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은 왜 열리게 됐는가?
그 한마디로서 대답이 충분할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5일
한국에 있어서 5일마다 열리는 장날은 여러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장날이 5일마다
열리기 때문에 장터를 중심으로 하는 인근 주민들 간의 교류는 거의 5일마다 되풀이되는 셈이다. 전통적인 농경문화의 특징을 지녀왔던 한국 사회이었지만 5일장이 지니는 기능을 바탕으로 하여 사회적 컴뮤니케이션이 비교적 잘 이루어졌다고 보아도 그릇된 표현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속담에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간 격조했던 기간 중의 온갖 소식이 장날에 쏟아져 나와서 널리 확산되어가기
때문이다.5일장이 열리게 된 것은 여러 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주민들이 각종 생활 용품을 서로
교환하는 방법을 통하여 소비재 수요를 충족 받기 위해서였다. 지난날에는 물물교환 방식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화폐경제가 발달한 시대에 있어서도 금(金)을 본위로 하는 가치척도의 기준이 있었던 것처럼 옛 날에는 쌀과 보리가 그 척도의 기준이었다. 예를 들면 이 물건은 쌀 한 말 값이고 저 물건은 보리 서말 값이라는 식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이는 우리나라의 농업이 미맥중심(米麥中心)의 경작농업 이었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장이 열리는 곳은 지역마다 거의 정해져 있다. 어느 곳은 매월 1일을 기준으로 하여
1 5 10 15 20 25 30 일에 열리는가하면, 또 다른 장은 매월 2일을 기준으로하여
2 7 11 16 21 26 31 일에 열린다.
* 1년은 72후: 1후는 5일: 5일장은 1후1회씩 年間 72회 열림 거주지를 기준으로 하여 보았을 때 거리가 먼 곳도 있고 가까운 곳도 있다. 장 규모의 크기도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장에서 거래되는 물품의 종류도 장터의 위치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어떤 물품은 어느 장에 가야만 싸게 살 수 있고 또 쉽게 팔 수 있다는 장마다의
특성이 있다. 이러한 제 요인들이 장터 규모의 크기와 상황을 가름 하는 주요 변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 장날은 왜 5일을 기준으로 해서 열려야만 했었던가? 그 까닭을 알아보기로 한다.
오일장을 열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기후의 변화와 성숙한 농산물의 채취시기의 변화추세에
그 기준을 두었다는 데 있다. 1년은 봄 여름 가을 겨을의 사시(四時)로 구별된다. 춘 하 추 동은 다시 12개월로 나누어지며
12개월은 또 24절기로 구분된다. 즉 한 달은 15일 단위의 2개 절기로 구분되는 셈이다. 흔히들 절기(節氣)라는 것을 하나의 낱말처럼 인식하고 있지만 그것은 절(節)과 기(氣)를
합해서 일컫는 말이다.매월 1-15일까지를 절(節)이라 하고 16-30일까지를 기(氣)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전반 15일을 절(節)이라 하고 후반 15일을 기(氣)라고 한다. 그리고 5일간을 후(候)라고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3개의 후(候)로 이루어지는 전반의 15일간을
절후(節候)라하고 또한 3개의 후(候)로 이루어지는 후반 15일간을 기후(氣候)라고 각각 일컫는
그 까닭을 알 수 있다.따라서 1년 360일(태음력 기준)을 기준으로 하였을 때 1년이 72후로
구분된다(360÷ 5=72)는 것도 알게 된다.농촌마다 곡식과 채소와 과일류의 경작 비율은
서로 다를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경우 그 종류는 대단히 많다. 그 많은 종류의 농산물은 재배시기와 파종시기가 다르고 또한 그 결과의 수확시기도 각기 다르다. 서로 다르다는 그 기간 차이가 일반적인 경우 5일단위로 나타난다. 일례를 든다면 복사꽃이 피고 나면 약 5일 뒤에 살구꽃이 뒤이어서 피어난다. 그 뿐만 아니라
