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브 J35 드라켄 <출처: (cc) Tom Wigley(amphalon at flickr.com)> |
전투기 역사를 살펴보면 스웨덴은 상당히 특이한 경우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아르헨티나, 이집트 같은 국가들도 전투기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갈수록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고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치솟다 보니 자력 개발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새롭게 대두되기 시작한 중국 정도를 제외한다면 EADS처럼 다국적 참여가 이제는 대세가 되었다. 그런 시류에서도 스웨덴은 꾸준히 전투기를 개발하여 운용하고 있다.
자력으로 전투기를 만드는 나라, 스웨덴현재 카피나 라이선스 생산이 아닌 자력으로 전투기를 설계, 개발, 제작하여 자국의 하늘을 지키고 있는 나라가 지구상에서 미국, 러시아, 프랑스 그리고 스웨덴뿐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는 가히 경이롭다고도 할 수 있다. 더구나 외교적으로 주변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립국이고 인구가 불과 천만도 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스웨덴의 이런 행보를 쉽게 이해하기는 힘들다. 현재 주력으로 사용 중인 다목적 전투기인 JAS39 그리펜(Gripen)은 수출이나 해외 대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을 만큼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특히 최신형인 그리펜NG(Gripen-E/F)는 4세대 전투기를 초월한, 이른바 4.5세대로 평가 받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스웨덴이 어느 날 갑자기 이러한 최신예기를 등장시킨 것은 아니다. 많이들 간과하지만 스웨덴은 전투기의 역사를 선도한 국가 중 하나로 그만큼 기술적 기반이 탄탄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제트 시대가 개막되었을 때부터 이미 후퇴익 제트 전투기인 J29 터난(Tunnan)과 J32 란센(Lansen)을 만들어 사용하였을 만큼, 스웨덴은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오히려 얼마 지나지 않아 초음속 전투기가 주역이 된 제2세대 전투기 시대에 스웨덴은 더욱 놀라운 걸작을 등장시켜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시대를 뛰어 넘는 모습의 초음속 델타익 전투기인 사브 J35 드라켄(Saab J35 Draken 이하 드라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활주로에 주기한 스웨덴 공군의 J35A. <출처: (cc) Towpilot at Wikimedia.org> |
후 에어쇼에 등장한 스웨덴 공군 소속의 J35 드라켄 <출처: (cc) Skogkatten at Wikimedia.org> | |
새로운 시대의 전투기무기사적, 특히 전투기를 비롯한 항공기의 개발 과정을 본다면 1950~60년대는 그야말로 최고의 황금기라 할 만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금은 여러 나라가 협력하여 전투기를 만들어야 할 만큼 상황이 바뀌었지만, 당시에는 개별 항공기 제작사가 스스로 개발비를 들여 전투기를 개발하는 일도 흔할 정도였다. 물론 당시에 요구된 기술 수준이 지금보다 낮아 진입 장벽이 높지 않았고 이런 시도를 쉽게 벌일 만큼 경제적 여건도 좋았다.
급상승 중인 드라켄 편대 <출처: SAAB> | | 하지만 무엇보다 냉전이라는 시대 상황이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사상 최대의 전쟁이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류는 강대국 간의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다음 전쟁을 억제하기 위한 투자나 소비를 용인하는 분위기였다. 이러한 시대상을 바탕으로 자고 일어나면 기존 전투기는 구식이 되어 있었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로 변화가 격심하였다..
그렇다 보니 F-86과 MiG-15의 전성기를 연지 불과 10년도 되지 않아 초음속 비행이 가능한 2세대 전투기 시대가 개막되었다. 초보적 공대공 미사일이 탑재되기는 했지만 사실 이때까지도 속도가 전투기 성능의 향방을 가르는 가장 큰 기준이었다.
미국이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인 F-100을 도입한지 6개월도 안되어 소련은 MiG-19로 응수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하2를 뛰어넘는 전투기들도 속속 등장하였다.
