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몽골-대초원-

바래미나 2007. 6. 19. 02:03

길이 묻습니다.
"어디로 갑니까?"

"왔던 곳으로 가지 뭐 ... "




몽골의 길은 몽골거리고 몽골스럽게
내 앞에 있다.
그 길은 헐겁고, 거칠며, 지루하기까지 하다.
몽골에서의 길 떠남은 지루함을 견디는 일일지도 모른다.
지루함과 먼지, 적막과 사막,
이따금 만나는 염소떼와 수시로 불어닥치는 모래폭풍,
머리 위에서 느닷없이 떨어지는 별똥별과
밤새 고비로 흘러가는 은하.





하늘에 뜬 구름은 바닥에 고인 내 상상력을 자극한다.
고갈된 설렘을 들추어낸다.
멀리서 먼지를 일으키며 푸르공 한 대가 달려와서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몽골의 초원에서는 없던 것들이 불쑥불쑥 솟아나고,
있던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만약에 내가 여기서 갑자기 사라지면,
저기서 갑자기 솟아오를지도
모른다.





몽골의 여행자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대초원의 길에 이정표가 있을 리 없다.
바퀴자국이 곧 길이며, 이정표다.
여기서 자칫 길을 잘못 접어들면, 전혀 엉뚱한 곳으로 빠지고 만다.
물론 이리로 가든, 저리로 가든
초원이거나 사막이겠지만,
길은 계속해서 미궁으로 이어진다.





"초원의 100차선 도로"
이게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몽골에서는 가능하다.
가기만 하면 길이 되는 곳이 몽골이므로.





길 위에서 설령 무지개를 만난다고 해서
세삼 놀랄 이유는 없다.
고비에서 소나기를 만난다고 해서
전혀 흥분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을 보았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툭하면 광분하였다.
계속해서
무지개가 뜨고, 뜻하지 않은 소나기를 만나게 되면서
내 감정은 자연스럽게 잦아들었다.





고비는 어디에 있나요, 라고 나그네는 묻는다.
여기가 고빕니다, 라고 답하면 나그네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사하라 사구같은 모래언덕을 기대했다면
당신은 돌아가야 할 것이다.
고비는 척박한 모래땅이다.
당신이 원하는 모래언덕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여기가 사막이고, 당신은 이미 사막 깊숙이 들어온 것이다.
사막의 한복판에 마을이 있다고 해서
사막이 아니라고 여기면 안된다.





아침 먹고 반나절을 달려서야 고작 게르 몇 채를 만난다.
또 다시 반나절을 달려서야 사람 몇 명을 만난다.
그러나 달리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만날 수가 없다.
이것이 몽골의 길이다.
가지 않고는 아무것도 만날 수 없는 길.





누군가는 그 길을 지프를 탄 채 달려가고,
누군가는 말을 타고 간다.
사실 몽골에서의 자동차란 외계의 것이다.
이들의 탈것이란
여전히 말 아니면 낙타이고,
그것만으로도 이들은 충분하다, 고 여긴다.
과연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몽골은 사막과 초원 뿐이군요, 라고 말하는 당신은 틀렸다.
그것은 몽골의 어떤 한 부분일 뿐이다.
몽골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 중 하나인 홉스굴 호수도 있고,
가장 험난하기로 소문난 알타이 산맥도 있다.
그러나 울란바토르를 비롯한 몇몇 대도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길은 다르지 않다.
먼지가 날리고, 구부러지고 휘어졌으며,
이따금 양떼와 소떼가 지나가는 길.





저 길 끝에 도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그곳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그럼 대체 그곳엔 왜 간단 말인가.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러 간다.
그렇다면 당신은 저 길끝에 라스베가스라도 있기를 바란단 말인가.
아니면 휘황찬란한 홍등가라도 있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잘못 왔다.





몽골의 길은 강물처럼 흘러간다.
은하처럼 흘러간다.
그 길은 '길의 감식가'를 기다린다.
길은 음미하는 것이므로.





길은 수없이 흩어졌다가
다시 만나고 헤어진다.
이제 나는 그 길과 악수한다.
길은 내게 묻는다.
이제 어디로 갑니까?
집으로 갑니다.
저 길이 보이지 않는 먼 곳에
내가 사는 모래알 같은 집이 있다.
내게는 길보다 집이 더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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