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 '호두까기인형' 중에서 '사탕요정의 춤'
★The Nutcracker Suite Op.71a
차이코프스키 호두까기 인형 Nutcracker
Pyotr Il'ich Chaikovskii 1840∼1893
** 작품 배경 및 구성
독일의 낭만파 작가인 호프만이 쓴 동화 "호두까기 인형"을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가 2막 3장으로 각색해서 대본을 만들었고,
여기에 차이코프스키가 곡을 붙여 발레곡으로 만든 작품이다.
쌍트 페테르부르크 오페라극장으로부터 작품의 의뢰를 받은 차이코프스키는
프티파로부터 건네받은 대본에서 처음엔 악상이 떠오르지 않아 고심했다.
호프만의 '호두까기 인형'이 지니고 있는 낭만적인 환상이
프티파의 대본에서는 지나치게 생략되어 있어
작곡의 단초를 잡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특히 제1막과 제2막의 연결성과 등장인물의
성격을 부여하는데 상당히 고심했다고 한다.
결국 한 시즌을 늦춰 완성하기로 하고
미국으로 순회연주 여행을 떠났다가 프랑스에서 여동생 사샤의 부음을 받는다.
동생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여행 중에 다시 심한 우울증에 빠지는데
그 상태에서 미국까지 항해를 하던 중
클라라와 호두까기인형 왕자와의 여행에 대한 악상을 얻는다.
세상을 떠난 여동생 사샤는 사탕과자 요정,
자신의 안식처였던 사샤의 집은 요정의 나라,
여자조카 타티아나는 클라라(또는 마리), 보비크는 프리츠,
그리고 자신은 드로셀메이어로 대입해 작곡을 시작한다.
그는 사샤를 상징하는 사탕과자 요정을 표현할 악기에 대해
상당히 고심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파리에서 첼레스타를 발견하고
그 소리에 매료되어 악기를 주문하게 된다.
맑고 통통 튕기는 듯한 음은 그의 의도대로
요정의 움직임을 표현하는데 적절했다.
귀국 후 페테르부르그 근처의 별장에서
이 작품은 완성됐다.
1832년 3월이었다.
그러나 발레 전체 공연은 예정보다 훨씬 지연되었다.
이 작품의 안무를 맡았던 마린스키 극장의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Marius Petipa)가 공연을 며칠 앞두고
콜레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비운을 맞았고,
하는 수 없이 이바노프(Lev Ivanov)가 대신 안무를 맡게 되는 등,
여러 사정으로 늦어져 작곡된지 9개월이나 지난 12월 5일에
간신히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
게다가 공연에 대한 평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차이코프스키는 전15곡으로 되어있는 작품 중에서
8곡을 발췌하여 연주회용 모음곡으로 만들어
페테르부르크에서 자신의 지휘로 초연하여 크게 성공했다.
발레는 초연 이후 수십 가지 버전으로 안무되어
크리스마스 시즌의 가장 인기 있는 작품으로 사랑 받고 있다.
모음곡으로 구성된 것 역시
크리스마스와 상관없이 연주회장에서 자주 연주되고 있다.
**시놉시스
마리는 크리스마스 전날에 아버지로부터 받은
호두까기인형을 보고 무척 기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선물을 시기한 오빠가 호두까기인형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 그만 인형이 망가져 버린다.
어린 마리는 눈물을 흘리며 호두까기인형을 품에 안고 울다가 잠이 들었다.
이날 저녁에 마리의 방에서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된다.
이웃 생쥐나라에서 마리가 있는 장난감 나라로 쳐들어 온 것이다.
갑자기 호두까기인형이 일어나서 병정들을 지휘하기 시작한다.
생쥐나라의 군대와 장난감 나라의 병정들이 싸우게 된다.
처음에는 장난감 나라 병정들이 잘 싸웠으나 점점 밀리게 된다.
이것을 몰래 보고 있던 마리는 엉겁결에 신고있던 신발을 던진다.
이 신발은 생쥐나라의 임금에게 맞게 되고
마침내 장난감 나라가 승리하게 된다.
이때 호두까기인형이 왕자로 변한다.
마법사의 주문에 걸려서 호두까기인형으로 변해 있던
왕자의 마법이 풀린 것이다.
왕자는 마리를 데리고 장난감 나라를 구경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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