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방에서는 플로거-B라는 식별 코드로 불리는 소련 공군 소속의 MiG-23M.
1950년 10월 한반도 북부 상공에 갑자기 등장한 MiG-15는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하지만 성능이 압도적으로 뛰어나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F-86이 즉시 대응하여 진검 승부를 펼쳤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미국도 충분히 뛰어난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쇼크라고 언급 될 만큼 MiG-15가 높은 평가를 받았던 이유는 엄밀히 말해 미국의 만용 때문이었다.
자기들만이 새로운 전투기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는 자만심이 사실 가장 큰 문제였다. 기술력을 낮게 보던 소련이 좋은 전투기를 데뷔시키자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전투기 개발 역사를 살펴볼 때 소련이 기술적으로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있었던 시기가 바로 그때였다. 이후 미국은 성능이 더 뛰어난 후속 전투기를 연이어 개발하였지만 소련은 미국의 선공에 겨우겨우 응전하기 바빴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련, 러시아의 능력이 엄청나게 뒤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현재 지구상에서 그나마 이 정도로 응전하고 나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나라도 러시아밖에 없다. 어쨌든 이런 사실을 알고 있어도 예산 획득에 민감한 미국의 국방 담당자들은 일부러 소련의 능력을 과잉 되게 표현하고는 했다. 결론적으로 MiG-15 이후 등장한 소련, 러시아제 전투기의 성능이 동시대 미국제 전투기를 압도한 적이 없었다.
1960년대 들어 고성능 레이더와 장거리 미사일로 공중전을 벌이는 제3세대 전투기 시대가 본격 개막되면서 미국과 소련의 전반적인 기술 격차는 점점 벌어졌다. 전투기 세계를 천하통일 한 F-4 팬텀 II의 등장은 소련을 긴장하게 만들었고 당장 맞상대할 수 있는 고성능 전투기의 필요성을 대두시켰다. MiG-23 플로거(Flogger)는 이런 시대상을 배경으로 탄생한 소련의 대항마였다.
- ▲ 1981년 시드라만 상공에서 상호 요격 중인 미 해군의 F-4J 팬텀과 리비아 공군 소속의 MiG-23.
요구된 팬텀의 대항마
출현 시기를 기준으로 F-4가 당대 최고 수준의 전투기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곧바로 투입된 월남전에서 생각만큼의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성능이 절대 열세인 것으로 평가되던 MiG-17, MiG-21에게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F-4의 뛰어난 능력을 백분 발휘할 수 없도록 스스로 제한시킨 어이없는 정치, 외교적인 교전 수칙 때문이었다.
초기 공대공 미사일의 성능이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먼 거리에서 상대를 먼저 포착하고 공격을 가할 수 있는 BVR(가시권 밖) 교전 능력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엄청났다. 당시 상황에서 소련의 전투기들이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근접전으로 격투를 벌이는 것인데, 가까이 접근은커녕 상대편을 보지도 못하고 격추당할 위험이 컸다. 속도나 선회력 같은 비행 능력으로만 전투기를 평가하지 않는 시대로 서서히 바뀌고 있던 중이었다.
사상 최대의 베스트셀러일 만큼 MiG-21은 좋지만 제3세대 전투기로 변신하기에 기본적인 체급 차이가 컸다. 더 멀리 비행하고 더 멀리 보고 정확히 공격할 수 있는 레이더와 항전장비 그리고 강한 무장을 탑재하려면 이전 소련제 전투기들과는 달라야 했다. 그것은 그 동안 근접전에 최적화된 소련제 전투기의 고정적 프레임을 깨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면서도 이전에 가지고 있던 장점 또한 그대로 물려받아야 했다.
소련은 1964년부터 신예기 개발에 착수하였는데 당시까지 확인 된 월남전의 결과와 소련 공군의 요구가 적극 반영되었다. 당연히 기체의 성능도 뛰어나야 했지만 미국의 신예 전투기에 맞서 BVR 교전을 하려면 고성능의 레이더, 항전장비, 장거리 공대공미사일의 개발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했다.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자 MiG 설계국은 우선 기존 MiG-21의 장비를 장착하여 동체 개발을 실시하였다.
- ▲ 전자전 장비가 보강 된 후기형 MiG-23MLA (플로거-G). 수직 미익과 동체를 연결한 도설핀(Dorsal Fin)이 작아져서 초기형과 쉽게 구별이 된다.
