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강서구 미즈메디병원에서 러시아에서 온 불임 환자 율리아(27)씨가 의사와 함께 태아 초음파 사진을 보며 기뻐하고 있다. 율리아씨는 불임 3년 만에 시험관 아기 시술을 시도해 임신에 성공했다. /허영한 기자 |
['불임치료 强國' 한국 찾는 해외 부부 올해 3000쌍 넘을 듯]
강서구 미즈메디병원 불임센터, 지난달만 러시아서 220명 찾아
히잡 두른 여성들 줄지어 방문… 강남 차병원 부근 호텔들 特需
제일병원 성공률 40~50% 입소문 퍼지며 해외 고객 폭증
"건보 적용 안돼 수익성 높아… 과감한 투자로 최고 경쟁력"
중동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온 여성 이만 알 아리(38)씨는 지난 7월 말 꿈에 그리던 아기를 뱃속에 품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결혼 7년차지만 아기가 생기지 않는 불임 여성이었다. 그동안 태국의 유명 병원, 벨기에 산부인과를 찾아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 올봄 마지막 시도라 생각하고 남편과 함께 서울의 강남차병원을 찾았다.
출산을 장려하는 UAE 정부는 해외 불임 시술 비용은 물론 부부 체류비를 최대 20주까지 지급한다. 차병원은 1차로 아리씨의 난자를 채취했고, 남편의 정자를 뽑아 체외 수정을 했다. 이를 배아로 키워 자궁에 이식해 첫 번째 시도에서 바로 성공시켰다. 이후 아랍 전통 의상 히잡을 두른 불임 여성들이 줄지어 이곳을 찾고 있다. 현재 병원 인근 호텔에는 4쌍의 중동 부부가 머물며 시험관 아기 시술을 기다리고 있다.
해외에서 시험관 아기 시술받으러 한국 찾은 여성 인원 그래프 |
강서구 내발산동 미즈메디병원 불임센터에는 노란 머리, 파란 눈의 여성이 수두룩하다. 모두 러시아에서 온 불임 여성들이다. 블라디보스토크나 하바롭스크 등 극동 러시아뿐만 아니라 멀리 모스크바에서도 온다. 지난달에만 러시아 여성 220명이 몰려와 진료실에는 매일 러시아 말이 끊이지 않았다.
12일 외래를 찾은 조르카니 엘레나(44)씨는 재혼 후 15년째 불임이었다가 이곳에서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고 현재 임신 4주째다. 엘레나씨는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23세 딸도 현재 임신 중인데, 내가 이 나이에 임신한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많은 러시아 불임 여성이 한국에 가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은 러시아 환자가 늘자 러시아어와 한국어를 하는 진료 코디네이터를 5명 채용했다. 외래 환자들이 이용하는 식당에는 러시아어 메뉴판이 있고, 양고기 요리 '샤슬릭', 양배추 고기 쌈 '갈룹쯔이' 등 7가지 러시아 식단을 제공하고 있다. 불임 시술로 머무는 20여일 동안 휴대폰을 임대해주기도 한다.
시험관 아기 한류 열풍은 최근 1~2년 사이 폭발적으로 일어난 현상이다. 아기가 없던 불임 부부가 한국에 와서 임신에 성공한 사례가 현지에서 입소문으로 급속히 알려지면서 생긴 결과다.
보건산업진흥원 집계에 따르면 불임 치료로 한국을 찾은 여성은 2010년 1173명에서 2012년 2505명으로 늘었다. 2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국적도 러시아 911명, 미국 419명, 몽골 404명 등 다양하다. 미즈메디병원을 찾은 사람은 2011년 250명이었다가 올해는 8월까지 벌써 1420명이나 왔다. 연말에는 20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곳은 95% 이상이 러시아 여성이다. 차병원도 지난해 외국인 불임 환자가 1000명이 넘었다. 불임센터 외래 환자 절반이 외국인으로 채워질 때도 있다. 산부인과 전문 병원인 제일병원에도 해외 불임 여성에게 인기가 높다. 통상 일차 불임 시술 성공률은 40~50%이다. 올해 환자 유치 추세와 시험관 아기 시술 쌍둥이 탄생 비율이 20~30%인 것을 감안하면 올해 최소 3000명의 'Made in Korea' 아기가 잉태돼 본국으로 돌아갈 전망이다.
지난 1985년 우리나라 최초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킨 전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문신용 교수는 "미성숙된 난자나 정자를 임신이 가능한 상태로 배양하거나 난자·수정란 냉동 기술, 양질의 배아만 골라 자궁에 이식하는 기술 등은 우리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1980~ 1990년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생식 신기술 분야에 우수한 의료진이 대거 몰렸고,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수익성이 좋은 덕분에 과감한 투자가 이뤄져 우리나라가 불임 시술 강국이 됐다"고 말했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