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폭격기의 상징JU87 슈투카
2차대전 폭격기의 상징JU87 슈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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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시카고 과학박물관에 전시 중인 Ju 87
6.25전쟁의 시작을 상징하는 무기라면 단연코 북한군이 남침에 앞장 세웠던 T-34/85 전차다. 전쟁 초기에 워낙 많은 피해를 입었기에 당시의 불리한 상황을 설명하는 자료에 예외없이 등장할 정도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엄밀히 말하면 그때가 전쟁 전체를 통틀어 가장 전차가 적었던 시기였다. 이후 여러 종류의 더 많은 전차들이 활약을 펼쳤지만 처음 앞장서왔던 T-34/85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는 없었다.
이처럼 전쟁에서 수많은 무기들이 사용되지만 전쟁 전체 혹은 어느 순간을 대표하는 무기는 정작 따로 있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전쟁이었던 제2차대전은 당시까지 실용화되었거나 아니면 시험 삼아 만든 무기가 그야말로 아낌없이 등장하였던 시기다. 따라서 당시 무기를 모두 거론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전쟁 중 인상적인 모습을 남기며 그 전쟁을 상징하게 된 무기를 추려보는 것은 가능하다.
- ▲ 1939년 9월 폴란드 상공을 비행 중인 Ju 87B. 2차대전의 개막과 함께 등장한 슈투카는 그 전쟁의 상징이 되었다.
‘슈투카(Stuka)’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Ju 87 폭격기도 그런 무기 중 하나다. 제2차대전사를 언급할 때 독일의 팽창과 침략 개시 시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시기를 설명하는 각종 문헌이나 시청각 자료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것이 바로 Ju 87이다. 비록 최고 성능의 폭격기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Ju 87만큼 2차대전을 떠올리게 하는 무기는 없을 것이다.
- ▲ Ju 87의 급강하 폭격 개념도. 목표물까지 정확히 근접하여 폭탄을 투하할 수 있었기에 이동 표적물의 공격도 가능했다.
생각보다 어려운 폭격
요즘은 이른바 ‘외과수술타격(Surgical strike)’이라고도 불리는 초정밀 공격이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종종 오폭 뉴스를 접할 때가 있다. 그 정도로 하늘에서 지상의 목표물을 정확히 공격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조수석에 탑승한 승무원이 대략 위치를 짐작하고 손으로 폭탄을 투하하였던 제1차 대전 초기에는 명중을 기대하기 어려웠고, 이후 폭격기의 고도와 속도를 계산하여 폭탄을 투하하는 기술이 등장하였지만 여전히 명중률이 높지는 않았다.
그래서 제2차대전 당시에는 대규모 편대가 출격하여 폭탄의 비를 퍼붓는 이른바 ‘융단 폭격’이 보편화 되었다. 강력해 보이고 무시무시하지만 사실 쏟아 부은 수많은 폭탄 중 하나만이라도 명중하면 성공이라 생각하던 방식이어서 효율적이라 할 수는 없다. 일단 낭비되는 폭탄도 문제지만 작전을 벌이다 격추되는 폭격기도 많았다. 전쟁을 경제적인 관점으로만 수행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이런 무지막지한 소모전을 감당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폭격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었다. 폭격기의 안전을 고려한다면 고고도에서 고속으로 비행하며 폭탄을 투하하는 것이 좋지만 정확도가 떨어진다. 결론은 폭탄을 목표 위치까지 최대한 근접하여 투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저고도로 비행하면 격추 당할 위험이 컸다.
이때 고고도로 비행 중 목표를 발견하면 곧바로 강하하여 최대한 근접한 후 폭탄을 투하하는 방법이 등장하였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급강하폭격기(Dive bomber)다. 개념은 제1차대전 당시부터 있었고 여러 나라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급강하할 때 기체가 받는 저항을 극복하는 등의 여러 난제가 있었다. 1930년대 들어 이런 문제를 해결한 급강하폭격기들이 본격 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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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산 공장의 모습. 총 6,500여 기가 제작되었다.