- ▲ 폴란드 공군 소속의 MiG-23MF. 다양한 무장 장착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소련 전투기의 위상을 바꾸다
소련 공군은 최고 속도가 마하 2를 넘고 지상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도 요구하였다. 거기에다가 전쟁 중 파괴당한 활주로에서도 충분히 운용이 가능할 만큼 이착륙 거리가 짧아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이는 고고도, 저고도, 고속, 저속에서 모두 비행 능력이 뛰어난 만능 전투기를 의미하는데, 처음에는 개량한 MiG-21 동체에 리프트 엔진을 장착한 STOL(단거리 이착륙)기를 구상하였다.
이렇게 탄생한 실험기가 MiG-23PD인데 요구된 속도와 항속 거리를 충족할 수 없어 실패로 막을 내렸다. 동체의 크기를 키우지 않고 리프트 엔진을 장착하다 보니 기능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고심 끝에 상황에 맞게 최적의 비행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16도~72도까지 후퇴각을 변경할 수 있는 가변형 주익을 도입했다. 수동으로 각도를 변경하여야 했고 정비 요소도 많아졌지만 효과는 좋았다.
- ▲ MiG-23 주익의 가변익 조절 장치의 모습. 수동식이지만 고도와 속도에 기체 형태를 최적화하여 비행할 수 있다. <출처 (cc) Jaypee at wikimedia.org>
- ▲ 제한적이지만 소련 최초로 룩다운/슛다운 기능을 갖춘 사피르-23D 레이더. <출처 (cc) VargaA at Wikimedia.org>
더불어 각종 장비와 무기의 개발도 함께 이루어졌는데 새롭게 개발된 R-29 엔진은 MiG-21가 장착한 R-25 엔진의 2배 정도 추력을 낼 수 있어 강력한 무장 장착이 가능하였다. 최대 80km까지 수색할 수 있고 고고도에서 45km 범위내의 적 전투기와 교전을 치를 수 있는 사피르(Sapfir)-23D 레이더는 소련 최초로 하방 감시 및 공격이 가능한 제한적인 룩다운/슛다운(look-down/shoot-down) 기능도 갖추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BVR 교전이 가능한 R-24 미사일을 운용할 수 있는 MiG-23은 이전까지 근접전만 강하다고 평가 받은 소련 전투기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1972년 최초 양산형 모델인 MiG-23M을 시작으로 꾸준히 다양한 개량형이 개발 생산되면서 소련 공군의 주력 전투기 위치를 신속히 차지하였다. 특히 공대공전투보다 대지공격을 위해 특화 된 MiG-23B와 그 파생형은 이후 MiG-27로 발전하였다.
- ▲ 대지공격기인 MiG-27K. 아래 부분이 뭉툭한 기수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출처 (cc) George Chernilevsky at Wikimedia.org>
얼떨결에 서유럽을 침공하다
지금도 주변국에 대한 항공 정찰이나 초계는 일상이지만 냉전 시기에 대립 행위는 그야말로 첨예하였다. 대개 공해 상공에 출몰하여 정보 수집을 벌이고 상대방의 대응을 점검하는 정도였으나 경우에 따라 일부러 상대 영공을 도발하는 자극적인 행위를 실시하기도 하였는데 항의가 있으면 단지 실수였다고 얼버무리거나 침묵하였다. 사실 분명한 군사적 도발이지만 그렇다고 이것 때문에 전쟁을 벌일 수는 없었다.
그런데 냉전시기 백주대낮에 소련 전투기가 서유럽 상공을 횡단하여 민간인을 살상한 사건이 있었다. 1989년 7월 4일 폴란드 코워브제크에 주둔한 소련 공군 소속의 MiG-23이 이륙 직후 엔진에 문제가 발생하여 추락하기 시작하자 조종사는 150미터 상공에서 긴급 탈출하였다. 그런데 이후 엔진이 원상 복구되면서 MiG-23은 다시 날기 시작했고 어떻게 할 틈도 없이 폴란드와 동독을 넘어 곧바로 서유럽으로 진입하였다.
놀란 나토가 요격에 나섰지만 조종사가 없고 소련으로부터 어떠한 내용도 통보 받지 못한 상황이라 그저 MiG-23을 쫓아만 갈 뿐이었다. 적당한 위치에서 격추시켜야 했지만 비행 경로에 민간인 거주지가 많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당황하던 중 MiG-23의 연료가 바닥나며 이륙 지점에서 800여km 떨어진 벨기에에 떨어져 현지 청소년 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본의 아니게 MiG-23은 서유럽을 공격(?)한 최초의 소련제 전투기로 기록되었다.
