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쌀쌀한 입동(立冬)이 지나자, 약속이나 한 듯 성시경의 신곡 발라드가 연일 거리에서 흘러나온다. 이맘때쯤이면 “겨울엔 발라드를 들으세요”라고 유세하듯 여타 가수들도 여심을 울리는 발라드를 무기로 각기 새로운 앨범을 발표하기에 바쁘다. 하나같이 엇비슷한 4/4박자의 리듬,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로 징징대는 가사도 예년과 별반 다를 바 없지만 오히려 익숙한 멜로디를 무기로 흐느끼듯 구슬리는 센티멘틀한 러브송은 변함없이 대중의 심금을 울린다. ‘겨울음악은 역시 발라드’라고 증명이나 하듯이.
△ “반동은 좌에서 우로! 군가시작! 하나, 둘, 셋, 네엣...” 군가를 열창하는 훈련병. |
‘겨울’과 ‘발라드’의 변함없는 궁합처럼 ‘때와 장소에 걸맞는 음악’은 언제나 추억을 재생산하는 신비한 쥬크박스다. 쏟아지는 태양볕을 맞으며 맥주캔을 들고 해변가에서 고성방가하던 키보이스의 ‘해변으로 가요’가 청춘과 여름을 회상하는 모티브인 것처럼 젊은 날 조국을 위해 헌신하던 수백만 군인들의 추억은 다름 아닌 군가(軍歌)에서 비롯된다.
작곡가인 고 박시춘 선생은 “군가(軍歌)는 대포에 지지 않는 예술적 무기”라고 정의했다. 국방부가 고시한 군가의 기본 취지에서처럼 실제 군가가 장병들의 전의고양을 일임하고 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훈련소 입소에서부터 기상나팔, 점호, 구보, 행군등에서 쉼없이 마주치던 군가속에는 분명 군인만이 추억할 만한 짠한 그 무엇인가가 있다.
군가는 추억을 싣고
△ 아련한 행군의 추억. 뙤약볕 아래서 그나마 지친 몸을 위로하는 건 다름아닌 군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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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내 집이다/내 목숨 건 곳/끝없이 펼쳐지는 보라매의 꿈~”
여대영씨가 작곡한 공군군가 ‘보라매의 꿈’의 후렴구는 파르하게 머리를 깍고 입소한 훈련병들에게 앞으로 이곳이 ‘내 집’임을 여실없이 자각하게 하면서 군문(軍門)을 들어선 당시의 마음을 회상하게 한다. “기상의 나팔소리 나를 깨우고...”라는 도입부 가사 탓에 오전점호나 기상구보때 자주 불려지기도 했다.
‘상황’에 맞는 군가의 선곡은 이처럼 가사나 박자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다. 힘든 구보나 행군을 마치고 중대가 모두 소집된 이후에는 좌우 반동과 함께 불러제치는 ‘멋진 사나이’가 제격이다. 숨가쁜 훈련탓에 터질듯한 호흡은 당최 군가를 부를 기분이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신나게 군가를 내지르고 나면 가쁜 호흡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특히 ‘사나이’라는 가사를 개사해서 ‘멋진 훈련병’, ‘멋진 000기’로 불려지기도 하는데 “싸움에는 천하무적 사랑은 뜨겁게”라고 외치며 훈련을 마치노라면 “해냈다”는 탄성과 함께 등줄기의 흘러내리는 땀이 더없이 자랑스러워진다.
△ “드디어 해냈다!” 행군을 마치고 부르는 ‘멋진 사나이’. 한줄기 땀이 오히려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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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가 속에 바다를 호령하는 수병의 느낌이 드러난다면 ‘보라매’와 ‘독수리’, ‘하늘’이 자주 등장하는 공군군가에는 하늘을 호령하는 조인(鳥人)의 자부심이 묻어난다. ‘성난 독수리’와 ‘보라매형제’, ‘보라매의 꿈’, ‘신념의 조인(鳥人)’등은 그 때문에 예비역 공군인들에게 병영생활을 떠올리게 하는 하나의 노스탤지어가 된다.
▶PLAY : 성난 독수리
군가, 진중가요 그리고 군악
대한민국의 군가는 근대 군가의 효시로 인정되는 ‘휘날리는 태극기’를 포함하여 264곡이 제정, 보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중 국방부 제정곡이 121곡으로 전체의 46%를 차지하고 있으며 공군 49곡, 육군 55곡, 해군 39곡으로 나타나 있다.
△ 군가도 ‘음악’인지라 가사와 리듬, 박자는 배워서 익혀야 한다. 군가교육중인 장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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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에는 6·25전쟁 이후 민과 군의 단합을 강조한 군가가, 60년대에는 월남전을 계기로 전투의지를 고양하는 군가가 주로 제정 보급되었는데 특히 7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건전가요 혹은 진중가요로 불리는 가요풍의 군가가 많이 보급되고 있다. 이 중 2000년에 들어 공군 군악대가 제작한 ‘The Power of Airforce’나 ‘Blue Sky'는 공군인들에게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공군의 대표 진중가요들. 이제는 어엿한 공군 행사곡으로 자리매김한 군가들이다.