재건과 함께 시작된 프로젝트
재군비 선언 이전부터 비밀리에 독일 공군의 재건을 준비하던 우데트(Ernst Udet)는 1933년 미국 방문 당시 커티스(Curtiss)사의 F11C 급강하폭격기의 시범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그는 연구를 위해 즉시 2기를 구입하여 본국으로 가져갔을 만큼 급강하폭격기가 향후 독일군에게 반드시 필요한 무기임을 직감하였다. 그의 주장으로 1935년 도입 사업이 시작되면서 이전부터 급강하폭격기 개발을 하던 유수의 항공기 제작사들이 경쟁에 참여하였다.
그 결과 융커스(Junkers)사의 엔지니어인 폴먼(Hermann Pohlmann)이 설계한 Ju 87이 치열한 경쟁 끝에 낙점되었다. 기체 구조가 튼튼하였고 야전에서 정비도 쉬웠는데, 외형상 특징은 강착장치가 고정식이었고 주익이 기체 아래의 시계를 확보하기 용이한 갈매기 날개 모양이었다. 또한 급강하 돌입 시 조종사가 의식을 잃을 가능성을 대비하여 특정 고도에서 폭탄을 자동 투하하고 기체의 자세를 잡아주는 장치도 설치되었다.
- ▲ (좌)강착장치가 특이한 초기 모델인 Ju 87A 편대의 비행 모습.
(우)대규모 편대를 이루어 출격하는 모습.
이론적으로 Ju 87은 90도의 수직 강하도 가능하였지만 대부분의 조종사들은 폭탄 투하 후 이탈 등을 고려하여 속도를 시속 240킬로미터 정도로 줄인 후 80도 정도의 각도로 강하하였다. 독일에서 Ju 87은 '급강하 폭격기(Sturzkampfflugzeug)'의 약칭인 슈투카(Stuka)로 불렸는데 사실 슈투카는 모든 종류의 급강하 폭격기를 지칭하는 일반명사이지만, 활약이 워낙 인상적이다보니 이후 Ju 87을 일컫는 대명사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재미있게도 개발 당시에 엔진이 완성되지 않아 5기의 실험기들에 롤스로이스사의 캐스트랄(Rolls-Royce Kestrel) 엔진이 장착되었다.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엔진이긴 했지만 영국은 본의 아니게 적국의 무기 개발에 공헌을 하게 된 셈이다. 시험 중 여러 사고를 겪으며 개량을 거친 후 1937년부터 Ju 87A형을 시작으로 독일 공군에 납품되기 시작하였고 곧바로 스페인 내전에 투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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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급강하하면서 폭탄을 투하하는 극적인 모습. 동체 중앙에 500kg 폭탄 1발, 주익에 50kg 폭탄 4발을 장착할 수 있다.
(우)Bf 109E와 동반 출격하는 Ju 87B.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보호를 받지 못하여 곤욕을 치렀다.
전격전을 이끌다
1939년 9월 1일, 제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Ju 87은 유감없이 위력을 발휘하였다. 이들이 요충지를 급습하여 상대를 흔들어 놓으면 곧바로 기갑부대가 돌풍같이 진격하여 전선을 돌파한 후 적의 후방을 차단해 버렸다. 이렇게 정신 없이 포위된 상대방은 궤멸되거나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전격전(Blitzkrieg)’이라 명명된 이러한 독일의 기동전에 의해 폴란드와 프랑스가 순식간에 점령당했다.
급강하 돌입 시 발생하는 소음에 더해 이른바 '예리코 나팔(Jericho-Trompete)'이라 불린 무시무시한 사이렌 굉음으로 인해 폭격을 당하는 적 지상군은 공황 상태에 빠져 우왕좌왕하였다. 이런 전과는 대대적으로 홍보되었고 이때부터 Ju 87은 독일의 승리를 자랑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특히 폭격의 정확도가 뛰어난 것으로 확인되면서 독일 공군의 수장인 괴링(Hermann Goring)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급강하폭격기 만능론에 빠질 정도였다.
