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전기의 대명사였던, EA-6B 프라울러(Prowler). |
처음 비행기의 추적에 사용된 레이더는 갈수록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면서 당연히 그 위상도 커졌다. 특히 레이더와 연동 된 미사일을 이용한 새로운 방공 수단이 속속 등장하자 공격자 입장에서는 레이더를 중심으로 하는 상대의 방공망을 얼마나 빨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키냐에 따라 이후 작전의 성패가 갈리게 되었다. 도전과 응전이라는 말처럼 레이더의 존재는 당연히 이를 대처하는 방법을 연구하도록 만들었다.
레이더에 포착 된 정보를 오인시키는 기만책이 먼저 등장하였는데 제2차대전 당시에 고안되어 지금도 많이 사용 중인 채프(Chaff)가 대표적이다. 더불어 사각인 저공으로 비행하는 방법도 이용되었는데 고고도에서 보다 넓은 지역을 감시할 수 있는 조기경보기가 등장하면서 더 이상 안전한 침투 수단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이처럼 레이더의 기능 향상으로 기만책의 효과가 떨어지자 레이더의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레이더는 기본적으로 전파를 이용한 탐지 기구이므로 강력한 방해 전파를 이용하여 오작동 되도록 만들어버릴 수 있다. 이를 이용한 방해 작전을 흔히 전자전(Electronic Warfare)이라 하는데, 넓은 의미로 전자전은 전자기기를 이용한 모든 형태의 교전, 비교전 행위를 포괄하므로 그 범위가 상당히 넓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교신 내용을 감청하여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첩보 행위도 여기에 포함된다.
의미를 좀 더 좁혀 본다면 전자전은 대체적으로 앞서 언급한 것처럼 레이더의 작동을 거부시키는 전자교란(Electronic Jamming)을 뜻한다. 한마디로 상대의 눈을 멀게 만드는 행위를 말하는데 이런 목적에 투입될 여러 종류의 장비가 레이더의 발달과 더불어 속속 등장하였다. 그 중에서도 전자전기는 현대전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미군이 오랫동안 운용하고 있는 EA-6B 프라울러(Prowler)는 전자전기의 대명사라 할만한 걸작이다.
항공모함에 주기된 EA-6B |
진화하는 레이더레이더가 전쟁사에서 가장 멋지게 그리고 극적으로 활약하였던 시기는 1940년 하반기에 있었던 영국본토 항공전이었다. 육군이 강한 독일이 영국을 침공하려면 일단 바다를 건너야 했는데 비록 좁은 해협이지만 최강의 영국 해군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어 쉽지 않았다. 결국 공군이 나서 사전 정지를 한 후 상륙전을 감행하기로 하였는데 당시 독일 공군은 세계 최강으로 평가되는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전력에서 독일은 영국을 압도하였지만 약 넉 달간 벌어진 치열한 항공전에서 승리한 쪽은 영국이었다. 영국은 레이더로 독일의 내습을 경계하고 있다가 반드시 필요할 때 필요한 곳으로 전투기를 출격시켜 효과적으로 요격 작전을 펼쳤다. 덕분에 수적 열세였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공격을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레이더는 단지 하나의 탐지 장비였을 뿐이었다.
이후 6.25전쟁 당시에 미국은 워낙 압도적 전력으로 제공권을 장악하였기 때문에 공산군의 방공망을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았다. 냉전시기에는 레이더 포착 여부와 상관없이 고공 정찰기 등을 이용하여 소련을 비롯한 적성국 영토 위를 유유자적하게 날아다니며 사진을 찍었을 정도였다. 그렇게 방심하고 있던 미국에게 레이더를 주축으로 하는 새로운 방공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시기가 마침내 도래하였다.
미국이 처음 월남전에 뛰어들었을 때 월맹을 쉽게 격파할 것으로 누구나 다 예상하였다. 그런데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미국은 당황하였다. 특히 무소불위라 자타가 공인하던 미국의 항공 전력이 예상외로 고전을 겪었다. 교전을 일부 제한시킨 정치권의 어이없는 간섭을 비롯하여 여러 요인 때문에 그런 것이었지만 그 중 다층적으로 구축된 월맹의 방공망은 너무 커다란 위협이었다.
SA-2 대공미사일의 발사 장면. <출처 (cc) Petrică Mihalache> |
창과 방패월맹은 전통적 방공 수단인 전투기와 대공포 외에 소련으로부터 SA-2 지대공미사일을 대량 공급받아 미군기를 효과적으로 요격하였다. 월맹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미군기들은 비행 경로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지키고 있던 다양한 저지 수단에 상당한 곤혹을 치렀다. 결국 이를 회피하던지 아니면 격파하여야 했는데 어느 방법을 선택하더라도 일단 레이더망을 마비시킬 효과적인 전자전이 우선되어야 했다.
다급한 미국은 레이더 경보 수신기(Radar Warning Receiver)와 전자 방해기(Electronic Counter Measure)등의 각종 장비를 탑재한 EB-66나 EA-3B 등의 다양한 전자전기를 제작하여 전선에 투입하였다. 당시 기술 수준으로 장비와 콘솔을 작게 만드는데 한계가 있었고 조작을 위해 여러 명의 요원들이 탑승하여야 했으므로 동체가 큰 기존의 폭격기나 공격기를 전자전기 플랫폼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작전기들과 보조를 맞춰 행동하기가 어려웠다. 방공망제압(SEAD)처럼 개전 초에 민첩하게 작전을 펼칠 때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고 결국 임무에 특화된 뛰어난 별도의 전자전기가 절실히 요구되었다. 1960년대 초 미 해병대는 기존에 사용하던 EF-10B을 대체하기 위해 대량 무장이 가능한 기존 2인승 A-6 공격기를 기반으로 새로운 전자전기인 EA-6A을 제작하여 월남전에서 운용하였다.
