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짝꿍 크레파스는 36색이었습니다.
크레파스 통도 아주 멋졌습니다.
손잡이가 달려 있는 가방을 펼치면
양쪽으로 나뉜 플라스틱 집에
36개의 가지각색의 크레파스들이
서로 빛깔을 뽐내며 들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금색, 은색도 있었습니다.
내 크레파스는 8색이었습니다.
조그마한 직사각형의 종이 상자에
골판지 이불을 덮고
옹기종기 누워 있는 내 크레파스...
짝꿍이 36가지의 색 중
어떤 색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난 8가지 색을 골고루 색칠하고도
비어 있는 도화지를 놓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습니다.
내 그림에도
빛나는 황금색을 칠한다면 정말이지
금빛 은빛 세상이 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 날은 엄마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난 짝꿍처럼 엄마 손에
금반지를 그려 드리지는 못할지라도
엄마가 제일 좋아하시는
보라빛의 블라우스를 입혀 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할 수 없이 파란색으로
엄마의 블라우스를 칠했습니다.
엄마는 너무 추워 보였습니다.
다시 따뜻해 보이는 빨간색으로
그 위를 덮었습니다.
그 순간....
블라우스는 보라빛으로 변해 있었고
엄마는 눈부시게 웃고 있었습니다.
너무 신기 했습니다.
빨간색과 노란색을 섞어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주황색 감도 그릴 수 있었고
초록색과 노란색으로는
파릇파릇 연두빛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는
짝꿍의 크레파스가,
금색, 은색이 부럽지 않았습니다.
나에게는
요술쟁이 크레파스가 있었으니까요.
그 날 난
못나게만 보였던 내 8색 크레파스를 통해서
소중한 삶의 비밀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지금 내 삶에도
화려한 빛깔의 많은 크레파스는 없습니다.
물론 금색, 은색도 없습니다.
하지만 내게 있는 자그마한 빛깔로
소박하지만 따사로운 색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오늘도 난,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빛깔로
삶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습니다...
-옮 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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