이러한 2세대 전투기들의 개발은 1940년대 말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스웨덴도 시대의 흐름에 뒤쳐지지 않는 신예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49년 FMV(스웨덴 국방성)의 주도로 ‘1200’으로 명명 된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새로운 전투기는 내습한 적기의 요격을 주목적으로 하여 고고도까지 신속히 치고 올라가 전투를 벌일 수 있어야 한다고 결론 내리고, 이에 발맞추어 자국의 유명 항공기 제작사인 사브(Saab)가 개발에 착수하였다. 드라켄을 상징하는 단어가 델타익(Delta Wing)이다. 사브는 연구 결과 군 당국의 요구에 걸맞는 마하2 이상의 고속 비행이 가능 하려면 델타익이 적합하다고 보았다.
델타익은 날개 전면이 더 많은 후퇴각을 가져 고속 비행이 가능하고 동체의 구조가 비교적 단순하여 제작과 유지보수가 용이하다. 하지만 저속에서의 안정성에 문제가 많고 기동 중 높은 받음각에서 항력이 커져 실속 발생 가능성이 크다는 단점도 있다. 이러한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사브는 완만한 S자형인 오지(Ogee)형 델타익을 채택하였다.
보통 '더블 델타(Double Delta)', 일부 자료에는 이를 ‘크랭크드 델타(Cranked Delta)’라고도 하는 형태인데, 드라켄은 주익이 공기흡입구에서 80도 정도의 날렵한 후퇴각을 가지다가 외익에서 60도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형태를 채택하였다. 여기에 더해 뒷전플랩을 연장시켜 저속비행 시 안정성을 높였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이런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드라켄은 이른바 ‘코브라 기동’을 최초로 선보인 제트기이기도 하다. 흔히 ‘코브라 기동’을 Su-27 시리즈를 상징하는 대명사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지만 Su-27이 최초는 아니었다.
드라켄은 비록 장시간 정지 할 수는 없었지만 뒤에서 공격하는 적기를 코브라 기동으로 패스 오버시킬 수 있었다. 50년대 기술임을 고려한다면 대단한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최신예 전투기를 제작하려면 당연히 국가적으로도 뒷받침이 필요하지만 사실 기술력이 가장 중요하다.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기술이 없으면 고성능 전투기의 개발은 힘들다.
최신예 기술은 국가 간 이동이 어려운 품목인데, 특히 무기와 관련된 기술은 더욱 그러하다. 그만큼 스웨덴은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렇게 축적된 노하우는 지금도 최고 성능의 전투기를 자체 제작할 수 있는 밑받침이 되었다.
덕분에 드라켄은 시대를 초월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획기적인 모양으로 탄생하였다. 목업(mockup)을 접한 군당국자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전투기 모양에 당황해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다.
드라켄은 단지 실험으로만 끝나지 않고 당당히 제식화 된 혁신적인 델타익 전투기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길을 개척하였다는 의미이자 이후 등장한 델타익 전투기들의 선구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그 자체만으로도 평가를 받을 만하다.
핀란드 키틸라 기지에 전시 중인 드라켄. 총 50기를 운용하였다. <출처 (cc) Allesmüller at Wikimedia.org> |
덴마크 공군의 드라켄. 총 35기를 도입하여 1999년까지 사용하였다. | |
북유럽을 지키다이런 노력 끝에 1955년 양산 실험 1호기가 최초 비행에 성공하였고 이후 각종 실험과 개량 끝에 1960년 3월부터 스웨덴 공군에 본격 공급되기 시작하여 기존에 방공용 전투기로 사용하던 J29를 급속히 대체하였다. 이로써 드라켄은 미국의 F-104, 소련의 MiG-21, 프랑스의 미라주(Mirage)III와 거의 동시에 마하2 시대를 개막한 주역이 되었다. 자신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스웨덴의 강력한 의지에 따른 결과였다. 드라켄은 애초 개발 목표대로 당대 최고 수준의 상승력을 보유하였다. 더불어 스웨덴 전투기의 전통적 특징인 단거리에서 이착륙이 가능하고 정비도 쉬웠다.