EA-6A. 1명이 조종, 1명이 전자전을 전담하여 업무가 과중했다. |
EA-6B. 한 줄에 두 명 씩 총 4명의 승무원이 탑승하며, 1명이 조종, 3명이 전자전을 담당한다. | |
기존 전자전기들에 비해 작전 능력이 좋은 것으로 평가되었지만 오퍼레이터 한 명으로 임무를 원활히 수행하기에는 부담이 많았다. 제작사인 그루먼(Grumann)은 A-6의 동체를 1.37미터 늘려 복수의 요원이 탑승하여 다양한 전자전을 펼칠 수 있는 새로운 기종을 제안하였고 EA-6A에서 뭔가 부족함을 느껴 도입을 망설이던 미 해군이 이를 전격 채택하였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만들어진 EA-6B는 1968년 5월 25일 초도 비행에 성공하였다.
적의 눈을 멀게 한다EA-6B는 기체 개발과 동시에 ALQ-99 전술전자방해시스템, UHF 통신전파 방해기, 다중대역 자체 방어 장비, 전술지휘 및 통제 장비처럼 기체 구조에 가장 최적화 된 새로운 장비들도 함께 개발하여 장착한 진정한 전자전기였다. 거기에다가 단지 상대편 레이더 교란 활동만 벌이던 이전 기종들과 달리 공대지 대레이더 미사일 AGM-88 HARM을 장착하여 직접 방공망을 공격하여 제압하는 임무도 수행할 수 있었다.
EA-6B는 전술전자방해시스템인 ALQ-99 포드를 5개까지 장착할 수 있다. |
공대지 대레이더 미사일 AGM-88 HARM을 사용할 수 있어 즉시 방공망제압을 할 수 있다. | |
각종 실험에서 만족한 성과를 보인 EA-6B는 양산이 결정되었고 1971년부터 본격 도입되었다. 이후 EA-6B는 미국이 개입한 전쟁이나 분쟁에 예외 없이 등장하여 활약하였다. 대개 개전 첫날 출격하여 적의 레이더와 통신 장비를 교란시켜 아군 공격 비행대가 원활히 작전을 펼칠 수 있도록 사전 정지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한마디로 상대방의 눈과 귀를 동시에 멀게 만들어 버리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세계 최강의 항공력을 보유하였지만 미군은 상대가 아무리 약하더라도 무조건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기습의 효과를 최대한 노려 작전을 개시한다. 상대를 공격하는 행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대를 기만하여 기습을 가할 때 방공망을 초전에 제압하였다면 절반은 이긴 싸움이라 봐도 무방하다. 당연히 EA-6B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작전기라 정의해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티 나지 않은 역할
항공모함 CVN-68 니미츠에서 이함 준비 중인 EA-6B |
하지만 EA-6B의 전과는 구체적으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데, 그 이유는 전자전기 자체가 최고의 비밀 무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탑재된 각종 전자전 장비와 센서는 미국이 대외 노출을 꺼릴 만큼 중요하게 취급하는 기술의 집약체다. 당연히 대외 판매를 금하고 있는데 후속기인 EA-18G가 미국의 1급 동맹국인 호주에 판매되었지만 이 또한 일부 기능이 제한된 다운그레이드형으로 추측될 정도다.
따라서 전자전기들이 실전에 수없이 투입된 것은 맞지만 전과는 단지 추측만 있을 뿐이다. 다만 EA-6B의 성능이 탁월하였다는 것은 1998년 미 공군이 EF-111을 퇴역시키고 후계기로 라이벌인 해군의 기종을 운용하였다는 사실로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지속적으로 개량을 하며 수명을 연장하여 왔지만 EA-6B도 지난 2009년부터 더 좋은 장비를 장착하고 보다 적은 인원으로 운용할 수 있는 EA-18G에 의해 서서히 교체되고 있다.
사실 외형만 놓고 본다면 EA-6B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특히 날렵한 모습을 자랑하는 전투기와 비교한다면 관심이 덜 가는 조연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앞장서서 적진에 침투한다는 그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듯이 진정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숨어 있는 주인공 같은 존재다. 겉으로 티 나지 않게 묵묵히 중요한 역할만 담당한 가장 대표적 군용기가 바로 EA-6B가 아닌가 생각된다.
착함 중인 EA-6B. 해군, 해병대는 물론 EF-111을 퇴역시킨 미 공군도 사용 중이다. |
제원 전장: 17.7m / 전폭: 15.9m / 전고: 4.9m / 최대이륙중량: 27,900kg / 최고속도: 1,050km/h / 항속거리: 3,861km / 실용상승한도: 12,900m / 무장: AGM-88 HARM 4발, ALQ-99 TJS 포드 5조 / 항전장비 : ALQ-218 OBS, USQ-113 통신재머, APR-42 EAM, APR-27 RHAW
글 / 남도현[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자료제공 / 유용원의 군사세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