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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전술 핵 전투기 F-105 선더치프

바래미나 2014. 9. 11. 00:55

60년대 전술 핵 전투기 F-105 선더치프  
출처: 한국 네티즌본부, 카페 
자유낙하폭탄을 만재한 상태로 비행중인 F-105D 선더치프 전폭기. <출처: 미공군>

F-105 선더치프 전투폭격기는 1950년대말에 등장한 소형 전술핵폭탄 B28을 탑재하고 최고속도 마하 2로 침공할 수 있는 기체이다. B28 소형 전술핵폭탄은 70KT에서 1.35MT에 이르는 4가지 종류로 분류된다. 4종류의 B28 전술핵폭탄은 길이 2.44~4.33m에 직경은 0.56m, 무게 771kg ~ 1,053kg으로 모두 다 F-105 선더치프 동체 내부 폭탄창에 장착할 수 있다.


 

F-105F 복좌형 선더치프의 장착가능 무장중에는 AIM-9B 사이드와인더 공대공 미사일과 AGM-12 불펍 공대지 미사일이 포함되어 있다.
F-105F 복좌형 선더치프의 장착가능 무장중에는 AIM-9B 사이드와인더 공대공 미사일과 AGM-12 불펍 공대지 미사일이 포함되어 있다. <출처: 미공군>

베트남전 참전하고 급격히 세력 축소


선더치프는 F-84F 선더스트릭 전폭기의 대체 기종으로 설계되었다. 1952년 9월 25일 미공군은 초기형인 F-105A 199대를 리퍼블릭사로부터 도입하는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한국전이 휴전으로 기울던 1953년 3월 20일, 37대만을 도입하는 것으로 크게 감축한다. 여기에 정찰형 RF-105 9대를 추가하고 1955년 4월에 양산형을 인도하는 조건이었다. 그 이유는 동시에 개발되던 완성도가 높은 F-105B 형을 선택하고 1960년대 주력 모델로 좀 더 개량한 F-105D 를 선택하게 된다. 이후 복좌형 형태의 방공망 제압기로 개조된 F-105F형 등 세가지 모델만을 실전부대에서 사용 한다. 1958년 5월 27일 F-105B의 양산 기체는 제4전투비행단과 제335전투비행단, 1959년 11월에 334/336 전투비행단에 배치하여 전례없는 강력한 전술핵공격부대가 된다. 초기형인 F-105B 전폭기는 공중전용 수색 레이더는 장착하지 않았다. 폭격용의 항법시스템을 장착하고 소형의 E-34 거리측정 레이더가 전부였다.


폭격을 위한 화력제어시스템은 MA-8, 전술핵폭탄 투하용 토스 보밍 컴퓨터는 E-30, 자이로 컴퓨팅 사이트는 E-50을 채택했다. M61A1 20mm 발칸 기관포는 기수 레이돔 근처에 포구를 열었다.


 

F-105D 선더치프 전폭기 조종석 콧핏. <출처: 미공군>
F-105D 선더치프 전폭기 조종석 콧핏. <출처: 미공군>

결정판 F-105D 양산


F-105선더치프 전투폭격기의 3/4의 양산대수를 차지하는 모델은 D형으로 ASG-19 선더스틱이라 불리우는 화력제어시스템을 장착한 것이 특징이다. 모노펄스 X밴드 R-14A 레이더를 중심으로 설계된 ASG-19 화력제어시스템은 F-105D 선더치프에 장착됐다. ASG-19는 요격, 제공, 지상공격에 필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수색 탐지 레이더로 이것을 수용하기 위해 기수 전방 동체가 0.38m 가 늘어나게 된다. 수색 탐지 레이더를 장착한 F-105D 선더치프는 제한적인 전천후 공대공 전투능력을 갖게 된다.


1960년대 초반에 음속 2배의 초음속 전투기로 요격, 제공전투, 지상공격 모두가 가능한 미공군 전투기는 F-105D가 유일했다. 1964년 후반에 우리가 잘 아는 공군형 F-4C 팬텀이 처음으로 전투비행대대에 배치되고 1965년에 베트남전에 처음 투입되기 전까지는 베트남전 북폭의 주력은 F-105 선더치프 전폭기가 될 수 밖에 없었다. F-105D는 1959년 6월부터 부대배치가 시작되고 1961년 5월 서독 공군기지에 배치된다. 1962년 10월에는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의 18전투비행단에 배치되고 1963년에는 이다츠케(지금의 후쿠오카 공항)기지 8전투비행단에 배치된다. 서독과 일본 주둔 기지에 F-105D 선더치프를 우선적으로 배치한 것은 유럽에서는 구소련, 아시아에서는 중국을 상대로 유사시 전술핵 공격을 가하기 위해서 였다. 그 결과 1964년부터 오산 기지에 4대로 편성된 전방전개 F-105D 선더치프가 배치되기도 했다.


