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들

영국 --거닝 자매

바래미나 2007. 7. 5. 23:51
 

 

유럽대륙은 심장부로 갈수록 왕족, 귀족의 결혼이 근대까지 보수적이어서 동급끼리만 결혼했다.

귀족은 귀족끼리, 왕족은 왕족끼리.

오스트리아의 암살당한 황태자 부부의 무덤 만들 때 황태자비 무덤에는 비천한 시녀를 의미하는

장갑을 새겨넣었다는 일화가 유명하지 않은가. (황태자 친척인 황족집안에서 시녀 노릇한 건 사실이다 ㅎㅎ)

 


그런데 영국은 이런 법도가 없다.

영국 왕실 자체가 시조가 노르만의 사생아라서 그런지 귀족이 평민 여자와 결혼한다든가, 왕족이 귀족과

결혼한다든가 이런 게 다른 유럽 왕실보단 쉽다.

(물론 여자쪽 집안이 최소한의 품위는 갖춘 신사 내지는 대지주 정도라야겠지만)

몇년 전 죽은 퀸마더가 스코틀랜드 백작의 딸인데, 왕비가 된 뒤에 시아주버니 윈저공과 대립이 있을 때,

윈저공이 '그 평민여자가 감히!'라고 노발대발하긴 했다. 엄밀하게 따지면 왕실에서 귀족은 평민,

즉 한 급수 아래로 취급될 수 있긴 하다.

 


18세기 영국에서만 가능한 신데렐라 스토리 비슷한 것이 있긴 하다.

거닝 자매. ㅎㅎㅎ

해밀턴 공작부인 & 아가일 공작부인 엘리자베스,



 

 

코벤트리 백작부인 마리아.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이 자매는 어머니가 귀족혈통이고, 아버지는 장교였다.

 


그런데 집안에 돈이 없었댄다.

신랑감 구하려면 사교계에 나가야 하는데, 드레스 만들 돈도 없었단 거다.

귀족이신 어머니 왈, '집안에 돈도 없으니 니들 둘다 여배우로 나서거라.' ㅎㅎ

여배우는 꽤 근대까지도 고급창녀랑 동의어가 될 수 밖에 없는 직업이다.

여배우 월급도 드레스 값 대기도 벅차거든.

고상하게 차리고 싶으면 이 남자 저 남자 잡아서 첩 노릇 해야 하는 직업인 셈 .

 

처음에는 아일랜드에서 배우생활했는데, 당시에는 별 재미 못 봤는지 무도회에도 드레스 살 돈이

없어서 무대의상 입고 나갔단다.  ㅎㅎ

 

이후 런던에 진출해서 미녀자매로 유명해져서 왕실공연까지 출연한다.
당시 궁정 분위기가 상당히 노는 시대니까 두 자매 모두 20살 되기 전에

30살이 안 된 작위까지 있는 총각귀족들을 하나씩 잡아 순조롭게 결혼했다.

상류층 귀족딸도 20살 연상 신랑과 결혼해도 별 수 없던 시대인데. ㅎㅎ

 


엘리자베스는 스코틀랜드 귀족 해밀턴 공작,

마리아는 코벤트리 백작.

일단 신데렐라 스토리 성공. ㅎㅎ


 

그런데 마리아는 중금속 화장독으로 30살 되기 전에 죽었다.

그리고 세간에는 귀부인으로서보다는 남편의 첩인 키티 피셔라는 평민 출신 고급창녀의 라이벌로 더 유명해져서 웃음거리를

제공했다. ㅎㅎ

 


키티 피셔도 똑같이 중금속 화장독으로 일찍 죽었는데, 카사노바가 기록할 정도로 런던에서 날리던

고급창녀였다. 참 잘 나갔는지, 열흘치 몸값이면 당대 최고화가에게 초상화 하나 주문할 정도였다고.

그래서 키티의 초상화가 참 많다.  거기다 모델의 유명세 덕에 내셔널 포트리트 갤러리 같은 대형

박물관에 전시되는 영광을 받고 있다  ㅎㅎ

 

아래 그림은 제일 유명한 건데, 사진이 좀 어둡지만 그녀 오른쪽에는 고양이(kitty)가 금붕어 어항 (fish)를

가지고 장난치는 게 그려져 있다. (화가 Hone)

 


다른 그림은 레이놀즈가 그린 것들인데, 앞의 건 클레오파트라가 진주 마시는 거 흉내내서 그린 포즈다.

 


 
(키티 피셔는 실제로 비슷한 짓거리를 했단다.

