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

문경새재에서 안동하회 마을로 가다...12.5.25|

바래미나 2012. 6. 8. 13:46

문경새재에서 안동하회 마을로 가다...12.5.25|

문경새재에서

 

문경새재 제1관문 초입에 있는 옛길 박물관 전경

문경새재 초입에 건립된 선비의 상은 전통사회의 구심점인 지성과 인격을 상징한다 

  

문경새재 자연생태공원 돌다리에서 

 

 

 

제1관문앞 광장 한켠에 사극 촬영용 소품이 전시되어 있다

문의 정면엔 주흘문 그리고 뒷면엔 영남제1관 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다

 

역대 관찰사 등 공덕비

 

건강과 복을 받기위해 연못에 동전을 던지고 있어요^^*  

 

조령원터는 고려와 조선조 공용시설로 출장하는 관리들에 숙식의 편의를 제공한 곳

청운의 큰 꿈을 갖고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던~옛 과거길

유월의 녹음이 욱어진 길 따라 설레임을 낳고, 황토 마사길에서 고향의 옛길을 그린다.. 

나그네여~~명녕지수 찬물에 심신을 쉬어간들 어떠하리~ㅎ 

뭘 그리 찾고 계시나요?^^

와우~~행운의 네잎 크로버를 찾으셨네요!~축하합니다^^*

새재길 오르기 힘드신 노약자와 어린이를 위해 무료 전기차를 운영하고 있어요^^

제1관문 지나면 KBS 사극 촬영 세트장이 있다.

 

KBS 사극 닥터진을 촬영하고 오는 연기자들의 표정 또한 밝다.

전시에 용맹스런 용사들의 함성을 담은 듯.. 깃발이 성벽을 휘감고 있다..

 

역사의 뒤안길 걸으며 생의 허무함을 넘어, 남은 생에 보람찬 에너지를 충전하고 싶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그리며~ 즐거운 여름 맞이하세요^^ 정진호 배..

 

  

문경새재란 문경과 충주를 잇는 옛날 큰고갯길로 74년 지방기념물 제18호(도립공원) 지정.

옛날 영남지방과 서울을 잇는 큰 고개인 추풍령, 죽령, 조령...3개가 있었다.위치는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 경계지점에 위치하며 월악산국립공원 바로 밑에 있다.

문경새재(聞慶-)는 백두대간의 조령산 마루를 넘는 재이다. 조령산(1026m)은 충청북도

괴산군과 경상북도 문경시의 경계에 있는 산. 조령(鳥嶺)이라고도 하는데, 새도 날아 넘기

힘든 고개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으며,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사회 문화 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다. 임진왜란 뒤에

제1관문 주흘관, 제2관문 조곡관, 제3관문 조령관의 3관문(사적 제 147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문경새재 1관문 앞 새재할매집에서 중식>

 

40년 전통 고추장양념석쇠구이.. 맛자랑업소로 유명한 새재할매집

 볼거리에 먹거리를 충족하니~ㅎ 내 세상이야요~ㅋㅋㅋㅋ

한 때나마 동심으로 돌아가 노상에서 얼음 빙과를 맛나게 먹고있어요~ㅋㅋ

 

문경새재에서 안동 하회마을로 가다

 

하회마을(물돌이 마을)은 풍산류씨가 600여년 동성 마을이며, 초가(草家)와 와가(瓦家기와집)가 그대로 보존되고 하회

별신굿탈놀이가 전승되는 대한민국 대표적 유교 전통마을로 1984년 국가 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 되었고, 2010

년에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에 등재//조선중엽 대학자인 겸암 류운룡선생과 임란7년 전쟁을 치르신 서애 류성룡선

생을 배출한 역사적인 마을로 최근 (해군은 이지스함을 ‘류성룡’ 함 지정).서애 류성룡 선생은  영의정으로서 국난을

기롭게 극복하신 분이다. 안동 하회마을엔 문화재지정 가옥12호(일반115호)가 있으며 현지인은 쌀농사와 고추 수확이 주 수입원이다.이곳엔 교회와 사촬이 각 하나씩 있으며, 징비록과 하회탈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안동 하회탈 박물관 / 매주 2차례 공연이 있다

 

매표소를 지나 하회마을 입구 관광안내소까지 셔틀버스 이용 (편도 500원)

 

안동 하회마을 배대홍 해설사가 하회마을 형성에 대하여 해설하고 있다

서당의 학동인양 진지한 모습

 

 

삼신당 신목 / 수령이 600년된 보호수에서 정월 대보름 제를 올리고, 하회별신굿이 열린다

마음으로나마 건강과 안녕을 빌고 있는듯~ㅎ

 

양진당은 15세기경 지은 곳이며 풍산 류씨 대종택으로 보물 306호이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방문한 기념으로 심은 구상나무.