 

F-105D 선더치프의 주날개와 동체 아래에 자유낙하폭탄을 장착한 모습이다. <출처: 한국네티즌본부>
F-105D 선더치프의 주날개와 동체 아래에 자유낙하폭탄을 장착한 모습이다. <출처: 미공군>

한편 F-105 선더치프 대량 양산 계획이 당시 민주당 출신 케네디 정권의 유연한 반응 전략으로 기로에 서게된다. 전임 정권인 공화당의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에 전면적인 대량 핵무기 보복 전략을 세우고 미해군 항공대와는 별도로 미공군에 독자적인 전술핵 운반 전폭기로 F-105D를 1,400대 조달하여 14개 전투비행단을 꾸리려 했다. 그러나 케네디 정권의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미해군과 미공군이 각자 다른 전술핵폭탄 전폭기를 도입하면서 국방예산이 비효율적으로 낭비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것은 F-4 팬텀기를 미공군, 미해군, 해병대의 공통 전폭기로 사용하면 예산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 결정으로 F-105D 전폭기 추가 양산은 중단되고 610대에서 막을 내린다.


1964년 2월에 양산은 종료되고 7개 전투비행단만 F-105D를 보유하게 된다. 그날 이후 미공군과 미해군, 해병대는 F-4 팬텀을 3군의 공통 주력 전폭기로 양산하게 된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F-35에 올인한 형태는 아니고 미공군은 F-111을 F-105의 대체 기종으로 양산하기 시작하고 미해군은 A-6 중형 공격기를 양산, 배치하고 A-7 경공격기를 개발하고 있었다.


 

일본의 후지산 근처를 비행중인 주일미공군 소속 F-105F 선더치프 전폭기. <출처: 한국네티즌본부>
일본의 후지산 근처를 비행중인 주일미공군 소속 F-105F 선더치프 전폭기. <출처: 미공군>

실전 배치


1963년 12월부터 1965년 1월까지 양산한 143대의 복좌형 F-105F는 절반 이상의 기체를 개조하여 와일드 위즐 이라는 방공망 제압기로 사용한다. 최초 와일드 위즐II 는 1대를 시험적으로 개조하고 86대는 와일드 위즐 III 로 본격적인 방공망 제압기로 활용한다. 베트남전 후반에 성능을 개선한 와일드 위즐 III 는 F-105G 라고 재명명 된다. 베트남전에서 미공군의 주력 전폭기는 F-105D/F 선더치프이며 지속적으로 북폭에 투입되다 보니 양산대수의 절반을 넘는 숫자가 격추된다. 작전투입 횟수만큼 대공무기와 적 전투기에 의한 피해가 워낙 많다보니 1970년 11월 이후에는 F-4 팬텀으로 교체되어 남은 기체들은 본국으로 보낸다. 귀국한 부대는 주방위군 공군부대나 예비부대로 재배치되었으며 1984년 2월까지 남은 기체들은 모두 퇴역시켰다.


오키나와 가데나 주일미공군 기지에 F-105D가 배치된 것은 1962년으로 18전투비행단에 배치되었다. 구소련, 북한, 중국으로 이어지는 지역을 견제하는 역할이었다. 1963년에 추가 배치된 부대는 지금의 후쿠오카 공항인 이다츠케 기지에 8전투비행단이 F-105D를 인수받아 구형의 F-100D/F 슈퍼 세이버를 대체했다. 1964년 5월에 요코타 기지에도 배치되어 주일미공군의 주력 전폭기로 운용하기도 했다.


 

F-105 선더치프 전폭기가 KC-135 공중급유기의 플라잉 붐에 접근하고 있다. <출처: 한국네티즌본부>
F-105 선더치프 전폭기가 KC-135 공중급유기의 플라잉 붐에 접근하고 있다. <출처: 미공군>

베트남전 북폭 임무


1960년대 초반 인도차이나 개입에 의한 비공식적인 임무시작은 1964년 8월 12일부터 태국 코라트 기지에 전개한 일본 요코타 기지 41항공사단 36전투기대대의 18대 F-105D의 라오스 항공작전으로 시작된다. 추가로 1965년 1월 13일 가데나 기지 소속의 18전투비행단 기체 16대가 코라트 기지에 파견되어 라오스 항공작전이 확대된다. 작전은 라오스 중부에서 남부지역까지 이어졌으며 주로 호치민 보급로를 타격하는 것이었다. 북베트남에 대한 공습작전은 <롤링 선더>로 알려진 공습으로 항만, 비행장, 하노이 주변 군사시설을 집중적으로 타격하는 것이었다. 공습작전은 1965년 3월 2일 탄약집결소를 F-100 전폭기, B-57 경폭격기와 함께 실시했으며 F-105 전폭기는 44대가 동원되어 이중 3대가 대공화기에 희생된다.


1968년 11월 1일 롤링선더 공습작전이 중단되었는데 F-105 선더치프 전폭기의 손실은 컸다. 1965년 68대, 1966년 126대, 1967년 113대, 1968년 45대로 소총, 기관총, 57/85mm 레이더 조준 대공포, SA-2 지대공 미사일, MiG-17/21 전투기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화기와 전투기에 의해 격추되었다. 특히 롤링선더 공습작전 초기인 1965년 4월 4일의 피격은 충격을 안겨주었는데 음속 2배의 전폭기가 아음속 전투기에 격추된 사례로 잘 알려졌다. 공습은 탄호아 철교를 파괴하는 작전으로 48대의 F-105D 선더치프 전폭기가 동원되었는데 북베트남 공군의 MiG-17 전투기 4대에 의해서 2대의 F-105D가 허무하게 격추된 일이었다.