착륙하여 재급유와 무장을 마치고 다시 전투 위치까지 솟아오르는데 불과 10분 내외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덕분에 비상시에는 일반 도로에서도 운용이 가능할 정도인데 그 만큼 드라켄은 가동률이 높은 실용적인 전투기였다. 이후 지속적인 개량을 거친 드라켄은 정찰, 대지 공격 등에 투입할 수 있는 다양한 파생 형을 등장시켰다.
이처럼 하나의 플랫폼으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개량이 가능한 방식은 이후 후속기인 JA37 비겐(Viggen), JAS39 그리펜에서도 적용되었다. 이러한 매력적인 드라켄은 동서냉전시기에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 편을 노골적으로 들기 힘들었던 나라들에게 좋은 대안이 되었다. 스웨덴과 국경을 접한 덴마크와 핀란드에게도 공급되어 북유럽의 맹주로써 그 역할을 다하였다. 더불어 2차대전 후 중립을 조건으로 연합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오스트리아의 하늘도 지켰다.
이처럼 다양한 여러 형태로 모두 644기가 생산되어 여러 나라에 공급된 드라켄은 1974년까지 생산이 이루어져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현재 드라켄은 J35D 기종을 운용하였던 오스트리아에서 2005년 퇴역하면서 현역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오스트리아 툴린에 전시 된 드라켄. 오스트리아는 총 24기를 도입하여 2005년까지 운용한 마지막 드라켄 사용국이다. <출처: (cc) Hannes Sallmutter> |
특별 도장을 하고 기념 비행중인 오스트리아 공군의 드라켄. 특징적인 오지형 델타익 구조를 볼 수 있다. <출처: (cc) HoHun at de.wikipedia. org> | |
힘이 있어야 지킬 수 있는 평화단지 처음 언급한 것처럼 국력이나 여건만 놓고 본다면 스웨덴의 고성능 전투기 개발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1810년 나폴레옹 전쟁 이후 전쟁에 휘말려 들어간 적이 없었고 유럽 전체가 전쟁의 불길 속에 말려 들은 2차대전 당시에도 중립을 유지할 수 있었을 만큼 안보에 크게 문제가 없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구가 적고 주변에 적이 없다는 것은 현재의 관점에서나 보았을 때나 그러하다.
오랜 기간 평화를 지키고 중립을 유지할 수 있으려면 당연히 그에 못지않은 힘이 필요하다. 사실 중립은 누구 편에도 들지 않는다는 뜻이지, 침략을 받았을 때 모두가 달려와 나를 도와준다는 의미는 아니다. 스스로 지킬 힘이 없이 말로만 외치는 중립이 공염불이 되었던 경우는 흔하였다. ‘대가 없이 평화는 없다’는 말처럼 스웨덴은 자신들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다.
단지 중립국이고 평화스러운 표면적인 모습만 보아왔던 외부인들만 그러한 스웨덴의 평화가 당연한 것으로 막연히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최첨단의 무기라 할 수 있는 당대 최고 성능의 전투기를 개발하여 스스로의 하늘을 지켜왔다. 어쩌면 중립국의 전투기였기 때문에 실전에 투입되었던 기록은 없지만 성능으로 당대를 선도하였던 드라켄은 여러 의미를 함축한 기념비적 전투기라 할 것이다.
제원 전장 13.35m / 전폭 9.4m / 전고 3.89m / 최대이륙중량 16,000kg / 최대속도 마하2.0 / 항속거리 2,700km / 작전고도 18,000m / 무장 30mm ADEN 기관포 2문, 7개 하드포인트에 4,082kg 폭장
글 / 남도현[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자료제공 / 유용원의 군사세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