△ 고색창연한 70~80년대 군가집 레코드판 |
근대 군가의 역사를 조사하던 차에 문득 공군 문화홍보과 자료실에 비치된 역대 군가집이 떠올랐다. 70년대 초반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방부 및 공군이 보급한 군가 레코드판을 꺼내 책상에 펼쳐보니 고색창연한 자켓 디자인 속에 당시의 시대색이 묻어나 보여 한편의 역사물을 보는 듯 했다. 그 중에는 성조기가 휘날리는 70년대 미공군의 군가집도 눈에 띄었다. |
미국에서는 1775년 독립전쟁 당시 애창되었던 이야기풍의 ‘Yankee Doodle’이 군가로서 많이 불렸으며, 1881년 남북전쟁에서는 ‘Battle Hymn of the Republic’이, 1914년 제1차세계대전 당시 애창된 ‘Over There’가, 그리고 39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는 ‘God Bless America’가 널리 불리었다. 미국의 군가는 한국의 군가와는 사뭇 다른 점이 많은데 ‘사랑하는 연인과 고향’을 그리는 주제를 포함해 전의고양과 아울러 향수와 감성을 노래한 군가가 많은 점이 특히 주목된다. 때문에 미군악연주회에서 주로 선곡되는 곡들은 특히 재즈(JAZZ)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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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공군의 군가집 'Mighty 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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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는 민요가 군가가 되거나 군가가 국가가 된 사례도 많다. 프랑스의 군가로서 널리 알려진 ‘마르부르크’는 전쟁과 관계가 있는 행진곡풍의 속요가 그대로 군가로서 불리게 된 것이다.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나 벨기에의 국가 ‘라 브라방손’ 등은 군가로서 작곡되었으나 뒤에 국가로 불리게 되었다.
계속되는 호기심에 인터넷에서 외국 군가를 검색하던 중 재미있는 외국 군가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흡사 우리말과 비슷하게 들리는 독일군가 ‘Topedos los(어뢰발사)’였다. 분명 독일어임에도 아래의 한국어처럼 들리는 군가는 이미 네티즌에게 큰 화제가 된 바 있단다. 외국군가의 샘플곡으로 선정된 독일군가를 한번 들어보자.
▶PLAY : Topedos los!
1절 : ‘빨간펜 야광펜 뭘 바래야/야광펜 야광펜 팔고 있다/빨간펜 야광펜 뭘 바래야/야광펜 야광펜 팔고 있다/빨간펜 빨간펜 뭘 바래야/빨간펜만 모두 함께야’
2절 : ‘이렇게 사는게 괴로운데/모든게 사는게 귀찮지/이렇게 사는게 괴로운데/모든게 사는게 귀찮지/이래도 이렇게 아는게 힘/모르는 게 힘 모르는 게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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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군가는 무반주에 우렁찬 남성의 목소리가 제격으로 여겨진다. 때로는 박자와 리듬에 상관없이 그저 질러대기만 하는 게 군가 창법의 전부인양 여기는 이들도 있다. ‘군가볼륨은 군기의 상징’이라며 무조건 크게 부르는 것이 군가의 미덕으로 보기도 한다.
물론 땀으로 범벅된 유격훈련장에서 째진 목소리로 뿜어내는 군가의 향연이 때로는 진정 군가다울 때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군가는 엄연한 음악의 한 장르. 때문에 혹자는 정식 무대에서 군악대의 관악과 함께 하는 진정한 군가연주를 마주했을 때 새삼 놀라기도 한단다. “군가가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였나” 싶을 정도로.
11월 22일(수) 서울 KBS홀에서 열리는 공군군악 정기연주회가 기대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달, 원주 세계군악제 ‘따뚜’에 초청되어 갈채를 받은 공군군악대는 콘서트밴드, 마칭밴드, 중창단, 실내악, 캄보밴드, 국악, 사물놀이패, 마술등을 포함하는 종합예술팀에 과언 아니다. 여기에 55년을 이어온 내공은 덤. 1년에 한번있는 정기연주회는 명망있는 색소폰 협연단과 소프라노, 공군가족 가수 리아가 함께 한다. 더구나 공감 웹진이 초청하는 2006 공군 군악연주회 초대권은 특별 대할인가. 즉 ‘공짜’다.
△ 55년을 이어온 공군군악대의 연례 정기연주회 포스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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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공군 군악 연주회 초대권 출력하기 ← 클릭!
△ 지난해 KBS홀에서 열린 2005 공군군악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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