그런데 영원할 것 같았던 Ju 87의 전성기도 거기서 멈추게 된다. 이른바 공군만의 전쟁으로 표현되는 1940년 '영국 본토 항공전(Battle of Britain)'에서 꼬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사실 그 동안의 상대는 공군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은 편이어서, Ju 87의 활약은 무주공산에서 펼쳐진 것이었다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스핏파이어와 허리케인이라는 보검을 가진 영국의 하늘은 전혀 달랐다. 그 동안 간과했던 약점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속도가 느린 Ju 87은 한마디로 영국 공군의 날렵한 전투기들의 ‘밥’이었는데, 특히 급강하에 돌입할 때 공격을 받으면 속수무책이었다. 독일 공군에게도 뛰어난 Bf 109 전투기가 있었지만 항속 거리가 짧아 폭격에 나선 Ju 87을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했다. 영국 공군 조종사들이 '슈투카 파티'를 벌인다고 할 정도로 갈수록 피해가 커지자 결국 독일은 8월 19일부터 Ju 87의 영국 본토 항공전 투입을 중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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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1943년 동부전선에 작전을 펼치는 제77급강하 폭격비행대 소속의 Ju 87D. 후방 조수석의 방어용 기관총이 확인된다.
(우)주익 양쪽에 37mm 기관포를 장착한 Ju 87G. 이른바 카포넨포겔로 불렸던 전차의 저승사자였는데 카트리지에 6발의 포탄을 장착할 수 있었다.
전설이 되다
하지만 히틀러의 엄청난 도발 욕구가 있는 한 Ju 87이 계속 의기소침한 채 뒷방에 물러나 있을 수는 없었다.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사상 최대의 독소전쟁을 개시하자 전선의 주역으로 다시 떠오른 것이다. 영국에서와 달리 독일이 초전부터 제공권을 장악해 버리면서 이전처럼 손쉽게 폭탄을 던질 수 있었다. 특히 동부전선에서 전차 같은 이동 표적 공격에 뛰어난 전과를 보였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날이 갈수록 전투가 격화되면서 Ju 87은 새롭게 변신하였다. 상부를 타격하면 단 한 발로도 전차를 격파할 수 있는 37mm 기관포를 주익에 장착한 개량 기종이 소련 기갑부대의 저승사자로 떠오른 것이었다. 이것이 이른바 '대포 새(Kanonenvogel)'라고 불린 Ju 87G로서, 독소전쟁 중반부터 기갑전력이 절대 열세였던 독일 지상군에게는 천군만마, 소련군에게는 지옥의 사자 같은 존재였다.
Ju 87G와 이 기종이 구사한 전술은 냉전시기에 미국이 근접지원용 공격기를 개발할 때 많은 참고가 되었다. 한마디로 지상군 근접 지원 전투의 모범이라 할 수 있었는데, 특히 519대의 소련 전차를 격파한 전설적인 슈투카 에이스인 루델(Hans-Ulrich Rudel)이 쓴 자서전 ‘트로츠뎀(Trotzdem,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뜻의 독일어)’은 새로운 공격기를 개발하던 미국 엔지니어들의 필독서가 되었을 정도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탱크 킬러가 바로 너무나도 유명한 A-10이다.
총 6,500여 기가 생산된 Ju 87은 동맹국이었던 이탈리아, 루마니아, 불가리아에도 일부 공급되었지만 대부분 독일군에 의해 소비되었다. 성능만 놓고 본다면 전쟁 초기를 지나면서 시대에 뒤쳐진 폭격기로 취급될 수 있었지만 마땅한 대체기가 없었던 독일은 이를 개량하면서 끝까지 애용하였다. 아마도 특유의 외양도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2차대전 내내 꾸준히 사용되었기에 Ju 87이 그 시대를 상징하는 무기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제원(Ju 87B)
전장 11.00m / 전폭 13.80m / 전고 4.23m / 최대이륙중량 5,000kg / 최대속도 시속 390km / 항속거리 500km / 작전고도 8,200m / 무장 MG 17 7.92mm 기관총 2문, MG 15 7.92mm 기관총 1문, 500kg 폭탄 1발, 50kg 폭탄 4발