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주옥같은 명곡

바래미나 2007. 9. 8. 03:13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주옥같은 명곡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앨범
((오! 솔레미오 ))
 

01- (딜라)카루소-with Lucio Dalla 


02- (디 카푸아)오 솔레 미오


 03- (토스티)작은 입술


 04- (카르딜로) 무정한 마음


05- (보비오) 패숀


 06- (케루비니) 맘마


 07- (아담) 오 거룩한 밤

 
 08- (비제) 신의 어린 양


09- (로시니) 서럽고 슬픈 성모성심

10- (베르디) 청아한 아이다

11- (도니제티) 남몰래 흘리는 눈물


12- (도니제티) 아름다운 밤


13- (베르디) 내마음 평안해 질 때


 14- (베르디) 타오르는 마음

 
2007년 9월 6일 타계한 루치아노 파바로티
(72.Luciano Pavarotti)는 플라시도 도밍고(67),
호세 카레라스(61) 와 함께 ‘세계 3대 테너’로 꼽히는 세계적인 성악가였다.
 
파바로티는 생기 넘치는 음색과 강렬한 쇼맨십으로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성악가였다. 팬들은 파바로티가
이탈리아 오페라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평가한다.
 
1935년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제빵사의 외아들로 태어난 파바로티는
어린 시절 성악보다 축구에 더 많은 흥미를 가졌다. 
하지만 파바로티는 교회 성가대와 지역 합창단에서
테너를 담당했던 그의 아버지가 부르는 성악을 듣는 것 또한 좋아했다.
 
파바로티는 자신의 10대 시절을 떠올리면서 "미국의 테너가수인
마리오 란차가 나오는 영화를 종종 보러 갔었으며, 집에 돌아와서는
거울을 보며 란차를 따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파바로티는 20세가 됐을 때 그가 속한 합창단이
영국 웨일스에서 열린 국제 음악 경연대회에 출전,
 1위 자리에 오르면서 음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약혼자 아두아 베로니의 격려 속에 파바로티는
본격적인 성악 수업을 받기 시작했고 수업 비용은
보험 판매 영업을 하면서 충당했다.
 
1961년 '라보엠'의 로돌프 역할로 지역 경연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정식 데뷔를 한 파바로티는 1972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린 공연을 흥행으로 이끌면서 세계적인 성악가로 발돋움했다.
 
파바로티는 1988년 독일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사랑의 묘약' 공연이 끝난 뒤에도 165번의 앵콜을 받아
기네스북에 올랐다. 이 날 공연에서는 그에게 쏟아진 박수 시간은
1시간7분에 달했다.
 
도밍고는 "나는 항상 파바로티가 가진 '신의 목소리'를 존경한다"며
"파바로티가 가진 특유의 음색은 테너가 부를 수 있는 음역을
모두 소화한다"고 격찬하기도 했다.
 
한편 파바로티의 결혼생활은 평범하지 않았다.
부인 아두아 베로니와의 사이에서 3명의 딸을 둔 파바로티는
1994년 이탈리아 모데나 대학을 다니던 니콜레타 만토바니를
처음 만났고, 자신의 개인비서로 고용했다.
 
만토바니와의 가까운 관계가 알려지면서 파바로티는
부인 베로니와 2000년 이혼, 2003년에 35살 연하인 만토바니와
결혼식을 올렸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파바로티의 검은 수염과 큰 체구 또한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식성이 좋았던 파바로티는 1978년엔
몸무게가 180kg에 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7월 뉴욕에서 췌장암 수술을 받은 이후
공식 활동을 중단한 파바로티는 지난달 25일
고열증세로 병원에 입원해 2주 이상의 치료를 받았다.
이 수술로 인해 파바로티는 40여 년의 노래인생을 정리하는
전 세계 40개 이상 도시 순회공연 일정을 마치지 못했다.
 
이날 72세로 사망한 파바로티는
지난해 2월 토리노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부른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중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
(Nessun dorma)'가 결국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