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6·25 자료들(1950·06·25)

우리나라의 가슴 아픈 역사인 6.25 전쟁

바래미나 2011. 7. 12. 00:47

우리나라의 가슴 아픈 역사인 6.25 전쟁.|

우리나라의 가슴 아픈 역사인 6.25 전쟁.
한국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6.25 전쟁은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가져왔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한국과 북한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3년 10개월 만인 1953년 7월 27일에 이르러 휴전협정을 하여, 현재까지 휴전상태는 이어져오게 됩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여러분들,
6.25 전쟁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6.25 전쟁의 아픔을 마음 속에 지워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아픈 과거는 마음 속에서 꺼내볼 때마다 마음을 아리게 하지만,
우리가 지금 있기까지, 이렇게 대한민국의 자녀로서 살아갈 수 있기까지는
6.25 전쟁 당시 우리를 위해 한 목숨 바쳐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분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픈 과거를 항상 마음 속에서 꺼내볼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점은 우리 마음 속에 6.25 전쟁의 아픔을 지워버려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것처럼,
이 땅에서 이루어진 전쟁과 전쟁으로 인해 희생하신 분들을 우리는 마음 속에 깊이 새기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부분이 한가지가 더 있습니다.
 
6.25 전쟁은 단지 북한과 남한에게만 기억되는 희생의 역사일까요?

아닙니다.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평화를 위해 이 땅엔 수많은 나라의 참전용사들이 왔습니다.
 
 

<6.25 전쟁 유엔참전국>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한국과 북한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3년 10개월 만인 1953년 7월 27일에 이르러 휴전협정을 하여, 현재까지 휴전상태는 이어져오게 됩니다.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한민국(남한) 정부는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 국무성에 사태의 긴급성을 알렸고, 미국은 유엔 안보리를 열어 한국 문제를 건의했습니다. 이에 따라 UN 안전보장이사회는 "북조선군의 즉각적인 전투 행위 중지와 38도선 이북으로의 철수"를 요청하는 미국의 제안을 9대 0으로 가결합니다.(유고슬라비아는 기권)


  이러한 결의를 북한 측에 통고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아 다시 안전 보장 이사회를 열어 "회원국들에게 군사 공격을 격퇴하고, 그 지역의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데 필요한 원조를 남한에 제공할 것"을 7대 1(기권2)로 결의했으며, 이 날 해리 S. 트루먼은 더글러스 맥아더에게 "남한에 대한 해,공군의 지원을 즉각 개시하라"고 명령하게 됩니다.


  결국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 프랑스, 콜롬비아, 터키 등 16개국의 회원국이 유엔군을 조직하여 한국전에 참전하게 됩니다.

  그럼 6.25 전쟁이 시작했을 떄의 상황을 살펴볼까요?

6.25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북한군은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으며 한달여만에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어붙이는 등 신속하게 전세를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서울과 원산, 평양까지 탈환하여 곧 통일을 눈앞에 두게 되었었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는 다시 역전되게 됩니다.  

  그리고 38도선을 뺏고 뺏기는 과정에서 미국과 유엔을 시작으로 휴전문제가 언급되었고, 1953년 7월 27일에 휴전협정이 서명되면서 3년 10개월에 걸친 승리 없는 전쟁이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렇게 6.25 전쟁에 있어 한국은 유엔군에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휴전협정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전쟁이 일어나고 3일 만에 서울이 점령되었을 정도로 당시 한국은 큰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유엔군이 한국에 와서 전쟁의 상황을 변화시켰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표-1 6·25 전쟁 당시 남북 군사력 비교>

구 분

부 대 / 병 력

주 요 장 비

남 한

북 한

남 한

북 한

지 상 군

*보병:8개 사단*해병:1개 부대*기타 지원부대등9만 6,140명

*보병:10개 사단*전차:1개 여단*기타 기계화부대,경비대,특수부대등19만 1,680명

*곡사포:91문*대전차포:140문*박격포:960문*장갑차:27대

*곡사포:552문*대전차포:550문*박격포:1,728문*장갑차:54대*전차:242대

해 군

6,956명

4,700명

*경비함:28척*기타함정: 5척

*경비함:30척*보조함:80척

공 군

1,897명

2,000명

*연습/연락기:22대

*전투기/전폭기/ 기타 : 211대

10만 5,752명

19만 8,380명

 

 

      출처: 군사편찬연구소 (http://www.imhc.mil.kr/imhcroot/data/korea_view.jsp?seq=4&page=1)



우리는 당시 유엔군으로서 한국에 오셨던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모국이 아닌 나라, 한국이라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평화를 위해 전쟁 통에 피를 흘리셨던 많은 분들을 우리는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표-2 유엔군 피해 현황>


구분

전사/사망

부상

실종

포로

총계

178,569

555,022

28,611

14,158

776,360

한국

137,899

450,742

24,495

8,343

621,479

미국

36,940

92,134

3,737

4,439

137,250

영국

1,078

2,674

179

977

4,908

오스트레일리아

339

1,216

3

26

1,584

네덜란드

120

645

-

3

768

캐나다

312

1,212

1

32

1,557

뉴질랜드

23

79

1

-

103

프랑스

262

1,008

7

12

1,289

필리핀

112

229

16

41

398

터키

741

2,068

163

244

3,216

태국

129

1,139

5

-

1,273

그리스

192

543

-

3

738

남아프리카 공화국

34

-

-

9

43

벨기에

99

336

4

1

440

룩셈부르크

2

13

-

-

15

콜롬비아

163

448

-

28

639

에티오피아

121

536

-

-

657

노르웨이

3

-

-

-

3

 

 

 출처: 라이프인코리아 (http://www.lifeinkorea.com/culture/Korean-War/war625k.cfm)



그런데 우리나라 곳곳에 그 분들을 기리는 참전비는 찾는 사람도 없이, 관리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참전비에 대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고, 관리 주체가 다양하기 때문에 관리에 필요한 별도의 지원금이 책정돼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 만큼 우리가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우리 역사에 큰 힘이 되어주셨던 분들을 기리는 참전비에 좀 더 자주 찾아가 그들을 기억하고, 우리 역사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참전비를 방문하는 것은 역사를 공부하는 아이들에게도 한국 역사의 한 부분에 대해 알게하는 현장 체험 학습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참전비는 6.25 전쟁 당시 유엔참전국이었던 나라별로 한국 곳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미국 참전비, 영국 참전비, 캐나다 참전비, 태국 참전비, 프랑스 참전비, 호주 참전비, 터키 참전비, 그리스 참전비, 남아프리카공화국 참전비, 네덜란드 참전비, 뉴질랜드 참전비, 에디오피아 참전비, 콜롬비아 참전비, 필리핀 참전비, 벨기에․룩셈부르크 참전비,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인도․ 스웨덴 의료지원단 참전비 등이 있습니다.


나라별 참전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lifeinkorea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이 곳: http://www.lifeinkorea.com/culture/Korean-War/war625k.cfm?Subject=UN2#txt01)

 

그리고 부산 남구 대연동에 위치해 있는 UN묘지는 1955년 11월 15일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에서 오직 하나 뿐인 유엔 관리의 묘지로서, 한국을 돕기 위해 참전한 16개국의 전투지원국과 5개국의 의료지원국의 유엔군 장병의 전사한 영령을 안치한 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한국 역사의 한 부분인 유엔군과 그들을 기리는 참전비에 대해서 살펴보았 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