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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그리고 푸치니의 생가가 있는 루카(Lucca)

바래미나 2012. 3. 8. 02:43

 가난한 사람들...그리고 푸치니의 생가가 있는 루카(Lucca)

 

 

고대 원형 경기장, 아레나 (Arena of Verona, Italy)

 

 

"벨라, 베로나! Bella Verona!, 아름다운 베로나"라고 일컬어지는

이태리 북부에 있는 작은 도시 베로나는 중세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기에

볼거리들이 많아서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관광 도시인데

그 중에서도 고대 원형 경기장 아레나는 베로나의 자랑입니다.

 

 

 

 

베로나의 아레나는 2만 여명이 들어가는 원형 경기장으로

세계에서 3번째로 크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매년 여름 약 3개월동안 오페라 페스티발이 열리고 있어서

여름이면 한 여름 밤의 오페라를 즐기러 세계 각지로부터

오페라 애호가들이 몰려 오는 도시입니다.

 

밀라노에 도착하여 일박을 하고 다음날 베로나에 도착하여

오페라 애호가인양 첫 날에는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를,

다음 날에는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헴>을 관람했습니다.

 

푸치니는 베르디 이후 이태리의 오페라의 정수를 보여준 작곡가로

베르디가 애국적이고 정치적인 오페라를 쓴 것에 비하여 푸치니는

부드럽고 감미로운 멜로디와 감동적이고 순수하며 아름다운 오페라를 작곡했습니다.

 

오페라 <라 보헴>은 프랑스의 소설가 앙리 뮈르제(Henry Murger)의 소설,

"보헤미안 기질의 생활"을 기초로 작곡한 것이지만 소설과는 다르게

시인 로돌포와 옷에 수를 놓는 직업의 미미를 주인공으로 삼았습니다.

 

파리의 라틴구(까르띠에 라땅)의 뒷골목,

허름한 아파트의 다락방에서 겨울이지만 벽난로에 불도 피우지 못하고

가구도 제대로 없는, 냉기만 가득한 어두운 방에서 살면서도

예술과 낭만과 사랑을 추구하며 스스로를 "보헤미안"이라고 불렀던 가난한 예술가들;

시인 로돌포(Rodolfo, 테너), 화가 마르첼로(Marcello, 바리톤),

음악가 쇼나르(Shaunard, 바리톤), 철학자 콜리네(Coline 베이스)와

허술한 다락방에서 수를 놓는 직업으로 하루 하루 살아가는 미미(Mimi, 소프라노)와

사치스럽고 허영스러운 뮤제타(Musetta, 소프라노),

이들을 중심으로한 삶의 애환을 그리고 있는데

"그대의 찬 손, Che gelida mania", 

"내 이름은 미미예요, Si, mi chiamano Mimi", 등

너무나 아름다운 아리아를 들려줍니다.

 

 

초연은 1896년 이태리의 고도(古都)인 토리노(Torino)의 레지오(Reggio) 극장에서

당시 장래가 촉방되던 젊은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가

지휘를 하여 대 성공을 거두고 오늘날까지도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입니다.

 

 

 

220px-Boheme-poster1[1].jpg

 

초연 당시의 오페라 <라 보헴>의 무대장치와 의상들,  소품들, 포스터 등이 위키페디아에 있어서 담아왔습니다.

 

 

 

 

그 전날 본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는 200명 이상이 동원된 코러스와

의상부터가 호화롭고 거대한 무대로 아레나를 가득채웠지만

<라 보헴>은 그러한 대형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기에는 무대를 채울 아무 것도 없이

벽난로, 탁자 하나, 의자 몇 개와 방을 겨우 밝히는 촛불 하나와

오직 가난한 예술가들이 부르는 노래가 거의 전부이지만

전 날 <나부코>에 나온 가수들보다는

훨씬 아름다운 목소리의 아리아들을 선사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카페 모뮈 앞의 광장, 크리스마스 이브의 떠들석한 분위기의 2막의 무대는

대형 무대에 걸맞게 어린이들의 코러스와 많은 인원이 동원되어

내가 본 <라 보헴> 중에서 가장 화려한 무대를 펼쳐보였는데

<나부코>는 사진을 찍는 것을 허용하는듯해서 사진을 마구 찍었는데

<라 보헴> 공연에서는 사진을 찍는 것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어서

2막의 화려한 무대를 찍지 못해서 무척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끝날 때 살짝 찍은 사진들...왼쪽은 미미가 죽는 마지막 장면이고

오른쪽은 오페라가 끝나고 인사하는 출연자들인데 의상이 현대적이네요.

 

 

 

로돌포와 미미의 애틋한 사랑도 막막하고 쓸쓸한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국 미미의 병이 깊어져 귀걸이를 저당 잡히는 뮤제타와

외투를 저당 잡히는 철학자 콜리네의 미미에 대한 사랑도 허사가 되어

미미는 죽고...

