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6·25 자료들(1950·06·25)

6.25 참전용사 찾는 72세 할아버지

바래미나 2009. 7. 17. 23:04

6.25 참전용사 찾는 72세 할아버지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면, 6월은 단연 '보훈의 달'이라고 할 수 있다.

 

6월 6일 현충일과 6월 25일 6.25 사변일이 들어있음으로 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신 분들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 2006 독일 월드컵의 영향 때문인지 보훈의 달이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관심이 월드컵으로만 향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경인전철역 중의 하나인 동인천역. 이곳에 도착해서 남쪽 광장으로 나오면 동인천역 앞 삼거리가 나온다.

 

이 삼거리에서 답동사거리 방향으로 진행하다 보면, 진행 방향에서 오른쪽에 신포시장이 나오고, 이 신포시장 입구를 막지난 오른쪽 건물을 올려보면 '인천학생 6.25 참전관'이라는 간판을 발견할 수 있다.

 

상가건물 3층에 자리한 인천학생 6.25 참전관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 당시, 인천지역 학생들이 학생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것을 기억하며, 그들의 흔적을 찾아 만든 자료들이 전시되고 있는 곳.

 

 

이곳의 운영을 담당하는 실장은 1950년 당시 16살의 나이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올해 72살의 이경종 선생님.

 

그가 한국전쟁 당시 학생의 신분으로 군입대를 위해서 남쪽으로 내려간 것은 1950년 12월 18일.

 

그 이후 한국전쟁동안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 다시 인천으로 돌아왔던 그는, 1996년 김영삼 정부 시절 참전용사증서를 받게 되면서, 지난 시간 동안 묻혀 두었던 한국전쟁 당시 인천학도의용대에 대한 흔적찾기에 나서면서라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이경종 선생님과 함께 전쟁터를 누볐던 친구들은 많았으나, 그들의 흔적찾기는 너무나 미비했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된 작업은, 1996년 사진기와 녹음기를 직접 챙겨서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생존자들을 찾아내면서 현재 전시되고 있는 자료들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 경제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도움을 준 일등공신은, 이경종 선생님의 장남 이규원씨.(치과의사로 인천학생 6.25 참전관 근처에서 개인치과를 운영중/환경공학박사)

 

아버지의 사정을 들은 그의 장남 이규원씨는 이러한 작업을 시작해야 하겠다는 동기부여를 받았으며, 아버지가 수집하는 역사수집에 적극적으로 돕고 나섰다고 한다.

 

 

그러나 이규원씨는 이러한 아버지의 역사수집에 대해서 약간 색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역사를 아버지가 써서는 안된다는 것.

 

즉, 주관적인 역사서술보다는 객관적인 역사서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차적인 자료수집에는 이경종 선생님이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규원씨는 자료수집에 대한 기획을 담당하고, 실제적인 자료수집을 위해서는 이경종 선생님이 직접 발로 뛰기 시작한 것.

 

현재 이러한 자료들이 인천학생 6.25 참전관에 일부분 전시되고 있는데, 그 사진과 사연들을 하나 하나 읽어보면 오늘날의 우리들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나라의 안위를 위해서 목숨도 아끼지 않은 분들의 기록들이 색바랜 사진들과 함께 확인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이러한 작업을 했을까?

 

처음에는 녹음기로 녹취한 자료들은 아르바이트생들의 도움을 받아 문장으로 정리를 했다는데, 이러한 작업도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노령의 나이에도 컴퓨터를 배워 이제는 스스로 타이핑을 치면서 수집한 자료들을 정리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인천학생 6.25 참전관의 기록들 가운데에서 자신에 대한 기념사진과 기록을 바라보는 이경종 선생님.

 

제목부터가 인상적이다.

 

'아들(이규원)과 함께 6.25 참전 인천학생 역사 찾는 16세 소년병 이경종(아버지).

 

지난 시간 속에서 죽음과 삶을 넘나들던 그 시절을 다시금 회상하는 모습에 숙연한 마음까지 생긴다.

 

 

한편, 1996년 김영삼 정부시절 받은 참전용사증서와 같이 1999년에는 인천고등학교로부터 명예졸업증서를 수여받은 이경종 선생님.

 

뒤늦게나마 이경종 선생님과 같은 분들에 대한 국가적으로 그리고 개인적 명예가 회복된 것은, 비록 한국전쟁이 끝난지 40여년이 지나서 이루어졌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헌신했던 분들에 대한 당연하고도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한편, 이경종 선생님의 집을 방문해 보니, 수많은 자료들이 꼽혀 있는 작은 책상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이 작은 책상 위에 펼쳐지는 수많은 자료들은, 이경종 선생님의 수고가 가득 담겨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자료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증언을 생전에 녹음한 녹음테이프와 관공서를 다니면서 수집한 자료와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자료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으신 것을 보니, 이경종 선생님의 수고와 꼼꼼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수집되어 있는 자료들이 모두 정리된 것은 아니기에, 생전에 어느 정도까지 마칠 수 있을까 하는 노파심도 앞서신다고 한다.

 

 

끝으로 한국전쟁 당시 세상을 떠나셨거나 한국전쟁 이후 세상을 떠나신 분들의 명패를 손수 만지시면서 무언의 대화를 나누시는 이경종 선생님.

 

시간을 흘렀으나 함께 전장을 누볐던 전우들에 대한 애정을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듯 하다.

 

아울러 현재 인천학생 6.25 참전관을 운영하시는 이경종 선생님에게는 한가지 소원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인천시민들의 공감대 속에서 인천학생 6.25 기념관의 건립. 따라서 현재의 인천학생 6.25 참전관은 임시처소라고 말한다.

 

부디 이러한 그의 소원이 그의 생전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바라기는 보훈의 달 6월을 맞이하여, 비록 한달만이라도 우리의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신 분들을 다시금 돌아보며, 그들에 대한 감사함을 가지고 사는 것을 어떨까?

 

www.smyoohak.com

 

P.S. 다음주에 이경종 선생님과 함께 쓸쓸하게 관리되고 있는 동료 -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 묘지를 찾아갈 예정입니다. 이 현장취재를 마치면 이어서 올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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