어느 고객이 키티한테 100 일치 화대를 수표로 써줬는데, 그걸 토스트에 얹어서 그냥 먹어버렸단다. ㅎㅎ)

 


마리아 거닝은 불쌍하게도 젊은 남편이 이런 기세등등한 키티와 함께 얽히는 바람에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ㅎㅎ

공원에서 산책 도중 둘이 마주쳤는데, 마리아가 키티의 드레스 칭찬하면서 어디 옷인지 질문했단다.

키티 왈, 댁의 남편이 선물한 거니까 집에 가서 물어보세요. ㅎㅎㅎ

(마리아는 당시 귀부인 기준으로 머리가 좋았던 거 같지는 않다. 프랑스로 신혼여행을 데려갔더니 불어 못 해서

재미없다고 짜증냈단다.)

 


하여튼 본처와 첩, 이 둘은 출신이 귀족 여배우와 평민 고급창녀라는 애매한 처지였지만

당시 기준에 맞춘 미모로 출세한 공통점 덕에 똑같이 평생 줄기차게 바른 중금속 화장독으로 죽은 셈이다. ㅎㅎ

(남편 코벤트리 백작은 본처한테 화장 금지령을 내리고 가끔은 공중석상에서 냅킨으로 마누라 화장을 벅벅 지우기도

했다는데, 남편 말 들었음 더 오래 살았을 거란다 ㅎㅎ)

 


자매 중 마리아는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다가 요절했지만, 엘리자베스는 수십년 더 살면서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젊은 해밀턴 공작을 꼬셔서 비밀결혼에 성공했고 아들을 둘이나 낳았다.

(이 그림은 해밀턴 공작과 결혼하던 무렵 친척화가 해밀턴이 그린 거란다) 

몇년 뒤 남편이 요절하자 왠걸 이 여자 경력은 한층 더 피어난다.

이 여자는 평생 연애도 재혼도 돈 많고 나이 비슷한 (어떤 때는 연하) 공작하고 하는 일관성을 지켰다.

운하로 재벌이 된 공작과 약혼이 깨진 뒤에도 당당하게 전남편과 같은 스코틀랜드 귀족 아가일 공작과 재혼해서

또 아들을 둘 낳는다.

 

 

왕비의 시녀자리에도 진출했고, 성실한 애처가였던 국왕이 어쩐 일로 좋게 보셨는지 '해밀턴 여남작'이라는 개인 작위를

따로 내려주신다. (남편 작위가 스코틀랜드 작위라서 영국 왕궁에서는 따로 영국 작위가 필요해서인 듯 하다.

이 왕은 성실한 애처가였다 ㅎㅎ)

 


정리해 보자.

첫남편 해밀턴 공작과 사이에 아들 둘. (장남은 10대에 요절, 차남은 평민여자와 결혼했다가 어머니 반대로 이혼. 둘 다 후사 없음)

 


둘째남편 아가일 공작과 사이에 아들 둘. (장남은 느지막이 결혼해서 후사 없음, 차남의 자손이 이어받음)

 


결과적으로 아들 넷 모두 공작이 되었다. ㅎㅎ  

이렇데 되면 집안에서 이 여자 목소리가 커질 수 밖에 없다.

뿐인가 사후의 일이긴 하지만 증손자는 빅토리아 여왕의 딸, 루이즈 공주와 결혼한다.

(손자는 다윈의 진화론에 반박해서 신의 절대적인 권능을 설파한 신학서적 저술로도 유명하시다 ㅎㅎ

웃을 일이 아닌 게 진화론 - 창조론 문제는 현대에도 대립이 계속되는 터라 이 양반 저술을 아직도 무시 못한다. )


(여왕은 될 수 있는 한 영국에 이민와서 살아줄 왕자 사윗감을 원했지만 외교관계상 여의치 않자 귀족으로 낙찰.

프랑스 왕실이었다면 이런 급수 안 맞는 혼사하느니 딸을 수녀원에 보냈겠지만 영국 왕실이니까 가능했다. )

 


그런데 모처럼 왕실과 혼인하고 캐나다 총독이라는 영광스런 자리까지 역임했건만 제9대 아가일 공작이란 넘이

아무래도 바이섹슈얼 내지는 호모끼가 강한 넘이라 공주와의 사이에 후사가 없어 왕실과의 인연은 이거로 끝나고,

이런 저런 스캔들의 냄새가 풍긴다.

(부마가 밤에 근위병들을 하도 꼬셔대서 공주가 처소의 창문을 막아버렸다든지,

영구미제로 남은 왕실 보석 도난사건에는 부마의 '절친한' 친구들로 구성된 호모 서클이 배후로 언급되었다든지)

 

이넘이 증조할미처럼 정상적인 인간이었다면, 한번 왕실혼사 맺은 인연 계속 이어서 현대 영국왕실 유전자가

상당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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