사랑했던 가련한 여인의 이름 "미미"를 부르는

로돌포의 애절한 외침이 아레나에 울려 퍼지면서 막이 내립니다.

 

 

이 장면을 쓰고 나서 책상에 그대로 엎드려 미미의 이름을 부르며

울었다는 푸치니...

빌라 푸치니에서 본 푸치니가 쓰던 책상이 눈에 아른합니다.

 

 

 

 

 

아레나 앞에는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기마병들이 말을 타고 서 있었고

아레나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활기차 보였습니다.

어떤 블로거님이 오페라를 보러 온 사람들의 복장이 어떠했느냐고 물었는데

여름 밤 야외공연이기 때문에 위에 보시는 바와 같이 대부분 일상복 차림이었습니다.

물론 정장을 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매번 오페라를 관람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몇몇 대표적인 아리아들과

내용만을 알기에 그 외의 다른 대사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리같은 외국인들에게는 사실 오페라 관람은 조금 괴로운 일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공연할 때는 그나마 자막으로 대사를 보여주기 때문에

자막을 읽으랴, 음악을 들으랴, 무대 장치를 구경하랴...눈과 귀가 바쁘지요.

 

 

그런데 그나마 오페라의 본 고장인 이태리에서 이태리의 오페라를 공연하는지라

그리고 야외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관객들이 온 세계에서 오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언어로 자막을 내 보낼 수 없어서인지,

자막도 없이 오페라를 공연하였습니다. 

하기사 오스트리아의 보덴 호수에서 오페라 <아이다>를 공연할 때는

독일어로 자막을 내보내고 있어서... 그 때도 자막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무튼 이태리 사람들은 자기네 나라 언어로 부르는 아리아와 대사들이니

얼마나 좋을까...  부럽다 못해 조금 화가날 정도였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온 관람객에 대한 배려를 조금이라도 해서

세계 공통 언어인 영어로라도 자막을 보내면 좋았을텐데...

 

그래도, 아레나에서 오페라를 관람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즐거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이태리 토스카나 지역의 루카(Lucca)는

이태리에서 가장 잘 간직된 성벽으로 둘러 싸인 도시인데

성벽에 들어서자 이 도시가 푸치니가 태어난 도시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엇습니다.  시내 곳곳에 푸치니 오페라 공연 광고가 있었고

시내 중심지의 미켈레 광장에는 푸치니의 동상이 있었고

동상 뒤 코너에 보이는 낡은 4층의 벽돌집은 푸치니의 생가로 태어나서

22세 때까지 이곳에서 지냈는데 지금은 푸치니의 기념관이고 골목을 돌아 나오니

어느 카페의 이름도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였습니다.

 

푸치니가 18세 때 이곳에서 피사(Pisa)까지 약 30km, 왕복 60km걸어가서

피사에서 공연하는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보고

오페라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루카에서는 푸치니 재단 주최로

국제 성악 콩쿠르가 매년 11월 26일부터 29일까지 열린다고 합니다.

 

푸치니가 30년을 살았던 마사치우콜리 호숫가 "빌라 푸치니"에 관한

포스팅은 http://blog.chosun.com/triocavatina/5944682

 

 

 

  

Opera <La Boheme>중에서 Aria "그대의 찬 손"  

미미가 잃어버린 열쇠를 찾아주면서

미미의 손을 잡은 로돌포(파바로티역)가 부릅니다.

 

"그대의 찬 손, 잠시 기다리면 달이 뜹니다. 

그 때가지 얘기나 하다가 가세요. 

나는 가난한 시인이랍니다.

가난하지만 가슴에는 항상 꿈이 담겨 있답니다.

당신의 눈동자는 꿈을 불러오는군요.

이제 들려주세요.  당신에 대한 얘기를..."  

 

  

이 노래를 듣고 미미가 "내 이름은 미미예요"라는

아리아(안젤라 게오르규)를 부르지요.

 

"제 이름은 미미예요. 

하지만 원래 이름은 루실(Lucile)이랍니다. 

수를 놓으면서 살아갑니다. 

 예쁜 백합이나 장미를 수놓은 것이 위안이지요. 

가슴에는 언제나 꽃들이 속삭여 주어서

파란 사랑의 꿈을 키워준답니다."

 

  

 

 

예술가들...가난한 예술가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역시 예술가들에게 따라 다니는

꼬리표는 "가난"이 아닌지...

어쩐지 "가난하다"는 것은 예술가들의 대명사인 것으로 여겨지는

선입견이 있어서인지 예술가들이 부유하다는 것은

그 순수성이 결여된 것으로 여겨지니...저의 잘못된 선입견이겠지요?

 

  

지난 여름 2주간의 이태리 여행은 뒤돌아 볼수록

저의 맨 처음 이태리 여행기의 제목처럼

겁도 없이 저지른 "무모한 탈출"이었지만

"화려한 외출"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