농가에서 파종하는 채소류의 경우를 보아도 그 파종시기가 다르고 결과시기가 다르며 수확시기가 또한 다르다. 그러한 까닭으로 인하여 농산물의 출하시기가 기간단위별로 달라지는 것이다. 1년을 72후로 구분한 까닭은 5일간만 기다리면 더 새롭고 더 맛있는 것이 생산된다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후(候)는 기다린다는 뜻이다. 다음의 화신풍(花信風)이 어떻게 이루어지난 가를 살펴보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화신이란 꽃 소식이라는 뜻이다. 즉 꽃 소식이 전해오는 풍토적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후풍토상 화신풍은 다음과 같다. 소한 기간(15일간)중에 매5일 단위로 매화(1후), 산채화(2후), 수선화(3후)가 차례로 피어난다. 대한 기간(15일간)중에 매5일 단위로 서향화(1후), 난초(2후), 산반화(3후)가 차례로 피어난다. 입춘 기간(15일간)주에 매5일 단위로 영춘화(1후), 벚꽃(2후), 망춘화(3후)가 차례로 피어난다. 우수 기간(15일간)중에 매5일 단위로 채화(1후), 살구꽃(2후)), 오야꽃(3후)가 차례로 피어난다. 경칩 기간(15일간)중에 매5일 단위로 복사꽃(1후), 체당화(2후), 장미꽃(3후)이 차례로 피어난다. 춘분 기간(15일간)중에 매5일 단위로 해당화(1후), 배꽃(2후), 목란화(3후)가 차례로 피어난다. 청명 기간(15일간)중에 오동나무꽃(1후), 맥화<麥花>(2후), 버드나무꽃(3후)이
차례로 피어난다.곡우 기간(15일간)중에 목단(1후), 도마꽃(2후), 동화<棟花> (3후)가 차례로 피어난다.
* 개화 기간을 소한으로부터 곡우까지 약 4개월(120일)로 보고 있는 바,
이는 통상적으로 말하는 꽃피는 봄철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부터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고 자연의 법칙에 따라서 살아왔다. 우리는 농업을 통하여 우주의 오묘한 섭리(攝理)의 순환적 작용이 어떻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농이라는 것을 가리켜 천하의 큰 근본(農者 天下之大本)이라 일컫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유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5일장은 그 장을 이용하는 주민들의 거주지를 중심으로 하여 보았을 때
그 거리는 도보(徒步)로 약 2-5시간에 해당하는 거리임을 알 수 있다. 보부상의 모습을 한 장꾼들은 장날이 되면 으레 새벽길을 재촉한다. 한국에 있어서
새벽이란 03:00시부터 05:00시경에 해당하는 인시(寅時)를 말한다.
계절에 따라서 해가 뜨는 시간이 다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05:00부터를 묘시(卯時)라 하여
이를 이른 아침(早朝)이라 하고 그 시간 이전을 새벽이라 한다. 새벽길을 재촉해야만 아침나절부터 모여드는 손님들에게 물건 팔기가 용이하고 물건을
빨리 처분해야 다음 장날에 팔기 위한 물건을 챙길 수 있는 여유를 지닐 수 있다. 그렇게 서둘어도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언제나 저물게 마련이다. 그것은 5일장 나들이 길이
가깝기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통수단이 발달되어있지 안 했던 옛 날에는 장날에는 거의 예외 없이 마을 사람들끼리
무리를 지어서 새벽길과 밤길을 함께 하며 5일간 묵었던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때문에 장날은 단순히 물물교환을 위한 시장적 의미만을 지니는 것은 아니었다. 생활권역을
함께 하는 주민들 간의 컴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해주는 기회로서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흔히들 말하는 사발공론은 마을 사랑방에서 형성되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사발공론이
보다 넓은 지역으로 확산되어 가는 유통경로는 말과 소문이 이어 달려가는 5일장 날을
계기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5일장 제도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만나는 시기적 의미를 지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사회 주민들로 하여금 공동체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그들을 한
고향사람으로 결속시켜준다는 의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이른바 재래시장이라 하여 그 규모의 영세함을 면하기 어렵게 되어있고 또한 거래품목의 빈약성과 유통물량의 소량이라는 이유 등으로 인하여 소멸되어 가는
성향마저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5일장이 지니는 지역 풍토적인 특성과 지역주민들의 정서적인 온상의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인식할 줄 아는 마음의 여유를 지닐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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