- ▲ 월경한 소련군 MiG-23을 요격 중인 미 공군의 F-15 편대를 그린 일러스트레이션. <출처 (cc) Anynobody at wikimedia.org>
당연히 벨기에 정부는 격렬히 항의하였으나 소련은 어떠한 사과는커녕 어떠한 대꾸도 없었고 피해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의로 여객기를 격추시켜 수백 명의 민간인을 학살하는 행위도 마다하지 않았던 소련의 행위를 상기한다면 어쩌면 이런 대응이 당연하였는지도 모른다. 인명 피해를 내고도 사과도 없이 뻔뻔하게 나올 수 있었던 그런 어이없는 상황이 바로 냉전 시대의 모습이었다.
짧을 수밖에 없던 전성기
총 5,000여기가 생산 된 MiG-23은 소련의 동맹국 및 우방국에도 대량 공급되었는데 대부분의 실전 기록은 이들로부터 나왔다. 시리아에 공급 된 MiG-23이 수 차례 이스라엘과 국지적인 교전을 벌였지만 그다지 전과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1982년 베카 계곡 공중전에서 시리아 공군은 학살과 다름없는 참패를 당하였는데 이때 많은 수의 MiG-23이 격추되었다. 하지만 이를 MiG-23의 성능을 평가하는 자료로 사용하기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
우선 소련 이외의 국가에 공급된 MiG-23은 대부분 다운그레이드 형인데, 특히 항전장비의 성능이 상당히 부족하였다. 거기에다가 베카 계곡 전투는 위치와 조기 경보 능력을 선점하고 있던 이스라엘의 전략에 시리아가 철저히 말려 들어가 피해가 컸던 사례였다. 이후 발발한 이란-이라크 전쟁 등의 경우를 보면 대략 운용 능력이 비슷한 국가 간의 교전에서 MiG-23은 나름대로 무난한 전과를 올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 이스라엘로 망명한 시리아 공군 소속의 MiG-23ML. <출처 (cc) Bukvoed at Wikimedia.org>
- ▲ 우크라이나 키예프 전쟁박물관에 전시 중인 MiG-23의 콕핏. 아날로그 계기판이 가득한 구식 이미지가 물씬 풍긴다. <출처 (cc) Akpch at wikimedia.org>
하지만 소련이 기술력을 쏟아 부어 야심만만하게 만든 MiG-23의 전성기는 그다지 길지 못하였다. F-4를 염두에 두고 제작하였지만 정작 양산 단계에 들어섰을 때 미국은 F-15, F-16 같은 제4세대 전투기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어쩌면 F-4보다 10년이 늦게 개발되고 제식화하였지만 이를 훨씬 능가하는 전투기가 목표가 아니라 대등한 수준이면 만족하려 하였던 점에서 그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세대 차이가 명백히 나는 전투기 간의 교전에서 결과가 대등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라 할 수 있다. F-22가 제4세대 전투기들과 벌인 수 차례의 모의 공중전 결과는 그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여러 실험에서 단지 비행 능력만 놓고 본다면 MiG-23이 거의 같은 크기의 F-16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실제로 전투는 그것만으로 치를 수는 없다.
- ▲ 미 공군 박물관 주기장에 계류 중인 MiG-23MLD.
결국 다시 응전에 나선 소련이 새로운 대항마인 Su-27과 MiG-29를 선보이면서 MiG-23은 주력 전투기의 위치에서 곧바로 내려와야 했다. 애당초 최고의 주력 전투기를 목표로 탄생하였지만 시대의 흐름에 뒤쳐져 등장하면서 마치 보조 전투기 같은 모습으로 지내다 그렇게 사라져갔던 것이다. 현재 MiG-23은 러시아에서 완전히 퇴역하였고 북한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 200여기가 사용 중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제원(MiG-23MLD)
전장 : 16.70m / 전폭 : 13.97m / 전고 : 4.82m / 최대이륙중량 : 15,700kg / 최고속도 : 마하 2.32 / 전투행동반경 : 1,150km / 상승한도 : 18,500m / 무장 : 23mm GSh-23L 기관포 1문, 5개 하드포인트에 2,000kg 무장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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