 

1966년 베트남에 배치된 F-105D 선더치프 주날개 끝단 아래에 M117 자유낙하폭탄이 장착되어 있다.
 <출처: 한국네티즌본부> 
1966년 베트남에 배치된 F-105D 선더치프 주날개 끝단 아래에 M117 자유낙하폭탄이 장착되어 있다. <출처: 미공군>

이후 EC-121D 조기경보기 5대가 투입되고 해군의 레이더 감시 구축함을 통킹만에 투입하는 방법으로 기습에 대비하게 된다. 그러나 북베트남군은 구소련으로부터 긴급 인수한 SA-2 지대공 미사일을 사용하여 1965년 9월 30일 F-105D 선더치프 전폭기 1대를 격추한다. 1966년 5월말 대공미사일 대응책으로 기존 F-105를 개조한 EF-105F 와일드 위즐 방공망 제압기 5대를 투입하였으나 손실은 줄일 수 없었다. 오히려 격추되는 상황이 연속으로 일어났다. 그만큼 북베트남군의 방공망은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1969년 중반에 와서야 최종 개량형인 F-105G가 투입되면서 와일드 위즐 방공망 제압기의 진가를 조금씩 나타내기 시작했다. 공대지 미사일을 AGM-45 슈라익에서 AGM-78 스탠다드 미사일로 교체하고 신형 ECM 포드를 장착하면서 가능해졌다.


 

F-105B 선더치프 전폭기 조종석 칵핏의 각종 항법 및 폭격용의 전자장비들을 분리해서 전시한 모습이다.
 <출처: 한국네티즌본부>
F-105B 선더치프 전폭기 조종석 칵핏의 각종 항법 및 폭격용의 전자장비들을 분리해서 전시한 모습이다. <출처: 미공군>

공중전 성능의 한계


F-105D/F 선더치프의 공중전 실력은 MiG-17 전투기에 대한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서 적극적인 근접전에 뛰어들어 27.5 : 9 라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반대로 MiG-21 피쉬베드 초음속 전투기에 14대가 격추되어 0 : 14 참패로 인해 1970년부터 F-4 팬텀으로 교체할 수 밖에 없었다. 살아남은 기체들은 패잔병들처럼 쓸쓸하게 미본토로 귀국하여 주방위군에 재배치되고 1984년 2월까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자리를 지켰다.


결과적으로 맥나마라 국방장관의 선견지명 있는 판단은 F-105 대량 양산을 취소했고 대신 F-4 팬텀으로 대체하여 1970년대 미군 항공전력을 지탱하고 미공군은 F-15/16 체제로 순차적으로 옮겨 갈 수 있었다. 베트남전 후반인 1970년 중반에 미공군은 F-4C/D/E 팬텀 전폭기를 주력으로 사용하고 F-105G 와일드 위즐 방공망 제압기 15대만을 호치민 보급로 폭격에 내보내고 있었다. 1972년 2월에 3대의 F-105G 와일드 위즐기가 SA-2 미사일에 격추되는 등 피해는 여전했다.


1972년 11월 16일 실시된 B-52 폭격기 공습을 지원하던 F-105G 1대가 SA-2 미사일에 격추되는 것을 끝으로 더 이상의 피해는 일어나지 않았다. F-105G 선더치프 와일드 위즐 전폭기의 마지막 실전 임무는 1972년 12월 8일-29일 사이의 라인배커 II 북폭작전으로 전투손실은 일어나지 않았다. F-105 선더치프 전폭기는 1964년부터 1972년 사이의 베트남전에서 398대라는 기체를 잃어버리는데 전체 생산대수 833대를 고려하면 50%의 손실이다. 398대에서 SA-2 지대공 미사일에 당한 것은 31대이며 MiG 전투기에 격추된 기체는 23대 이다. 대부분의 피격추 원인은 대공포 였으며 280대가 희생된 것으로 알려진다. 나머지 60대는 운용중 기체결함이나 착륙사고 등으로 잃어버린 기체들이다.


엔진 : J75-P-19W / 최대추력 2만6천500파운드 / 전장 64.4피트 / 전폭 34.9피트 / 이륙중량 5만2천838파운드 / 최대속도 음속 2배 / 최대 상승고도 4만8천500피트 / 최대 항속거리(편도) 1,917nm / 무장 M61A1 20mm 기관포 1문, 폭탄 탑재량 최대 6.4톤.

안승범
1990년 군사전문지 <월간 평화>의 편집부 일원으로 시작하여 1998년 월간 컴뱃암즈지와 통합한 군사정보사 편집장으로, 2002년 2월까지 밀리터리 월드와 해군전력을 발간했습니다. 이후 월간 디펜스타임즈지의 발행인 겸 편집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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