서애 류성룡 선생의 종택인 충효당에서(보물 제414호)

 

 

수줍음을 감춘 양반댁 규수들이여~도령님을 기다리시나~ㅋ

입암고택앞에서(입암고택은 겸암과 서애선생의 부친인 입암 류중영의 호에서 따온 것) 

연예인 류시원의 집으로 수리중이다. 이곳 마당에서 영국여왕에 대한 접대식이 있었다.

.

하회마을을 배경으로..

부용대를 배경으로..

 

부용대의 깍아지른 기암절벽과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강물이 한 폭의 그림으로 펼쳐진다

선남선녀들이 천상의 길을 걸으니 이 또한 낙원이 아닐까^^*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에게 선 보인 우리의 전통 음식상..

 

하회마을 내 오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며,더위도 식히고 다음은 병산서원으로 

 

  **징비록**

임진왜란때 영의정으로서 도체찰사를 겸임하였던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1542∼1607)선생이 임진왜란때의 상황을 벼슬을 떠나 귀향한 후에 기록한 것으로, 저자는 임진란의 쓰라린 체험을 거울삼아 다시는 그러한 수난을 겪지 않도록

후세를 경계한다는 민족적 숙원에서 책명을「징비록(懲毖錄)」으로 하였다.

    **하회탈**

우리 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탈로서 지금은 각시,중,양반,선비, 초랭이,이매,부네,백정,할미 9개의 탈들만 전해지며, 3개의 탈이 분실되었다.

잃어버린 탈(총각탈, 떡다리탈, 별채탈)을 저명한 조각가와 화가 및 미술사 관련 전문가들로 하여금 복원을 추진하기도 하였으나, 운보 김기창 화백과 그 일행이 하회탈을 면밀히 감상해 보고서 하회탈의 오묘한 이치와 조형적 탁월성에 놀라 자기들로서는 복원이 불가능하다.라고 하였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하회탈의 작가는 허도령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허도령에게는 사랑하는 처녀가 있었는데, 허도령이 신의 계시를 받고 탈의 조각을 위하여 홀로 외딴 집으로 가기 전에 탈을 완성하기까지는 절대로 찾아오지 말고 기다려달라!고 말하였으나, 오래 기다리던 처녀가 사모하는 정을 가누지 못하고 허도령이 혼자 있는 집을 찾아가서 차마 문을 열지는 못하고 문구멍을 뚫어서 안을 들어다 보는 중 허도령은 이를 보자 부정을 타서 죽었다고 한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신의 계시란 강렬한 예술적 영감을 의미하며 부정을 타서 죽었다.란 심혈을 다하여 작업 중에 있던 허도령이 영감이 흩어지게 되자 쇼크에 의한 사망으로 생각되며, 이처럼 목숨바쳐 이룩한 작품이기에 오늘날 세계 제일의 가면으로 되어 있다.

 

양반탈은 위로 향하면 웃는 얼굴, 밑을 향하면 성낸 얼굴로 표정변화가 일어나도록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너털웃음을 웃을 때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성을 낼 때는 얼굴을 아래로 하는 인체공학을 연구하여 조각되어 있으므로 광대의 몸짓과 자연스럽게 일치되도록 한 점도 두드러진다.

 

각시탈은 한쪽 눈이 가늘다. 이는 각시 광대가 얼굴을 살짝 돌리면 상대에게 눈을 흘기는 교태(윙크)가 되도록 하였다. 다른 탈 들도 제각각의 특징을 고루 갖추고 있다

 

한국의 가면은 대개 바가지나 종이로 만들기 때문에 오래 보존된 예가 드물며, 그 해의 탈놀이가 끝난 후 태워버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하회탈은 재료가 오리나무로서 표면에 옻칠을 2겹 3겹으로 칠하여 정교한 색을 내었고, 격식과 세련됨을 갖추었으며, 부락에서는 별도로 동사(洞舍)를 세워서 가면들을 보존해 왔을 뿐만 아니라, 특히 각시 탈은 성황신을 대신한다고 믿어 별신굿을 할 때 외에는 볼 수 없었고, 부득이 꺼내볼 때는 반드시 제사를 지내야 하는 금기(禁忌)나 제약(制約)이 있었으므로 오늘날까지 전하여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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