연도 : 1941년∼1945년


 



1. 소 개

- 이 름 너무나 유명한 FP-45(Flare Project Caliber .45) Liberator(해방자)
- 악명 높은 철판 기관총 스텐도 리버레이터에 비하면 제대로 된 총.
- 제2차 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를 원조하기 위해 대량으로 생산된 저가형 무기
- 권총의 최소형태란 무엇인가를 보여줌.
- 제원
  전장 141mm(14cm)
  중량 454g
  탄속 250m/s[2]
  탄약 .45 ACP
  급탄 단발[3]
  장탄수 1발

 

2. 개발배경

-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 직후 추축국 점령지의 레지스탕스에게 무기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권총.
- 별 거지같은 권총에 요구사항은 엄청남
  1)무상원조로 빠르고,대량으로 지급하기 위해 싸고 빠르게 만들 수 있어야 하며,
  2)공중으로 수송해서 투하할 수 있을 것
  3)레지스탕스가 숨기기 편하게 하기 위해 작고 가벼워야 하며.
  4)정규 생산라인을 방해하지 말 것
  5)거기다 "적이 주워도 쓰지못하게 할 것"이라는 조건도 있었음.
- 그래서 나온 게 저 미칠듯이 단순한 쇳덩어리.
- 제작사는 심지어 GM.(자동차 만드는 제네럴 모터스...그것도 본사가 아니라 신호등 제작하는 협력업체...실제로도 예비군 훈련가면 지급되는 M1 카빈 소총 중에 GENERAL MOTORS가 찍혀있는 것이 있다는...)
 
3.특 징
- 구조도, 생김새도 엄청 단순하고 덤으로 크기도 작아서 은닉하기 좋음(장점은 이게 전부...-_-;;)
- 우선적으로는 탄창 그런거 없고 약실에 단 한발만 장전 가능(설계도를 보니 손잡이 안에 탄창이 있다고? 그건 그냥 총알보관통...)
- 즉 한 발 쏘고(여기서 대부분 끝이지만 굳이 더 쏴야겠으면) 탄피 꾸역꾸역 꺼내고 손잡이탄통에서 총알 꺼내서 재장전하고 다시 사격...(이게 무슨 머스킷 권총이냐? 하다못해 데린저도 이거보단..)
- 뭐 강선이 없니 사거리가 짧으니 어쩌구 저쩌구 설명할 필요도 없이 걍 쓰레기 권총.
- 오죽하면 독일군이 발견하고도 총인 줄 몰랐다고 함.

 


(리버레이터 세트)

4. 생 산
- 1942년 6월에서 8월사이 2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100만정이나 생산(여기서 천조국의 위엄이...)
- 이걸 추축군 점령지 전역에 뿌려서 점령군의 뒷통수를 친다는게 목적인데, 이 총을 대변하는 가장 유명한 문구가 '장전시간이 생산시간보다 길다' 라는 것.
- 100만정을 생산하는데 걸린 시간은 총 11주 였음..
- 여기서 공장직원 300명이 23개의 부품을 가지고 쉬지않고 제작했다고 가정할 때 리버레이터 1정을 생산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6.6초라고 함.
- 그런데 리버레이터를 재장전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쓰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거의 10초는 우습게 넘긴다는...(이걸 재장전하고 자빠진다구?)
- 생산 단가도 엄청 싸서 총 한정에 2.1$라는 파격적인 가격...
 
5. 실 전
- 실전투입의 성과는.. 원래 목적이던 유럽에서의 투입은 사실상 없음...
- 일단 참전 초반, 중요도에서 바닥을 기는 이런 '쇳덩어리'들은 영국으로 가는 보급선단에 실릴 틈이 없었음.
- 이리저리 부대끼고 겨우 영국에 도착한 것은 극히 소수였으나 영국군 SOE는 '무기 원조'라고 도착한 이 '쇳덩어리'의 꼬라지를 보고는..걍 보고만 있었다는..
- 그도 그럴것이 영국에서 이미 레지스탕스들에게 원조해주던 물건이 최소 스텐 기관단총...근데 쏘면 폭발할 것 같은 이런 괴상한 물건을 주면... 주고 욕먹음.
- 게다가 그 비싼 기름 때가며 안그래도 아쉬운 수공기를 야간에 유럽상공에 날려서는 투하한다는 게 고작 이거라면...(만약 그 위험을 무릎쓴 조종사가 자기 임무를 알았다면.. 귓방맹이..)
- 결론적으로 100만정이나 만들어서 창고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만 되었음.

 

6. 새로운 용도(?)
- 미국 본토에서 그냥 재고로 썩어가던 이 물건에 새로운 구세주가 등장함.
- 바로 더글러스 맥아더 태평양방면 사령관과 CIA의 전신인 OSS.
- 필리핀, 중국, 베트남 등지의 항일저항군에게 뭔가 선물을 주고 싶어하던 맥아더가 이를 발견하고는 태평양전선에 마구 뿌려댐.
- 이 아시아 전장은 유럽과는 달리 죽창들고도 싸울만큼 막장이였던고로 레지스탕스들도 이런 무기를 아무말 없이 사용.
- 골때리는 것은 재앙에 가까운 허접한 자국산 권총들을 장비했던 일본군은 이 권총을 대량 노획하여 장교들에게 권총으로 정식 지급하기까지 했다는... (역시 황군..허접의 대명사..)
- 일단 확실하게 작동하고 고장날 곳도 없는 리버레이터는 일본군에게는 꽤나 괜찬은 무기였다고..덕분에 이를 도로 노획한 미군은 그 조잡함에 일본에서 생산한 물건으로 알았다고.(알고보면 마데 인 USA)  
- 전쟁이 끝난 후에도 10만정 가까이 재고가 남아 동유럽과 중국 등지 반공게릴라에게 건네지기도 했고 한국전쟁 당시에도 CIA가 운영하는 게릴라부대의 북한 침투원들에게 장비되었다고도 함.
- 그러나 생산된 100만정 중 대다수는 써보지도 못하고 그냥 폐기...
- 이런 기묘한 아이템이기에 생산당시엔 2달러짜리가 이제는 희소성 덕분에 현대에는 몇천 달러씩 해서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고 있음.(이거나 주우러 다닐까? 필리핀 같은 데에..)
- 천조국은 리버레이터로 돈 낭비한 걸 정신 못차리고 베트남전에서  리버레이터의 설계사상을 그대로 이어받은 디어 건이라는 뻘짓을 또 벌였으나 결국 실전에는 사용되지 않음...

 
(리버레이터 사촌 디어 건..큭~~ )

 

 

출처: 한국 네티즌본부,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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